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김 할머니가 임종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일본에 대한 분노"였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28일 "김복동 할머니가 오늘 오후 10시 41분 별세했다"면서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한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는 암 투병으로 3주 전부터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입원 중이었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다. 조문은 29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며 발인 예정 일자는 2월 1일이다.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해 10월 3일 제1355차 정기수요집회에 참가해 발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 할머니의 임종을 지킨 윤미향 정의연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할머니께서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워낙 기력이 없으셔서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유일하게 알아들은 말은 '일본에 대한 분노'라는 한 마디였다"고 전했다. 이어 윤 대표는 "마지막 순간에는 평온하게 가셨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만 14세인 1940년 일본군에게 속아 위안부로 끌려갔다. 정의연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 침략 경로를 따라 위안부로 끌려다녔다. 이후 1948년 8월, 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김 할머니는 1992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하면서 여성 인권 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위안부 피해사실을 증언했다. 이후에도 199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피해 사실을 증언했고, 세계 곳곳에서 증언을 이어나갔다.

김 할머니는 본인의 이름을 딴 '김복동 희망' 장학재단을 만들어 일본 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재일동포 학생들, 분쟁지역의 아동들과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돕는 인권 운동에 매진했다.

또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나비 기금'을 발족시켰으며, 2012년~2016년까지 유엔인권이사회와 세계 각국을 다니며 전시 성폭력 반대 캠페인에 참여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2015년 5월 김 할머니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했다.

2015년 이후에는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규탄하며 화해·치유재단 해산과 일본의 공식 사죄를 촉구했다. 김 할머니는 지난해 9월 암 투병 중에도 서울 종로 외교부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촉구했다. 김 할머니는 투병 중에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도 늘 모습을 드러내는 등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 선 인물로서 피해자들의 상징으로 꼽힌다.

한편, 김 할머니의 별세로 남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정의연에 따르면 앞서 이날 오전에도 위안부 피해 이 모 할머니가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이 할머니는 17세이던 1942년경 일본군에 납치돼 시모노세키, 만주 등으로 끌려가 위안부 피해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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