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빙상장 건립이 무산됐다' '국내 최강을 자랑하는 벽산건설 핸드볼팀이 모기업 워크아웃으로 10월 31일을 기해 해체한다. 하지만 아직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받아줄 만한 팀을 찾지 못해 자칫 국가대표 선수들이 무적 선수 신분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성남시와 용인시 등 경기도체육회 산하의 주요 지자체들이 스포츠팀 운영 예산을 축소하고, 팀 해체를 추진하고 있다'

위 내용은 지난 1주일 사이, 소위 '비인기 스포츠'에서 흘러나온 소식들이었습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같은 데서는 좋은 성적을 내고도 운동에 전념할 수 없게 만드는 이런 환경은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뚜렷한 대책이나 시스템 변화 또한 나오지 않고 있어 우리 스포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아마추어 스포츠의 기반마저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입니다.

▲ 벽산건설 주포 김온아. 이 호쾌한 슈팅을 잘 못 하면 못 볼 지도 모른다 ⓒ연합뉴스
최근 아마추어 스포츠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이 충격적인 것은 대부분 가장 최근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과 관련돼 있는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김연아 빙상장'은 '피겨 여왕' 김연아가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뒤 후배 선수들의 환경 개선을 위해 서울시, 경기 군포시 등을 찾아 요구한 사안이었습니다. 또 벽산건설 여자핸드볼 팀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감동의 동메달을 따냈던 오영란, 문필희, 박정희, 김온아, 유은희 등과 임영철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었고, 얼마 전까지 최다 연속 우승 기록을 갈아치우던 여자 핸드볼 최강팀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성남시, 용인시에는 쇼트트랙팀이 창단해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 출신 쇼트트랙 스타 안현수와 밴쿠버 동계올림픽 은메달 2개를 따낸 성시백이 각각 소속돼 있습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의 '몸집줄이기'로 그 가운데 '비인기 종목 팀'들이 제일 먼저 '희생양'으로 떠오르면서 현재 활약 중인 '스포츠 영웅'들의 위상에도 흠집이 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비인기 종목 육성을 위해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발표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잇달아 발생한 것도 안타깝습니다. 정부는 지난 8월, '취약 종목' 운동팀을 창단하는 기업들에게 법인세, 소득세를 감면하고 종합부동산세를 비과세해주는 방안을 마련해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지난 2월에는 15개 비인기 종목에 대해 모두 20억 60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체육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관점보다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팀을 운영하고 지원책이 나오다보니,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그저 팀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는 처지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잠깐 언급하는 것이지만 15개 종목에 20억 6000만원, 즉 1개 종목당 평균 1-2억 원 안팎에 불과한 돈으로 비인기 종목을 육성하는 것도 뭔가 이상합니다. 비인기 구기 실업팀 연간 예산이 10-20억 원에 달한다고 보면 전체 종목에 1-2억 원이 배정된다는 것은 비인기 종목을 확실하게 육성하고 키우겠다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액수입니다.)

최근 한국 스포츠가 국제 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금메달 13개를 따내며 7위에 올라 사상 최고 성적을 냈고,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역시 빙상 전 종목 금메달 등 5위에 오르며 역시 최고 성적을 냈습니다. 또 2010 남아공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을 비롯해 U-17 여자월드컵 우승, U-20 여자월드컵 3위 등 남녀 축구팀의 선전도 잇따랐습니다. 그 밖에도 2009 WBC 준우승, 세계핸드볼선수권 남녀 선전, 김연아, 장미란, 박태환 등 개인 종목 선수들의 선전도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세계 톱10 수준을 넘어서 있고, 그에 따라 국민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저변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 성남시청 소속 쇼트트랙 스타 안현수 ⓒ연합뉴스
그럼에도 오히려 이러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이 '무적' 신세를 겪고 '떠돌이' 신세를 겪는다거나, 금메달을 배출한 나라에 운동할 만한 환경이 마땅치 않다는 말이 해외에 제대로 다뤄진다면 과연 이 같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 그리고 국회마저 이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저 말로만 하는 '생색내기'에 그치고 운동선수들이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고 있는 것은 오히려 우리 스포츠의 후진(後進)을 더욱 촉진시키는 계기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미 1980-90년대 좋은 성적을 냈던 몇몇 종목들이 시스템적 문제, 선수 수급 문제 등으로 경쟁력이 떨어져 추락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최근의 성과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얘기고, 덩달아 서두에 언급한 문제를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제 보름 뒤면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다가옵니다. 지금은 관심이 덜 하지만 아마 대회에 들어가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열광적으로 응원하면서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질 것이고, 대통령은 '국위 선양'한 선수들을 위해 청와대로 초청해서 '비인기 스포츠를 육성하겠다'고 분명히 이야기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내일은 세계 정상'을 꿈꾸며 자라는 선수들, 또는 금메달을 따낸 선수를 위해 오랫동안 함께 훈련하며 뒤에서 도운 선수들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계속 선수 생활을 하고 언젠가는 소리 소문 없이 은퇴하고 다른 삶을 살 것입니다. 일전에 제가 인터뷰했던 현역 수영 선수는 "운동선수임에도 마음껏 운동을 하지 못한 것이 개인적으로 후회스럽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는데 세계 톱10을 자랑한다는 한국 스포츠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분명히 안타까운 일이고,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뿐이 아니라 정말로 선수와 이들을 지도하는 지도자 등 체육 일선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제대로 된 시스템과 체육 환경을 만들어서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이 함께 발전하고, 그러면서 좋은 선수들도 많이 나오고, 더 이상 '비인기 종목'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근본을 제대로 갖추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보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육성 대책을 통해서 지방자치단체들의 갑작스러운 발뺌 행보, 생색내기식 대책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일이 이젠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근본을 잡지 못하면 우리 스포츠의 발전은 없고,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에서 국민을 기쁘게 하는 일도 점점 사라질 것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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