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캔 스피크’는 영화지만 그 내용은 영화 이상이었다. 이 영화를, 적어도 한국 사람이라면 그저 한 편의 영화로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고, 뜨거운 눈물도 쏟았다. ‘아이 캔 스피크’는 영화적으로 썩 잘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 아니 역사가 건네는 진실의 무게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가 하늘로 돌아가셨다. 김복동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끝까지 싸워 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이마에 진땀이 맺힐 정도로 사력을 다한 말 한 마디였다고도 전해진다. 김 할머니가 생전의 고통과 분노를 조금도 덜지 못하고 떠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터 앞에서 열린 '제1355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욱일기를 달고서 제주해군기지 관함식에 참가하려는 일본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할머니는 물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요구는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졸속으로 체결한 일본과의 합의를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화해치유재단 해체를 요구하면서 위로금은 천억이라도 안 받겠다던 할머니의 육성이 귀에 그렁그렁하다.

김복동 할머니는 죽어서도 싸우고 있다. 세계 주요 외신들이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하고 있다. 로이터, 뉴욕타임스, 알자지라까지도 김복동 할머니의 생애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실을 보도했다. 생전에 온힘을 다해 싸웠는데 생을 다한 후에도 김복동 할머니의 투쟁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런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한걸음에 달려와 절을 올렸다. 시민들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찾아와 영면을 기원하고 있다. “끝까지 싸워 달라”는 할머니의 유언대로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아직 23명의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존해 계시고, 그들과 함께 싸우는 활동가, 시민, 학생들이 있다.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은 또 다른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200살까지 살아서 반드시 사죄 받고 배상 받고 해야 겠다”고 말한다. 이제 23분 남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의지는 분명하다. 끝까지 싸울 것이다.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조문을 마치고 돌아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복동 할머니는 고향에 돌아왔어도 보통 사람이 누리는 행복을 포기해야만 했다. 소천으로 비로소 귀향의 안식을 얻었을 것이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 고통도, 적도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러나 김복동 할머니의 유지가 잘 지켜질지가 걱정이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은 일본과 싸울 생각이 없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본 초계기 도발에 대한 자유한국당과 일부 언론의 반응은 상식과 국익을 배신한다. 일본 눈치를 봐야 한다는 말을 하는가 하면, 일본의 일방적 도발을 ‘치킨게임’으로 호도하기도 한다. 만일 초계기 도발이 일본이 아닌 북한이라도 같은 반응이었을까?

북한이든 일본이든 우리 군에 어떤 위협을 가했다면 안보적 측면에서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일본 초계기 도발에 우리 군이 잘못이라고 하거나, 기계적 중립으로 양비론을 펴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싫어 안보도 내던지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을사오적이 지하에서 웃을 일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 역시 일본뿐만이 아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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