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이 토크쇼를 비롯해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털어놓는 이야기들이 모두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혹은 별다른 가감 없는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짓입니다. 녹화 참여가 결정되면 해당 프로그램에 적합한 이야깃거리들을 찾기 위해 개인 스텝들은 물론 전략회의 같은 사전 준비에 들어가고, 작가들과의 사전 인터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한 조율을 하죠. MC들이 들고 있는 빼곡하게 글씨가 적혀 있는 큐시트는 어떤 게스트가 무슨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강의 나침판입니다. 유능한 진행자의 조건은 그런 준비된 것들을 얼마나 적재적소에 위치시키고 분위기를 자연스럽고 편하게 유도해서 그 이야기를 잘 살려줄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어요.

같은 의미에서 방송에서 그들이 말하는 것들은 자체의 심의 기준이 확고하게 마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입지와 노리고자 하는 목표, 이야기의 파급력을 생각하면 어디까지 이야기하면 되겠다, 이 프로그램의 시간대와 주요 연령대를 생각해보면 어느 수위의 표현까지 가능하겠다는 어느 정도의 계산이 제작진에게나 출연하는 손님들에게나 있다는 것이죠. 설혹 아슬아슬하게 그 경계를 넘어선 도를 지나친 이야기가 있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제작진이라면 녹화 후 편집을 통해 걸러 내거나 순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구요.

모두가 경쟁적으로 자신의 연애 경험 이야기, 혹은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식의 사랑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도 결국 이런 유의 이야기가 가장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강심장에서 장미인애가 무리수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이와 신체적 특징 등의 세세한 개인 신상까지 이야기하면서 과거 남자 친구의 변심을 이야기하는 것도, 틈만 나면 출연한 아이돌들에게 요즘 누구에게 끌리냐고 물어보는 것도 다 이런 이야기가 잘 팔리는 소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거죠.

그렇지 않나요? 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출연자들의 연예경험이라는 것도 자신이 딛고 있는 자리에 맞춘, 무척이나 얄미울 정도로 계산된 정도만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같은 소재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화보 촬영 이후 과감함과 솔직함, 혹은 거칠 것 없는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장미인애의 말과, 사장님의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사랑도 조절해야 하는 아이돌의 사랑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설혹 지금 사랑을 하고 있더라도, 혹은 자신 역시도 그런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런 폭탄 발언은 아이돌의 위치에서 벗어나 한참 뒤에 ‘그때 사실은...’하면서 뒤늦게 털어놓게 되겠죠.

토크쇼라는 것은 과거의 회고담을 듣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현재 어떤 위치에서 얼마만큼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자신이 대중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다가가고 싶은지, 이 이야기로 어떤 효과를 얻기를 원하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장이에요. 왜 저 사람이 그렇게 오버하지?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꽁꽁 숨기며 내숭을 떨지? 싶은 것들도 찬찬히 따져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행동을 하고 편집을 하는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번 주 강심장에서 제가 느낀 것은 이젠 어머니로서의 모성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윤손하,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부각받고 싶어 하는 절박한 위치의 장미인애와 광희의 노력, 천사표로 알려진 닉쿤이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 우영이 순진한 컨셉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 어떤 2NE1의 예능에서의 캐릭터는 엉뚱함으로 고정되고 있다는 것, 아이돌에게 우결의 힘이란 대단하구나를 다시금 확인하는, 뭐 그런 것들이었어요. 조금은 특이한 시각이지만 나름 재미있게 쇼를 즐기는 방식이죠.

그래서 방송에서 아무 생각 없이 솔직하고 순진하다는 것은 결코 미덕도, 장점도 아닙니다. 한순간에 반짝하며 주목받을 수는 있지만 프로그램에서 털어놓는 말 한마디, 작은 에피소드들이 만들어내는 캐릭터로 살아가는 것이 연예인들이니까요. 그러니 개개의 이야기가 가지는 화제성에 놀라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이고 요즘은 누구를 관심에 두고 있는지를 따지며 탐정 놀이를 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겠지만 왜 그런 이야기를 그 프로그램에서 그 시점에서 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도 토크쇼를 즐기는 또 다른 재미입니다. 누구는 자신과 헤어졌던 톱스타에 대한 폭탄발언을, 누구는 연애 한번 못 해봤다고, 가을이니까 누군가를 소개받고 싶다는 두근거리는 심정을 말하는 극과 극의 연예고백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에만 맞추어 휘둘리기에는 다음 주에도 유사한, 혹은 또 다른 고백들이 수두룩하게 터져 나올 것이구요. 이야기는 사라지고 폭탄발언은 잊혀지더라도 결국 사람은 남거든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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