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그해 세계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꼽았다. 3년여가 지난 현재 우리는 이른바 '가짜뉴스'와 그 영향력을 목도하며, 각 개인의 입맛에 맞는 정보들을 제공받으며 '탈진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IT기업의 알고리즘을 통한 미디어 소비는 '탈진실' 현상을 시대적 특성으로 부상시켰다.

이와 함께 문제해결 방식으로 부상한 것은 원론적인 대응으로 치부되고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의 강화다. 지난해 국내에서 '가짜뉴스' 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부상하자 정부여당은 규제를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을 내세웠다. 사업자 자율규제 참여 독려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화만으로는 대책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개인의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시민사회·학계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결국 정부는 다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강화로 대책 방향을 수정했다. 탈진실의 시대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가 꼽힌 일련의 과정이다.

커뮤니케이션 역사에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은 강조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미디어 리터러시가 '원론적인 대책'으로 치부되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맞물린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지은이 : 원용진 외 11인 / 도서출판 '지금'

미디어 전문 기자, 방송 종사자, 언론학자, 일선 교사 등이 참여한 신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사회적 공론장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과 그 방향을 모색하며 각 미디어 현장에서의 적용 방식을 제시한다.

책머리를 연 원용진 서강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대상이자 기회라고 말한다. 미디어 주권을 논할 정도로 탈국경화된 플랫폼 사업의 독과점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디어 소비 주체가 직접 데이터를 발굴하고, 분석하고, 활용하는 체험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탈국경화 플랫폼, 통신주권의 침해, 글로벌 기업의 네트워크 효과, 빅데이터 노출 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위험성을 체험 교육을 통해 인지하는 새로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각 미디어 현장에 소속된 필자들이 제시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방향 제시가 흥미롭다. 1차적으로는 '교육의 장'인 학교에서의 적용 필요성이 대두된다. 박한철 덕성여고 교사는 "학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이상적 실현기관이 학교라는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며 ▲미디어 이용 능력 ▲비판적 이해 능력 ▲창의적 표현 능력 ▲의사소통 능력 ▲책임 있는 행동 등 5가지 항목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역량, 즉 학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성취기준으로 삼아 시행할 수 있는 수업 사례들을 제시했다.

금준경 미디어오늘 기자는 '가짜 뉴스'로 불리는 허위정보와 관련, 포털로 대표되는 인터넷 기업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책임을 강조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7 한국'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뉴스 소비에 있어 포털 의존도가 77%에 달한다. 반면 언론사 홈페이지에 직접 접속하는 이용자는 4%에 불과하다. 조사 대상국 중 포털 의존도는 1위, 직접 접속 비율은 꼴찌다. 국내 뉴스 소비에 있어 포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지표다.

그러나 포털이 가진 영향력과 대조적으로 국내 포털의 알고리즘 뉴스 배열 방식이 공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게 금 기자의 지적이다. 주로 이용자의 체류시간에 목적을 둔, 즉 수익성을 과제로 둔 인터넷 플랫폼의 알고리즘 뉴스 배열이 '필터버블(Filter Bubble)' 초래와 허위정보 유통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금 기자는 포털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이용자 참여 위원회 모델' 법제화를 제안했다. 신문사의 '독자위원회', 방송사의 '시청자위원회'와 같이 포털 역시 알고리즘의 작동방식과 적용, 폐단 등을 공개 검증 받고 이용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이용자 참여 위원회 모델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일환으로 공영방송 KBS를 공공서비스 미디어로 전환해 공적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가짜뉴스, 필터버블 등 사회·문화적 다양성이 훼손되는 '탈진실의 시대'에 공공가치를 추구하는 공공 서비스 미디어가 사회적 필요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최근 세계 공영방송계의 논의와 맥이 닿는다.

이를 위해 최용수 KBS 시청자서비스부장은 공공서비스 미디어로서의 수행 과제를 점검하고 결정하는 '사회적 합의체계' 구성과 'KBS형 공공가치 평가제도' 도입을 제안한다. 공영방송에 부여하는 공공서비스의 책무를 사회적 합의에 따라 정의하고, 이를 주기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공영방송에 드리워진 정치적 영향력과 불확실성을 상당부분 차단해보자는 제안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