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류승완 감독과 김기덕 감독 사이에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혹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두 분의 영화가 공히 투박하다는 것인데, 영화 속에 담긴 이야기도 거칠었지만 그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 또한 거칠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특장점으로 작용하여 호평을 얻어내기도 했지만 반대로 이 때문에 두 분의 영화를 불편해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김기덕 감독의 경우가 심한 편이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었죠. 그러나 해외에서는 오히려 열광적인 반응을 얻으며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하셨습니다.

류승완 감독의 투박함은 김기덕 감독의 그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는 워낙에 센 이야기를 더 세게 표현하려다 보니 그리 된 것도 있겠지만, 실은 그보다는 아직 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느낌이 강해 세련미가 떨어졌다면, 전자는 다분히 의도적인 투박함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었죠.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인 '쌈마이 정신'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이 쌈마이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역시 액션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정두홍과 정재영이 벌인 혈투를 제가 본 영화 중 최고의 격투씬으로 꼽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기존의 장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우와~ 멋지다!"라는 감탄사는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당장이라도 싸움판에 가세하고 싶어 안달하는 치기어린 십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흥분으로 가득합니다. 그만큼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보다 날것에 가까운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색적인 힘이 있습니다.

다만 이처럼 확연한 색깔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독이 되어 스스로 규정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데뷔 이래로 쭉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관객이나 평단은 그 이상의 결과물을 바랐던 탓이 크겠죠. 그런데 마침내, 류승완 감독도 이제 자신의 역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영화를 한 편 탄생시켰습니다.

<부당거래>는 초등학생 5명이 연쇄적으로 살해당한 사건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자 여론에 떠밀려 대통령이 경찰청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관할부서의 책임자는 경찰청장에게 독대를 청해 묘안을 내놓는데, 사실상 여기서부터 '부당거래'가 성사됩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이란 건 특정인을 지목해 이번 사건의 책임자로 앉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건의 해결을 원해서라기보다는 결국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됐을 경우 모든 비난을 안고 물러날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광역수사대의 에이스라 불리는 최철기 반장이 사건을 맡게 됩니다.

하필 최철기 반장이 독배가 든 잔을 하사받을 인물로 택해진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력도 뛰어나지만 경찰대학 출신이 아니라 여차하면 언제든지 뒤탈 없이 내칠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최철기 반장도 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진급에서 번번이 미끄러진 탓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줄타기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범행현장에는 최소한의 증거조차 남아 있지 않아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만한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애당초 경찰청장부터 최철기 반장까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단순히 여론을 무마할 도구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급기야 최철기 반장은 부여받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자신이 뒤를 봐주고 있는 장석구에게 부당거래를 제안합니다. 물론 장석구 역시 자신의 이득을 위해 최철기 반장과 같은 배를 타기로 합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용의선상에 올랐던 인물 중 가장 그럴듯한 자를 찾아내 범인으로 둔갑시키려는 계략을 세우게 됩니다.

한편 조작수사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이해관계 뒤에는 든든한 장인을 등에 업은 주양 검사가 얽혀있음이 밝혀집니다. 그 또한 최철기 반장처럼 재벌의 뒤를 봐주고 있었는데, 그 재벌은 다름 아닌 장석구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최철기 반장과 주양 검사는 묘한 대립구도를 갖추게 되면서 서로 물고 물리는 판국에 이르게 됩니다.

<부당거래>는 두 가지 면에서 <사생결단>과의 기시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선 주연을 맡은 두 배우 황정민과 류승범이 동일하게 출연했으며 두 캐릭터의 성격과 관계 등도 살짝 겹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류승범이 <사생결단>에서 연기한 이상도는 거의 일방적으로 이용당하고 몰리는 캐릭터였던 데 반해, <부당거래>의 주양은 최철기와 시종일관 평행선을 달리며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아울러 극 중에서 거의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부당거래가 오고 가지 않던 사이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그럴 법도 한 상황에서 서로의 자존심과 잇속을 차리고자 끝장을 보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최철기와 주양은 류승완 감독의 작품에서 페르소나처럼 등장하는 마초적인 캐릭터죠.

두 번째는 다들 짐작하고 계시다시피 공권력을 가진 자들의 비리와 부패에 대한 고발입니다. 황정민은 <사생결단>에 이어 <부당거래>에서도 자신의 야심을 위해 경찰로서의 직권을 오용하고 남용합니다. 그 밖에도 <부당거래>에 등장하는 많은 공무원 양반들이 그러한 캐릭터로 비춰지고 있는데, 여기서 두 작품의 중요한 차이점이 나타납니다. <부당거래>는 <사생결단>의 이야기에 뼈와 살을 붙이면서 전 국가적으로 판을 키웁니다. 후자에는 그저 경찰과 범죄자의 결탁이 있다면 전자는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군림한 자들이 점층적으로 최하층에 깔린 자들을 짓밟고 내려오는 비루한 현실을 조명합니다. 이와 동시에 정,재,검,경 그리고 언론까지 끌어들여 뼛속까지 썩은 더러운 커넥션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칩니다.

비난여론이 들끓자 대통령이 친히 경찰청에 납시는 영화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보면 이것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경찰청장이 '정치 퍼포먼스'라고 칭한 이 방문이 결국 시발점이 되어 경찰청장 - 부서장 - 반장 - 기업가 - 전과자에 이르는 부당거래가 성사됐던 것입니다. 물론 이때 을의 입장이나 의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달리 부당거래가 아니란 것입니다. 그리고 반장과 기업가 사이에는 또 다른 부패권력인 검사와 기업가 및 언론이 한데 엮입니다. 이를 통해 <부당거래>는 먹이사슬의 구도와 함께 그들만의 공생관계를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최근 <월 스트리트:머니 네버 슬립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했던 올리버 스톤과 달리 류승완 감독은 이들을 향해 뽑은 칼을 들고 마지막까지 우직하게 찔러나갑니다. 결말부에 다다르면 마치 박찬욱 감독의 그것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일면으로는 조금 극단적인 선택인 듯도 하여 흥행에서의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만, 이러한 끝맺음에 이르기까지의 훌륭했던 과정이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준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덧붙여서 결말도 극단적이고 극적인 표현을 앞세웠을지언정 억지스럽지는 않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도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영화의 근본이 어디까지나 쌈마이 정신에 있다는 것을 유감없이 증명합니다. 여전히 에너지가 가득하다는 점도 변함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쌈마이 정신이라 함은 싸구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생선과도 같은 날것의 느낌을 지칭합니다) 그러면서 외적인 표현수단만이 아닌 내적인 이야기를 녹여내는 리드미컬한 연출력도 한층 능수능란해졌다는 것이 <부당거래>의 핵심입니다. 사실 <부당거래>는 시나리오도 좋긴 하나 치밀함과 예리함에선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류승완 감독 특유의 연출과 만나면서 시너지 효과를 얻어 정체성이 뚜렷한 영화로 탄생했습니다. 분명 <부당거래>는 날이 잔뜩 서 있는 사회비판적인 영화로 분류하기는 좀 힘들지만, 그 덕분에 차별화를 이루며 상업영화로는 어지간한 경지에 다다라 있습니다.

'쌈마이'의 정의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선을 그을 재주가 제게는 없습니다. 그런데 혹자는 이를 두고 '웰메이드 키치'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예술사조에서 '키치(Kitsch)'는 종래의 천박한 대중문화를 비꼬는 용어에서 이제는 역으로 근엄함을 앞세우는 기성예술에 대한 반발심으로 변했다고도 합니다. 어쨌거나 현대사회에서의 영화는 가장 대중적인 예술로 꼽히는 만큼 류승완 감독의 그것에게는 웰메이드 키치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도 같군요. 앞서 <부당거래>가 상업영화로는 어지간한 경지에 다다랐다고 했던 것도 이와 비슷한 의미입니다. 물론 저는 근본적으로 고급예술과 자신의 품격을 동일시하며 대중문화를 얕잡아보는 자들의 허위의식을 역겨워하는 쪽입니다만...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는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소한 XX인 척하지는 않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가 참 좋습니다.

덧 1)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부당거래>에서 기자가 가진 힘은 검사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기업가에게 반말 찍찍 내뱉고 검찰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장인을 둔 막돼먹은 검사가 기자 앞에서는 설설 깁니다. 왜일까요? 이것은 대통령이 이른바 정치 퍼포먼스를 벌인 이유와 일맥상통하는데, 그만큼 여론의 향방이 그들에게 치명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기자를 구워삶으려고 안달할 수밖에요. 다시 말해서 영화 속에 보이는 이 부당거래의 꼭짓점에는 바로 '우리'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의 방문이 경찰청장에게 부당거래를 하도록 암묵적으로 지시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덧 2) 일부 기자들은 공권력에 기생하는 부패한 기자들을 묘사한 데 대해 불쾌해했다고 하던데...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게 아주 설득력이 있어 보이더군요. 참 이상하죠, 일부 기자 양반님들? ㅋㅋㅋ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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