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기대작이었던 <월스트리트 : 머니네버슬립스>가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가 기대작인 이유는 미국에서 흥행 1위를 했던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올리버 스톤의 87년작이었던 <월스트리트>의 후속작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는 주식시장의 탐욕을 그린 영화로 올리버 스톤의 비판영화들 중에서 가장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랬던 그가 20여년 만에 속편을 내놓은 것이다. 그 사이에 전편에서 그렸던 탐욕의 금융시장은 붕괴위기를 맞았다. 이번엔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금융권에서 <월스트리트 : 머니네버슬립스> 관람붐이 일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전편인 <월스트리트>가 주식시장을 그린 대표적인 영화로 성가가 높았으니, 금융인들에게도 후편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 같다.

- 기대에 못 미친 작품 -

하지만 영화는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돈은 잠들지 않았을지 몰라도 거장은 잠들었나보다. 1편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운 통찰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세계 최고 수준의 투자금융회사에 다니는 젊은 청년이 주인공이다. 그 회사의 사장은 너무나 소탈하다. 전혀 월스트리트 금융귀족의 이미지가 아니다. 그는 착하고 인간적이고 책임감이 크다.

어느 날 그 회사가 망한다. 사장은 자기 회사가 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살한다. 그는 회사가 망하기 직전에 일개 직원인 주인공에게 상당한 액수의 보너스를 주기도 한다. 금융시장을 떠나라는 충고와 함께. 현실에선 있기 힘든 ‘착한’ 투자금융회사 CEO의 모습이다. 회사에 대해서도 책임지고 직원도 책임지는 도덕적 CEO. 마치 드라마 <대물>에 나오는 이순재나 고현정처럼 비현실적이다.

주인공은 그 사장을 애도하며 복수를 다짐한다. 회사가 망한 것은 다른 ‘나쁜’ 투자금융회사 CEO가 퍼뜨린 악성루머 때문이었다. 그는 그 투자금융회사에 대한 악성루머를 퍼뜨리는 것으로 복수한다.

정말 <대물> 수준으로 소박하다. 고현정이 눈물을 흘리며 ‘국회의원들끼리 싸우지 말고 잘 대화하라’고 말하는 것이나, 이 영화의 상황설정이나 오십보백보인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 회사가 망한 후 국가가 사회주의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금융개입을 개시한다. 그렇다면 그 망한 회사는 리먼 브라더스라는 말이 된다. 리먼 브라더스가 망한 것이 악성루머 때문이었다고?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통찰은 사라져버렸다. 올리버 스톤은 선인과 악인의 대립이라는 유치한 도식에 빠졌다.

그렇게 흘러가던 영화는 나중엔 난데없는 가족드라마로 빠진다. 이 대목에 이르러선 너무나 긴장감이 풀어져서 살짝 졸립기까지 하다.

주인공들은 탐욕 때문에 대체에너지 투자를 막는 자본가들을 비난하며 친환경적 에너지 개발 사업에 투자한다. 오늘날 미국의 위기가 ‘그린산업’ 투자를 소홀히 했기 때문인가? 월스트리트‘라는 주제를 걸고 할 말이 ’나쁜 금융가 혼내주고 좋은 산업 투자하자‘ 정도인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 훨씬 더 나은 1편 -

이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극장까지 가서 <월스트리트 : 머니네버슬립스>를 볼 것이 아니라 차라리 87년판 <월스트리트>를 찾아 볼 것을 권한다.

1편에선 주인공이 주식 투기꾼과 함께 일하다 그를 배신하는 역할로 나온다. 주식 투기꾼이 하는 일이란 기업을 인수해 구조조정, 분할매각 등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그는 경영진과 노조를 공격한다. 그가 행동에 나서면 주가가 오른다. 그러므로 주주들은 그를 열렬히 지지한다. 그는 이익을 올리고 주가를 올리는 것이 미국경제를 강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주주들의 환호 속에 그의 성공가도는 거칠 것이 없다.

어느 날 주인공의 아버지가 평생 동안 다니던 회사가 그 주식 투기꾼의 사냥감으로 포착된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통해 노조원들을 규합해 투기꾼을 돕지만 결국 그 회사가 구조조정, 분할매각될 것이라는 걸 알고 고민에 빠진다. 주식 투기꾼은 그것을 통해 그를 거대한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유혹한다. 과연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미국사회는 그 주식 투기꾼의 손을 들어줬다. 기업을 거래하고, 구조조정을 항시 수행하며,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곧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승승장구했던 것이다. 주가와 수익성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됐다. 투자금융은 끝없이 팽창했다. 주주들은 부자가 되었으며 국부와 동일시됐다.

미국은 ‘신경제’라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이 모델은 역사상 최후의 승자처럼 보였다. 전 세계가 여기에 눈이 멀었다. 금융투자만이 진리로 여겨졌다. 2008년이 닥치기 전까지. 영화 <월스트리트>는 1987년에 그 반대를 주장했다.

주주 이익 혹은 금융적 이익이 아니라 생산하는 경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의 주제였다. 주인공은 결국 노조와 함께 공동체로서의 회사를 지키고 주식투기꾼을 감옥에 보내버린다. <월스트리트 : 머니네버슬립스>의 가족적 결말보다 이것이 훨씬 현재적이다. ‘건실한 생산’ 중심의 경제가 되어야 88만원 세대의 고통이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