[미디어스=윤수현 기자] 5G시대 맞아 망중립성 문제가 대두되는 가운데, 망 중립성 원칙이 폐기·완화된다면 인터넷 생태계 발전이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프로도 소렌스 노르웨이 통신위원회 수석 자문은 "유럽은 5G 이유로 망 중립성을 폐기하지 않는다"면서 "망 중립성 원칙은 인터넷 이용자의 권리이자 인권이다. 망 중립성 원칙을 통해 이용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인터넷 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로드 소렌슨은 2016년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 및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망 중립성 워킹 그룹 의장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는 노르웨이 통신위원회 수석 자문을 맡고 있다.

프로드 소렌슨은 13일 사단법인 오픈넷이 주최하는 '5G 시대에 대비한 유럽의 망중립성 규제' 세미나의 발제를 맡아 방한했다. 오픈넷은 이날 세미나에 앞서 미디어스·미디어오늘·한겨레·지디넷코리아 등을 상대로 프로드 소렌슨,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포털사이트 다음 백과사전은 망 중립성에 대해 '유·무선 통신망을 갖춘 모든 네트워크 사업자는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인터넷사업자들에게 어떤 차별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통신망을 오가는 데이터나 콘텐츠는 개인이 이용하든 기업이 이용하든 차별해선 안 되고, 대용량 데이터든 소용량 데이터든 차별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퍼블릭 놀리지 홈페이지 갈무리 캡처

KT·SK브로드밴드·유플러스 등 통신업계는 통신비 인하 정책에 따른 통신사의 수익성 보전 및 5G, IoT 등 신성장 사업 투자를 위해서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면서 망 중립성 완화 또는 폐지를 바라고 있다.

콘텐츠 사업자와 시민단체들은 망 중립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망 중립성이 완화·폐지되면 인터넷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양·내용에 따라 과금 정책을 달리하고 정보를 차단·지연한다면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중소 콘텐츠 사업자, 1인 기업 등이 추가적인 망 사용료를 감당할 수 없어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미국은 망 중립성 원칙을 폐기했다. 지난해 6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망 중립성 원칙 폐기를 담은 '인터넷의 자유 회복' 행정명령을 공식 발효했다. 미국의 통신사는 합법적으로 인터넷 트래픽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거나 특정 앱·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반면 유럽은 강력한 망 중립성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EU의 통신 규제기관인 BEREC는 2011년 망 중립성 원칙을 도입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망 중립성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로드 소렌슨은 “망 중립성은 이용자의 권리이고, 인터넷 인권과 같다”고 밝혔다. 아래는 프로드 소렌슨, 박경신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프로드 소렌슨 (사진=미디어스)

Q. 망 중립성 원칙이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프로드 소렌슨 - 망 중립성 원칙은 이용자의 권리이고 인터넷 인권이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권리는 이용자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지, 망 사업자의 명령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Q. 5G 통신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망 중립성 폐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제반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에 때문에 망 중립성을 폐기해야 한다는 논리다.

프로드 소렌슨 – 우선 BEREC은 5G 때문에 망 중립성 원칙이 폐기되지는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5G로 인해 (망 중립성과 관련해) 제한을 주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Q. 한국에서 망 중립성 정책을 논의할 때는 시민의 참여가 없었다. 유럽에서는 망 중립성 정책을 논의할 때 이용자와 어떤 소통을 했는가

프로드 소렌슨 – EU에서 통신과 관련한 법이 만들어질 때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찬반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망 중립성과 관련해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BEREC과 규제 당국이 많은 소통을 했다. 서로 공공적인 자문도 하고, 보고서도 발표했다. EU에서 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했다. 이때 BEREC은 50만 이용자의 의견을 반영했다.

Q. 한국에서 망 중립성과 관련된 논의를 할 때, 통신사에서는 “망 설치에 많은 비용을 투자했기 때문에 콘텐츠 사업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프로드 소렌슨 – 어떤 그룹이 (인터넷 발전에) 기여를 했느냐에 대해 한국뿐만 아니라 EU와 미국 등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우선 망 사업자나 콘텐츠 사업자 모두 중요한 이해 관계자이고 함께 인터넷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규제 당국이 관심을 두는 것은 이용자의 권리다. (이용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혁신적인 개발이 촉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콘텐츠가 많아지면 이용자의 인터넷 이용률은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망 사업자는 (인터넷망을) 더 많이 판매하게 된다. 인터넷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망 사업자는 망 구축에 기여를 하고, 콘텐츠 제공자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이용자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서로가 공존해야 한다.

Q. EU가 망 중립성 원칙을 제정하면서 각 이해 당사자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나

프로드 소렌슨 – 우선 유럽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상황이다. BEREC가 3년 동안 의견을 받았는데 망 사업자는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이 엄격하다면서 반대 의견을 표출했다. 콘텐츠 사업자는 가이드라인이 완화됐다는 입장이었다. 양 측의 의견 대립이 확연했다.

Q. 유럽에 제로 레이팅 제도(콘텐츠 사업자가 망 사업자와 제휴를 맺어 이용자의 데이터 이용료를 면제 또는 할인해 주는 제도)가 있는가

프로드 소렌슨 - 유럽에도 제로레이팅 제도가 존재한다. 망 중립성 규제 이전에는 망 사업자가 VOIP(보이스톡 같은 데이터 기반 음성 서비스)를 차단하기도 했다. 망 중립성 규제 이후에는 조건 없는 차별 대신 경제적 차별 양상으로 바뀌었다. 만약 제로 레이팅으로 인해 이용자의 권리 침해가 발견되면 규제 당국이 나서게 된다.

Q. 미국의 망 중립성 폐지가 유럽에 가져온 영향이 있는가

프로드 소렌슨 – 일반적으로 말하면, 망 중립성에 대한 미국의 지침이 바뀐다고 해서 EU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EU의 오픈 인터넷 정책은 여전히 유지된다.

박경신 교수 – 우선 미국의 망 중립성 규제가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는 콘텐츠 사업자에게 적용되는 것이고, 일반 이용자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모두가 같이 인터넷을 이용해야 한다는 원칙이 바뀐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런 시나리오는 생각해볼 수 있다. 유럽의 저명한 콘텐츠 사업자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미국 이용자가 유럽 콘텐츠 사업자의 정보를 많이 이용한다면 미국 망 사업자가 이용료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Q. 한국에선 넷플릭스·구글을 규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에서 트래픽이 발생했기 때문에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럽은 어떤가

프로드 소렌슨 – 유럽의 경우 넷플릭스·구글울 규제하지 않는다. 다만 미국 콘텐츠 사업자 과세 문제의 경우 유럽도 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

박경신 교수 – 특정 국가에서 망 중립성 원칙이 없어진다면 그 나라 콘텐츠 사업자가 불리해질 수 있다. 어느 나라건 내수 시장이 중요한데, 망 중립성 원칙이 폐지된다면 전체 콘텐츠 사업자가 지출하는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만약 네이버 이용자가 미국에도 발생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미국이 네이버에 망 사용료를 내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망 중립성 완화에 관한 주장은 단견이다. 한국 콘텐츠 사업자가 외국에서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가정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SNS인 라인의 서버가 한국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동남아시아에선 라인이 활발하게 사용되는데, 그 나라들의 망 사업자들이 “망 사용료를 달라”고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한국에서 망 중립성 원칙을 완화한다면 이는 선례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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