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임기를 시작한 공영언론사 사장들은 '과거사 청산'을 자사 혁신의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지난 10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언론의 독립성 훼손을 겪어온 공영언론사들은 새로운 경영진 출범 이후 각각 사내 과거사 청사 기구를 구성해 과거 불공정 보도, 부당인사 사례 등을 조사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공영언론 혁신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변화된 미디어환경 속에서 존재감이 흐려져가는 공영언론사들이 인적청산에만 치중된 혁신작업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내부 제도개선과 구성원 교육, 관행 탈피 등의 작업이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뉴스통신진흥회 후원,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공영언론의 혁신, 어디까지 왔나>세미나가 열렸다. MBC 정상화위원회, KBS 진실과미래 추진위원회, 연합뉴스 혁신위원회, YTN 바로세우기 및 미래발전위원회 등 공영언론사 내 혁신 기구들에 대한 중간평가가 이뤄지는 자리였다.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뉴스통신진흥회 후원,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공영언론의 혁신, 어디까지 왔나>세미나가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첫 발제를 맡은 원용진 서강대 교수는 지금까지의 공영언론사 혁신 기구 활동을 바라보는 언론시민사회 활동가들과 미디어 전문지 기자들을 인터뷰 했다. 그 결과 인터뷰이들은 기구가 지나치게 폐쇄적인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과 활동이 인적 청산에 집중된 점을 대표적인 한계로 꼽았다. 공영언론 혁신을 위해 함께 투쟁한 시민 사회와의 혁신 작업 연계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혁신 방향이 인적 청산 수준에 머물러 있다보니 실제 문제일 수 있는 내부 교육 문제, 관행의 문제 등에 대한 개선 방향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원 교수는 "공적 책무를 이행하기 위한 KBS, MBC, YTN, 연합뉴스의 노력은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라면서도 "다만 그것이 내부적 반성에만 그친다거나, 구성원들의 양심에만 맡기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영언론이 무너진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시민 사회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원 교수는 "한국 공영방송 제작종사자에게 곧 닥칠 현실은 '자유로운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과거에는 못했던' 시민적 가치의 실현에 대한 기대이고, 이것은 엘리트들이 자기 지위 강화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의 말을 빌리며 "남은 기간 동안 이들의 활동이 더 뜻깊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학계의 많은 관심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발제를 이어간 윤성옥 경기대 교수는 저널리즘적 관점에서의 공영언론의 성과와 과제를 분석, 혁신 기구 활동으로 공영언론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반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영언론의 저널리즘적 성과는 크게 시청률과 신뢰도로 엿볼 수 있는데 두 부분 모두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다.

특히 뉴스 신뢰도 수치가 지난 정권 시기와 비교해 더 하락한 점은 치명적이다. 2018년 언론진흥재단 뉴스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지상파 뉴스에 대한 신뢰도는 전년 대비 0.27점 하락한 3.80점, 뉴스통신은 전년 대비 0.26점 하락한 3.68점으로 나타났다. 가짜뉴스 문제 등 복합적 요인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보도 자체에 있다는 게 윤 교수의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방북' 기사 연쇄 오보가 단적인 사례다. 연합뉴스가 오보를 냈고 MBC, SBS ,매일경제, 경향신문 등은 이를 확인 없이 받아썼다.

윤 교수는 공영언론의 기사 제목, 다양성 반영, 심층보도의 수준 등을 분석해 저널리즘적 문제점을 드러냈다. 분석결과 제목의 경우 감정적 제목,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일컬어지는 직접인용구 제목, 선정적 제목 등의 문제점이 나타났다. 사회 뉴스 편중, 취재원 편중성, 소외계층 소외 등의 문제가 드러났고, 스트레이트 중심의 단순 상황제시 보도 경향이 나타났다.

이어진 토론에서 조항제 부산대 교수는 혁신 기구가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는 혁신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생존권 투쟁이었다는 뜻이다. 필요조건을 충족했다면 이를 비가역적 영역으로 끌고 가 제도화 하고, 공영방송을 메리트있게 만드는 것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언론에 유독 시민참여가 되지 않고 있다며 폐쇄성을 재차 지적했다. 또 공영언론을 평가할 수 있는 별도의 평가지표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공영언론 전체 조직문화와 변화에 반영될 수 있는 평가지표를 만들어 공영언론 안에서도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지적들에 복진선 KBS 진실과미래 추진단장은 편성규약을 강화하는 방식의 조사를 진척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 단장은 "가장 중요한 건 편성규약이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사규 위반으로 징계를 받는다. 그런데 지난 10년 간 거의 누구에게도 (편성규약은) 우선이 아니었다"며 "편성규약을 어떻게 강화하고 내재화시킬 것인가, 그 기본은 교육이다. 제도적 시스템을 개선하고, 향후 공적 책무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영 MBC 정상화위원회 위원장도 "여러 내부개혁과 제도개선의 경우 정상화위원회에서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며 "보도·제작 자율성과 그 한계, 철학적 논쟁까지를 포함해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다. 활동가들이 지적한 부분도 장기적 과제로 놓고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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