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간부 동향 파악 문서 논란으로 시끄럽다. 언론노조, 기자협회 등이 성명서를 내놓았고, 방송사들도 연일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는 있을 수 없는 일, 용납될 수 없는 일이 생겨 유감이라 했다. ‘언론자유’를 존중하는 신정권과 부합되지 않은 구태라며 일개 관료의 잘못을 질타했다.

지난 번 언론자유와 관련된 칼럼이 참패를 보았다. 재미없고 대중과 공감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쩌랴. 여전히 심각한 위기의 현실은 고스란히 남아있고, 언론자유·자유언론의 실천공간은 위축되고 있음을. 그 보호의 최종 책임은 독자 여러분에게 넘기고, 무관심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또 한번 재미없는 주제에 관해 써 본다. 우리와 한참 같이 갈 한 외국인에 관해서다. 심심하시면 함께 따라잡아 보자.

개혁을 '두더지 게임'에 비유한 데이비드 엘든 … 그의 행보 주시해야

▲ 중앙일보 1월7일자 3면.
데이비드 엘든. 62세.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인. 홍콩 거주. 고교 중퇴 후 19살 때 런던의 호주금융그룹 지사에 입사, 이후 HSBC 그룹 소속으로 중동 및 아시아 각지에서 37년 근무. 회장 역임 후 2005년 5월 은퇴. 항셍은행 회장, 스와이어 퍼시픽사 회장, 홍콩상공회의소 회장 역임. 국제적 컨설팅 전문회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고문, 두바이국제금융센턱감독원 회장,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 전 의장 출신. 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 겸 대통령 자문역.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시작된다면 두바이는 물론 중동의 다른 나라의 자금도 흘러 들어올 것이다”라고 장담하는 정권의 실세. 그래서 비판적 저널리즘이 훨씬 더 관심 갖고 행보를 지켜봐야 할 인물.

“반개혁 세력(두더지)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한국의 ‘개혁’에 관심 있었다. 그리고 꾸준하게 조언하고, 일관되게 발언해 왔다. ‘개혁’을 ‘두더지 게임’에 비유했고, 정부의 ‘개혁의지’가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으며, ‘개혁 없이 외국인투자 없다’는 공식을 만들어 냈다. 실사비용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98년 서울은행 인수를 막바지에 포기했지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참여할 생각이 없지는 않다”고 밝히는 그다. 세계 4위 은행그룹인 홍콩상하이은행(HSBC) 회장으로서 2001년 4월 14일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그해 11월 입국 때는 금융감독위원장, 경제부총리, 대통령을 만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는 기사가 나온다.

기자회견에서 엘든 회장은 서울은행을 인수할 의향이 현재로서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IG 모르스 그린버그 회장, 도날드 그레그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 등 8개국 15명과 함께 이른바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에 참여한다. 서울시가 국제 경제의 중심도시 역할을 하려면 ‘외국인들에 대한 개방적인 시각과 규제완화’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일년 뒤 당시 이명박 시장은 바로 이 SIBAC 총회에서 “외국인 투자 진흥을 위해 서울 도심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구상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밝힌다. “청계천을 복원한 뒤 주변지역을 개발, 국제금융기관과 다국적 기업을 위한 인텔리전트 인프라와 업무단지를 조성”할 계획에 엘든 회장도 “청계천 복원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화답한다.

▲ 동아일보 1월7일자 2면.
2003년에도 그의 바쁜 행보는 계속된다. 태평양경제협의체(PBEC) 서울총회에 참석 중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이 외국인에게 친화적이지 않다는 인식”과 함께 ‘노사분쟁’을 외국기업 투자의 걸림돌로 꼽는다. “서구 언론에 보도되는 파업사진을 보면 한국이 투쟁이나 싸움만 일삼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쉽다”는 것이다. 10월 재입국한 그는 “여건만 갖춰진다면 HSBC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홍콩에서 서울로 옮길 수도 있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국내 은행인수에 대한 관심을 표력 한다. 공언한 대로 목표는 더 이상 서울은행이 아니다. <동아일보>는 10월 31일 엘든 회장이 제일은행과 한미은행 인수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보도한다.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의 통치와 데이비드 엘든

2004년 우리의 엘든씨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현 전경련 회장을 이어받아 PBEC 국제회장으로 취임하신다.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길게 노조의 문제에 관해 가르침을 준다. “비교적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나라 중에 어떤 국가에서는 노조가 완전히 비현실적 제안을 꺼내서 경제 자체를 패망시키기도 한다”면서, “한국이 그 지경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국사회가 노조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인 것 같다”고 논평했다. ‘한국이 아시아금융의 중심이 되려면 해외자본의 직접투자를 유치하라’, ‘수도이전은, 그냥 있는 그대로 내버려둬야 한다’는 등의 다양한 국정 조언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회장님의 관심은 결코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엘드씨가 2005년 5월 HSBC 회장직을 떠난다. 그러나 SIBAC 의장으로서의 활동은 결코 멈추지 않아, 서울시의 디지털 경쟁력 제고를 촉구하신다. 2006년 10월 SIBAC 총회를 이끄시고, 2007년 3월에는 이른바 ‘MB호’ 출항을 알리는 이명박 출판기념회에 영상 축하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6월 12일 두바이국제금융센터 회장의 자격으로 내한한 그는 세계경제연구원 주최 세미나의 기조연설에서 “한국에서는 여전히 외국인을 가르는(차별하는) 태도가 우세하다”고 역설한다. “HSBC와 두바이가 성공한 비결은 세계화로 인한 기회를 끌어안고자 하는 자발성”이라며, “한국은 세계화에 대해 혼재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질타했다. 외국인의 경제참여를 환영하지 않는 관료사회를 비판했다.

MBN과 동아일보가 각각 “한국 경제 여전히 외국인 차별”, “한국, 외국자본은 원하지만 외국인 경제참여에는 우물쭈물”이라고 정리한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행보나 언행에 대한 어떤 심층적, 비판적 분석의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엘든씨의 ‘시장개방’, ‘세계화’ 메시지를 시비하지 않는다. 10월 SIBAC 총회를 위한 방한 때 이명박 후보를 만난다. 선거 유세를 위해 전북을 찾는 이 후보는 “엘린 회장은 내가 새만금발전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으로 세계 투자자들을 만나겠다면 자리를 주선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돈독한 우정, 두터운 신뢰 관계의 표시다. 엘든씨도 “전 시장이 (대통령에) 당선돼 일정한 역할을 제의해 온다면 역할을 맡을 용의가 있다”고 응답한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회장 직에서 물러난 이후 HSBC 관계자들과 자주 연락하지는 않지만, “금융인으로서 외환은행 딜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의중을 밝힌다. 금융감독위원회가 HSBC의 외환은행 인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한국 금융감독 당국도 HSBC의 장점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한다. 한국일보가 “HSBC, 외환은행 인수, ‘바람 잡기’”라는 제목의 짧은 기사를 내놓았다. 다시 조용해지고, 2007년 11월 한나라당은 엘든씨가 이명박 후보의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고문으로 참여키로 했음을 공식 발표한다. 그리고 이 후보 당선 후 그는 마침내 ‘인수위 속의 인수위’라는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으로 화려하게 전면에 나서신다.

외국인 차별을 당당히 극복하신 분이다. ‘국민’을 대신해 ‘국가경쟁력 강화’의 중대 직책을 맡은 인물이다. 운하사업과 새만금 문제로, 중동자본 유치로 바쁘실 거다. 국내은행 인수 건에 대해 어떻게 자문하고, 또 ‘반개혁적 두더지’가 될 게 뻔한 노조에 관해서는 어떤 전략을 제안할지 궁금하다. 앞으로의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의 통치가 그의 이전 행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기에 우리가 엘든씨를 놓치는 것은 한 마디로 멍청한 짓이며, 특히 노조를 비롯한 진보진영이 그를 소홀히 대하는 것은 정말 큰 코 다칠 일이다. 측근이 대통령의 ‘친구’로 소개하는 미스터 엘든씨를 따라잡아보자. 이 글을 끝까지 읽어내신 분의 인내심이라면,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다. 재미는 별로 없겠지만~^^

지금처럼 ‘비평의 무기’를 예리하게 연마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때가 있을까? 벼락같은 이성의 도끼질, 결을 거스른 감수성의 대패질에 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래디컬’한 저널리스트로의 변신. 자본권력과 국가권력, 매체권력, 지식권력이 나의 상대다. 가끔 참패당하고 때로는 붙잡고 버티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왼손펀치 한방을 가진 선수로 남고 싶다. 인민은 착하고 또 무섭다. 이들과 함께하는 비평 말고 그 어떤 것이 후기근대, 후기자본의 불모지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목청 낮춘 채 예의주시하는 보통사람들의 삶, 이들의 언어에 스며들어 비평의 유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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