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정부가 2월 초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을 시작하는 가운데, 김영미 독립PD(시사인 국제문제 편집위원)의 승선 요청을 불허해 논란이 일고 있다. 외교부는 “승선자의 건강과 안전문제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PD연합회는 “외교부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취재를 허가하거나 금지할 권한이 없다”고 비판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주식회사 폴라리스쉬핑 소유의 화물선이다. 스텔라데이지호는 2017년 3월 승무원 24명(한국인 8명·필리핀인 16명)과 철광석을 싣고 브라질에서 중국 칭다오로 항해하던 도중 남대서양 해역에서 침몰했다. 필리핀 선원 2명만 구조됐고 나머지 승무원은 실종됐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년의 기다림, 스텔라데이지호 시민문화제'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선사는 사고가 난 지 12시간이 지나서야 해경에 신고했다. 가족들이 사고 소식을 알게 된 건 16시간이 지난 뒤였다. 당시 정부는 황교안 권한 대행 체제였으며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해양수산부와 외교부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사건 발생 3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사고 원인규명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영미 PD는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을 입체적으로 추적한 유일한 언론인이었다. 김영미 PD는 우루과이·아르헨티나·브라질·프랑스·미국을 다니며 취재했고,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을 알렸다. 이후 MBC PD수첩은 김영미 PD와 함께 사건을 조명했다.

보도 후 정부는 스텔라데이지호 사건 해결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심해수색장비 투입을 결정했다. 12월 외교부는 미국 탐사업체 ‘오션 인피니티’를 수색업체로 선정했고, 2월 초 심해 수색을 계획하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선사 관계자들은 수사를 받고 있다.

시사인과 김영미 PD는 외교부에 승선을 요청했지만 외교부는 불허 통보를 내렸다. 외교부는 헌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원 1명,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연구원 1명, 선원 가족 1명 등 3명을 동승시킬 계획이다. 이에 대해 김영미 PD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언론이 승선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미디어스는 25일 김영미 PD를 만나 입장을 물었다.

Q.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1호 민원이다

A.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심해 지역이고, 시간도 많이 흘렀다. 이번 정부가 빠르게 움직이면 좋았겠지만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Q. 현재 선사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김완중 회장 등 관계자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김완중 회장은 감독기관 승인을 받지 않은 채 화물을 적재, 선박 복원성을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A. 관계자 한 명을 제외하곤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법원은 사고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증거자료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번 수색을 통해 블랙박스를 수거하면 많은 기록이 나오고, 처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한국에는 선박안전법이 있지만 선주가 처벌받는 예는 거의 없다.

Q. 이번에 승선 협조 요청을 하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나

A. 이번 사건의 가장 핵심은 블랙박스 수거다. 또 남대서양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일이다. 현장에서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선원 가족의 의문을 해소해주고 싶기도 했다. 선원 가족들은 국가와 언론에 대해 큰 불신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부정확한 정보와 언론의 외면도 있었다. 이런 것을 만회하고 싶었다. 블랙박스 수거·실종자 수색 현장에 언론이 있으면 가족들이 신뢰할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물론 두 달 가까이 배를 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체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결코 쉬운 취재가 아니다. 그래도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외교부에 취재 협조 공문을 보냈는데 그후 한참 동안 대답을 듣지 못했다. 전화하면 담당자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만 들었다. 그 후 1월 11일 전화가 왔고 “불허 방침”이라는 말만 들었다.

시사인은 협조 요청을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불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세금으로 진행되는 사안에 언론이 참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외교부의 허가가 필요한 게 아니다.

국민의 알 권리가 충족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언론은 최선을 다해 배를 타겠다고 요청했지만 정부가 거부했다. 알 권리에 대한 책임은 언론이 아니라 정부에 있다.

Q. 외교부는 ‘안전과 건강’ 때문이라고 말한다

A. 취재진의 안전과 건강은 언론사가 판단할 일이지, 정부의 몫이 아니다. 현재 정부가 외국에 취재를 나간 모든 언론인의 건강을 염려하고 관리하고 있나? 아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 왜 이번 일만 ‘안전과 건강’이라는 이유를 드는가.

그리고 그 배에 타는 사람은 소수가 아니다. 배 안에서 다양한 일을 맡은 사람들이 함께 간다. 그들은 나와 직업이 다를 뿐 같은 사람들이다. 그렇게 위험해서 취재를 불허할 정도면 그 사람들은 뭔가. 외교부의 답변은 합리적이지 않다.

Q. PD연합회에서 관련 성명을 발표했다

A. 동료, 선후배 PD가 이번 취재를 지지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과거 정부에서 PD들은 일하기 참 힘들었다. 그런 고난을 함께 겪으면서 동지애가 생겼다. 또 과거와 달리 독립 PD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옛날에는 ‘갑을’로 비쳤을 수 있지만 지금은 동료로 봐주고 있다. 독립 PD의 일에 PD 연합회가 전격적으로 성명을 내준 예는 잘 없다. 정말 고맙고, 지지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난다.

Q. 선원 가족들도 2명이 승선하길 원했지만 결국 1명만 가게 됐다

A. 우선 실종자 가족들은 상심이 크다. 언론에 버려지고, 국가에 버려졌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가슴이 아팠다. 이번 취재를 시작할 때 언론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싶었고, 국가에 대한 불신도 치유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도 불신은 크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구나 큰일을 겪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거기에 과거 정부에서 들었던 거짓말을 보면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족들이 배를 타고 싶다고 한 것도 불신의 연장선이다. 과정을 눈으로 보고 싶고, 가족이 실종된 장소까지 가보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 누구나 마찬가지다. 선원 가족에게 공감을 해야 이 문제개 해결될 수 있다.

우루과이와 브라질, 파리에서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공감’이다. 그들은 ‘가족의 생사를 모르는 가족들의 마음이 어떻겠냐’고 공감해줬다. 공감을 통해 취재가 많이 진행됐다. 특히 우루과이 부통령과의 인터뷰가 기억난다. 부통령은 “선원 가족이 실종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국가는 국민의 실종을 확인해주는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 우루과이 정부뿐 아니라 어느 정부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다. 실종자 가족이 싸우는 이유중 하나가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겼을 때 국가가 더 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정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정신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 우루과이 기자협회를 취재하고 있는 김영미 PD (사진=시사IN)

Q. 정부 대응의 문제점은

A. 가장 대표적으로 블랙박스를 인양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원래 정부는 수심 3000m에 있는 블랙박스를 건질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와 가족은 이 말을 믿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정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취재를 해보니 3000m보다 더 깊은 곳에서도 블랙박스를 수색한 사례가 발견됐다. 2009년 발생한 에어프랑스 447 추락 사고다. 프랑스는 심해에서 블랙박스를 수거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사건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성공했다. 거기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취재를 위해 프랑스로 갔다. 수색일지와 과정을 얻었다. 블랙박스 수거의 이유를 물어보니 미국 우주홀 해양연구소의 내비게이션 기술 때문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래서 또 미국으로 가 내비게이션 기술이 뭔지, 블랙박스 수거 가능성은 있는지 물었다. 세계 최고 해양 연구소인 미국 우즈홀 연구소는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이건 많은 사례 중 하나다. 이런 일이 쌓이게 되면 가족들은 정부를 불신한다. 정부가 사실을 말해도 믿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언론은 가족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검증 작업을 해야 한다. 언론이 문제점을 검증하고, 시민의 불신을 해결해줘야 한다. 시민과 언론, 정부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다.

Q. 취재를 위해 프랑스, 미국에 직접 갔다

A. 우선 가족들의 신뢰를 얻어야 했다. ‘전화로 물어봤어요’라고 말하면 날 믿겠나. 직접 가서 물어보고 확인을 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은 실종자 가족에게는 인생의 전부다. 그렇다면 언론은 최대한 정확하고 빠르게 정보를 전달해줄 의무가 있다. 가족들이 미국이나 프랑스를 가기도 힘들다. 언론이 대신 가서 공부를 하고 쉽게 전달해줘야 한다.

또 현장을 가는 것은 언론인의 원칙이다. 현장에 직접 가야지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취재원이 말을 해주고 싶지 않아도 언론인이 직접 찾아가면 이야기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Q.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을 취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뭔가

A. 난 [단독], [특종]을 위해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을 취재한 것이 아니다. 스텔라데이지호 사건 취재는 언론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했다. 알 권리 충족을 위해서. 그래서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의 현장으로 가야 했다. 가기 싫다고 가지 않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군대 복무랑 똑같은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Q. 저널리즘 원칙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30대부터 지금까지 종군 취재를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수단·팔레스타인 내전 지역에 가서 전 세계의 종군기자를 만났다. 그분들에게 저널리즘의 원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한국에서만 있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다.

종군기자의 철학과 고독의 깊이는 대단하다. 전쟁터라는 취재 현장은 고민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곳이다. 종군기자들은 전쟁터에서 30년, 40년을 보낸다. 그분들의 경험과 취재 비결, 상황 돌파 능력과 통찰은 탁월하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원칙을 가지게 된 계기다.

Q. 마지막으로 전할 말은

A. 난 내 위치에서 언론의 원칙만 지킬 뿐이다. 특별히 뛰어난 언론인도 아니다. 최소한 내가 이 직업을 가지고 있는 한은 노력을 계속해 나아갈 것이다. 그게 내가 가진 취재의 자존심이다.

물건을 만들어 팔더라도 잘 만들어 팔아야 한다. 또 내가 만든 물건을 쓰는 사람은 행복해져야 한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독자에게 행복을 주는 저널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원칙을 지켜야 한다. 직접 현장으로 가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원칙이다. 나중에도 '노력하는 언론인'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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