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500조, 한 가구당 7,022만 원인 셈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리는 대출 정보들, 우리는 어쩌면 24시간 빚의 유혹에 놓여 있다. 대학에 들어가면 학자금 대출, 결혼을 하며 집 장만을 위한 대출, 그리고 나이가 들어 사업자금 대출 등 인생의 고비마다 빚은 우리 삶의 '레버리지(지렛대)'가 되고 있다. 긍정적으로 정의하면 빚은 소득, 수입이 발생하는 시점과 돈이 필요한 시점 간의 갭을 미래소득이나 수입을 담보로 미리 당겨서 쓰는 유용한 수단이다. 하지만, 그 긍정적 수단의 증가폭이 심상찮다.

EBS 다큐 프라임은 지난해 12월 3일부터 <부채사회>, <빚의 역습>, <미래의 빚> 3부작으로 <경제대기획 ‘빚'(DEBT)>을 편성하여 급증하는 우리 사회 빚의 현실과 대안에 대해 고민한다.

부채사회

EBS 다큐 프라임 <경제대기획 ‘빚'(DEBT)> 편

가구당 7000만 원이 넘는 가계부채라지만 빚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각자가 처한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만화작가인 허안나 씨는 대학 1학년 2학기부터 받았던 학자금 대출을 졸업과 동시에 갚지 않으면 월급에서 원천징수하겠다는 문자를 받고서야 비로소 그 무게를 실감했다. 그리고 만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담보로 잡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직장을 10여 년간 다녀야 했다.

최춘근-박금순 씨 부부는 ‘빚 권하는 사회’의 천연기념물 같은 부부이다. 저축장려 시대를 살아온 부부는 융자 없이, 당시 1억 2천만 원짜리 집을 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그런데 이제 빚 없이 살아온 삶에 대해 부부와 자녀의 생각은 '다시 태어나도 빚을 지지 않겠다'부터, '그 돈이었으면 사업적으로 투자를 해서 더 큰 이익을 보았을 텐데', 그리고 '내 돈 대신 할부로 차를 사는 게 편하다'까지, 동상이몽이다.

그런가 하면 택시운전 25년차의 김강수 씨에게 빚이란 어쩌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그의 재산목록 1호 택시와 집을 가지게 해준 고마운 수단이다. 2700만 원을 대출 받아 개인택시를 사 그 빚을 3년 만에 갚았고, 15년 거치 주택대출은 아직도 한 달에 70만 원씩 갚고 있지만, 그 빚이 없었다면 택시를 사고 집을 가지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 장담한다.

한 술 더 뜨는 경우도 있다. 부동산사업자 박정수 씨는 빚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케이스다. 수원에만 150채, 전국적으로는 300여 채, 거기에 아내 소유의 300채를 더하면 600여 채의 아파트를 소유한 그는 자기 돈 18억에 1300억의 빚을 사업의 동력으로 활용한 케이스다. 이렇게 박정수 씨처럼 사업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집을 가지기 위해 월세를 적극 활용하는 케이스도 있고, 편의점을 하는 이우성 씨처럼 이율을 활용하기 위해 부채 상환을 미뤄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 또 누군가에게는 기회 혹은 삶을 업그레이드 시킬 지렛대, 심지어 사업수완이 되는 빚. 저마다 각자 다른 이유로 빚을 지는 것이 이상해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빚의 역습

EBS 다큐 프라임 <경제대기획 ‘빚'(DEBT)> 편

그런데 빚은 참 묘하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학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 경매에 돈을 거는데 묘하게도 현금과 카드의 금액이 5~10% 정도 차이가 났다. 3개월 할부를 염두에 두었다고도 하지만, 사람들은 외상일 경우 더 쉽게 돈을 쓰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현금으론 까다롭던 사람들이 분명 자신의 돈이 지불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카드 등 빚의 경우 한결 조건에 있어 너그러워진다. 그리고 물건을 파는 회사들은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정말 무이자가 아니라 할부를 할 것을 감안하여 애초의 가격이 높게 책정된다는 '무이자 할부', 하지만 사람들은 그 문구에 쉽게 지갑을 연다.

이렇게 빚에 너그러운 사람들, 심지어 빚을 지고도 무감각하다. ‘지금 당신의 빚이 얼마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사거나 사업을 하기 위해 은행권 등에서 빌린 돈의 금액을 댄다. 하지만 할부로 산 핸드폰, 집안을 채운 가전제품, 마이너스 통장, 아직 고지서가 날아오지 않은 이번 달 카드요금에는 무감하다. 자동차 할부금은 어떻고. 이렇게 사람들은 빚을 지고서도 빚에 무감해져 간다.

그럼에도 무던해질 수 없는 것이 주택대출 등이다.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놓아야 한다는 의식은 1936년 이래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는 부동산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1969년 강남개발 시작, 1977년 반포 2단지, 압구정 현대아파트로부터 여의도 목화 아파트 분양은 45:1의 경쟁이 붙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첨만 되면 웃돈이 얹어지고 순식간에 3배로 뛰는, 심지어 한 해 40%가 오르기도 했다는 신기루 같은 시절에 그 누가 그 한 몫에 뛰어들지 않겠는가.

EBS 다큐 프라임 <경제대기획 ‘빚'(DEBT)> 편

하지만 그건 IMF때까지였다. 그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부동산 신기루에 뛰어든 가족의 허망한 역사를 마민지 감독은 <버블 패밀리>를 통해 실감나게 설명한다. 50%의 융자를 받아 집 장사를 했던 마 감독의 부모는 IMF 후 금리 인상을 감당하지 못했다. 땅을 사서 집을 지어 건물세를 받자는 부모님, 여전히 그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신다.

IMF를 지나 2008년 부동산 불패 신화는 다시 한번 이자 폭탄을 맞고 만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하우스푸어'다. 일산에서 6천만 원으로 분양받아 그걸 다시 1억 4천에 팔고 하는 식으로 집으로 돈을 좀 만졌던 이동훈 씨. 2008년 당시 10억을 빌려 13억 짜리 집을 샀다. 하지만 부동산 시세가 폭락하여 10억에 그 집을 팔아야만 했고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부동산 버블이 낳은 결과다.

이런 '부동산 버블'이 가져온 파산은 우리나라만의 사례가 아니다. KDI 박정호 교수에 따르면 도쿄에는 한때 평당 100억 짜리 집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을 넘어 하와이와 미국으로까지 번져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며 그럴 듯한 녹지를 사들이는 식의 부동산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하지만 91년에서 2005년까지 무려 15년간의 경기하락 과정에서 오피스는 40%, 주택은 반토막이 되었고, 일본인들이 많이 사들였다는 미시시피 주 경우 카타리나가 강타해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EBS 다큐 프라임 <경제대기획 ‘빚'(DEBT)> 편

하지만 최근 역사에서 부동산 버블과 관련하여 전 세계적으로 충격적 교훈의 사례가 된 건 뭐니뭐니해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이다. 집값의 1%만 내도 집을 소유할 수 있는 구조. 2000년대 초저금리 상황에서 넘치는 유동자산이 신용도가 취약한 서브프라임 계층에게까지 대출이 됐다. 이 대출을 받아 대규모로 투자를 하며 생겨난 부동산 버블, 결국 2004년 이자율이 오르자 결국 원금과 이자 등 집값을 갚지 못해 파산에 이른다. 그 '파산의 도미노'는 158년 전통의 리먼브라더스를 비롯한 금융권으로 이어지고,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까지 흔들었다.

고스란히 채무자에게 돌아가는 부담, 하지만 문제는 채무자 개인에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채무 불이행은 그 지역의 소비 생활을 위축시키고, 이는 주변 산업도시의 불황으로 이어지며 부메랑처럼 나라 전체에 번져나간다. 즉 부채 디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10여 년 캘리포니아 스톡튼 거리에는 아직도 방치된 집들이 남아있고, 상권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 사태를 겪은 미국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미국 전체의 경기는 좋아졌을지 몰라도 개인의 고통은 진행 중이라고.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