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개편 때마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대세인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며 새롭게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 살아남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거나 실망감을 주는 실패를 거듭하며 폐지당하고 이내 잊혀져버리고 말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시청자들에게 리얼하게, 즐겁게 자신들의 내용이 전달될 수 있는지를 두고 이런저런 방식을 고안하며 새롭게 포맷을 짜보기도 하고 잘나가는 이들의 장점들을 살짝 차용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어렵게만 보이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성공 비결은 그 기본을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간단합니다. 그 어떤 주제를 가지고 접근하건, 무엇을 보여주건 간에 결국은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에 대한 호감, 매력, 이끌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죠. 캐릭터도, 관계도, 도전과 여행과 결혼과 모두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이 좋아서, 재미있어서, 정이 느껴져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장치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기발한 방식을 고안하고 여러 의미를 담아서 만들어도 출연하는 사람에게 끌리지 않으면 그 프로그램의 생명력은 금세 소멸해버리고 말아요. 그렇기에 리얼 버라이어티의 출발이자 마지막은 결국 사람입니다. 1박2일의 절대적인 호감덩어리, 허당 이승기 선생처럼 말이죠.

2주에 걸쳐 자연 그대로의 것들을 간직했다는 6개의 보물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한 신안 만재도의 첫 번째 방송 주인공은 단연 강호동이었습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의 장점인 뚝심과 집요함. 그리고 진지함으로 그가 왜 이 프로그램의 버팀목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죠. 반면 만재도에서의 두 번째 방송은 1박2일에게 진짜 보물이 이승기라는 것을 보여준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여행은 이 청년을 멋지게 성장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편한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제작진의 참여로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쓰는, 아직도 순간순간이 불안 불안한 1박2일이 이젠 그에게 충분히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듬직해졌음을 증명한 방송이었죠.

정말 일취월장한 예능감입니다. 강심장의 MC 경험을 통해 단련된 센스로 재치 있게 형들의 멘트를 받아주기도 하고 상황을 딱 부러지게 정리하기도 합니다. 제작진과 시청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포착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자랑하는 이 청년은 자신의 매력을 필요할 때 뽐낼 줄도 알고, 그러면서도 그것이 거만하거나 건방지게 보이지 않게 스스로를 조절할 줄도 알죠. 하지만 정작 이승기의 진짜 매력이 나타나는 장면은 그런 계산된 모습을 보여줄 때가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 끌리는 일에 자기도 모르게 집중하거나 집착하는, 호기심에 솔직하고 못하는 것에도 고집을 부리는 자연스러움에서 이 청년의 진짜 매력이 묻어나오거든요. 마치 이번 만재도 여행에서 보여준 것처럼 말이죠.

남들은 다 잘하는데 혼자만 익숙하지 않은 낚시에서 느낀 손맛이 좋아서 피곤한 일정에도 형들을 보내고 혼자 남아 낚싯대를 기울입니다. 밥차 아주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도 한번 해보면 안 되냐면서 직접 잡은 우럭에 칼질을 하며 회뜨기에 열중하죠. 형들과 앞잡이 퀴즈를 하며 장난기 가득한 승부욕을 뽐내고, 처음 먹어보는 해물 라면의 맛에 취해 말 한마디 안하며 꾸역꾸역 먹고만 있습니다. 무얼 꾸미거나 과시하거나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나이, 그 세대의 청년이 가질 수 있는 감성 그대로를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런 계산하지 않는 막내 그대로의 모습이 1박2일 안에서 오롯이 녹아 있어요.

이제 그는 더 이상 1박2일의 초창기 때처럼 허당 캐릭터에만 머물러있지도 않고, 예능 촬영이 어색하고 낯선 풋내기도 아닙니다. 알만큼 알고 있고 자신이 방송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충분히 경험해왔죠. 오히려 가끔은 너무 능수능란해져서 능구렁이, 혹은 애늙은이 같을 때도 허다하구요. 하지만 그런 경험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가 몰입하고 싶을 때, 끌리는 것이 있을 때면 이승기는 그저 그것이 좋아서 하고 싶어서 눈을 반짝이는 막내, 아들, 손자로 변합니다. 꾸밈이 없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냥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필요한 사람의 매력. 방송에서 원하는 진정성이에요.

어쩌면 1박2일에게 지금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김C의 하차로 1박2일은 그가 가지고 있던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잃어 버렸습니다. MC몽의 불명예스러운 중도 하차는 이 프로그램만의 신뢰와 따스함에 금을 가게 만들었죠. 어색하고 적응에 힘들어하는 김종민의 부진은 다른 멤버들과의 호흡까지도 어그러뜨렸었습니다. 1박2일이 위기라는 말은 결국 사람에 대한 매력이 점점 더 떨어져버렸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요. 만재도에서의 이승기의 활약은 지금 이 프로그램이 회복해야 할 매력이 무엇인지를 은연중에 깨닫게 해주더군요. 1박2일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새로운 멤버로 참가하느냐, 어디로 어떤 모습으로 여행을 떠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출연하고 있는 이들의 사람냄새. 그들에 대한 호감과 애정을 어떻게 회복시키느냐가 아닐까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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