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2018년 가장 화제가 된 이슈는 무엇이었을까? 세밑의 <SBS 스폐셜>은 올해 떠들썩하게 시작하여 귀신처럼 사라져버린 암호화폐, 비트코인 열풍을 추적한다.

안 하면 바보가 된 듯했다. 발 빠르게 시작한 사람은 누구라도 돈을 만졌다는데, 몇 분 만에 일확천금을 벌었다 하고 그 인증샷이 빈번하게 올라오기도 했다. 곧 우리가 쓰는 지폐나 카드 대신 새로운 금융 시스템과 화폐 질서가 등장할 것이라던 전망이 등장하며, 혹여 나만 뒤처져있는 건 아닌가 하는 자조적인 생각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2018년이 저무는 이즈음 그 열풍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게 눈 감추듯 사라져 버린 열풍, 그 많던 돈 벌었다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큐는 그 '돈 벌었다던'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젊어부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문주용 씨. 비트코인 데이트레이더인 그는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펴낸 바 있는 이른바 슈퍼 개미다. 그는 3000만 원으로 시작하여 한때는 2분 만에 4000만 원을 벌기도 했다. 그렇게 1억 5천만 원의 장비를 갖춰 이른바 '채굴(거래 내용을 암호화한 걸 수많은 수의 조합을 맞춰 풀어 그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얻는 방식이 금을 캐는 방식과 유사하다 하여 붙인 이름)'을 해서 순수익 1억을 넘게 벌었던 그도 연일 계속되는 하락장에 맥을 못 춘다. 채굴을 위해 갖췄던 장비도 전기세를 감당 못해 처분했다. 그도 정작 수익을 냈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대신 돈 잃었다는 사람들만 난무한다고.

일확천금에의 일장춘몽

SBS 스폐셜 ‘2018 고스트 머니’ 편

2009년 1월 처음 등장한 암호화폐 비트코인은 그로부터 10년 만에 2000%나 상승했다. 비트코인이 오르자 다른 코인들도 더불어 들썩였다. 하루에 300에서 3000%까지 상승하며 하룻밤에 수억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무용담이 넘쳐나자, 대출받아 뛰어든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때 뛰어든 대학생 3인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다. 주식시장과 달리 24시간 장이 열리는 암호화폐 시장, 쉽게 접근 가능한 그곳에 젊은 층과 초보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중독성이 강한 그 시장,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는 그들은 비트코인을 '내 손안의 카지노'라 정의 내린다.

그 '내 손안의 카지노'에서 일장춘몽을 꾼 사람이 있다. 보험을 해약하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뛰어든 차형민 씨는 일주일 만에 다섯 배를 벌고, 4억 가까이 수익을 냈다. 이게 로또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2주 만에 끝났다. 1억이 759만 원이 되어버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비트코인으로 수억을 주무르던 그는 1억의 손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1억을 잃고 은행에서 독촉전화를 받는 지금에서야 자신이 꾼 게 ‘일장춘몽’이었음을 실감한다.

27살 김민석 씨는 1년을 뼈 빠지게 고생하여 7천만 원을 벌고, 그 돈을 1년 만에 다 날렸다. 돈만 날린 게 아니다. 삶의 의미도 잃었다. 33살 나민영 씨는 수익이 생길 때마다 현금화하여 시계니 차니 카메라니 '소확행'을 즐겼다. 하지만 잠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초조함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외줄타기'하는 기분이라 호소한다.

비트코인이 뭐길래?

SBS 스폐셜 ‘2018 고스트 머니’ 편

지금까지 거래는 '은행'이라는 기관을 통해서만 이루어져왔다. 이런 중앙집중기관 없이 시스템에 참여하는 사람들끼리 공동으로 거래 정보를 기록, 검증, 보관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분산장부 기술을 '블록체인’이라 하고, 이 블록체인 참여에 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 '암호화폐'이다. 그리고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올해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 열풍에 발맞춰 지난 1월 18일 JTBC <뉴스룸>에서는 유시민,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등을 초빙하여 토론을 벌였고, 이 토론 자체가 화제가 된 바 있다. 일찍이 유시민 작가는 tvN의 <알쓸신잡>에서 비트코인 열풍을 17세기 튤립 버블의 21세기 글로벌 버전이라 정의내린 바 있다. 실물 경제를 잘 모르는 엔지니어들이 만들어낸 아이디어에 전 세계 사기꾼들이 다 모여들어 장난을 쳐서 돈을 뺏어먹는 과정에 불과하니, 정부가 나서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단정 지었다.

그로부터 1년여 지난 12월 15일, 정부는 가상화폐 실명제 추진을 밝히며 시세조작, 자금세탁, 탈세 등 거래관련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검찰, 경찰, 금융 당국의 합동 조사를 통해 엄격히 대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홍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홍기훈 씨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믿음에서 시작된 버블에 불과하다며 유시민 작가의 의견에 동조한다. 이리저리 포장하지만 결국 고위험, 고수익의 고변동성 전자 자산에 대한 투기일 뿐이라고 단정 짓는다. 당연히 도박성이 높다는 것이다.

SBS 스폐셜 ‘2018 고스트 머니’ 편

이런 홍기훈 교수의 의견은 대형 거래소의 속임수 등의 범법 행위로 증명된 바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대형 거래소는 승인받지 않은 코인을 상장하고 그걸 자신들이 샀다 팔았다 사는 방식으로 가격을 올려간다. 그 상승세에 투자자들이 몰리면 한 번에 팔고 사라지는 '먹튀'를 하고, 그 손실은 고스란히 개미 투자자들 몫이 되고 만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만 활동하고 있는 거래소만 100여개가 넘지만 심사나 허가가 없으며, 규제조건도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서 이른바 '먹튀'는 비일비재하다.

5억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거래소, 이렇게 위험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 수 있다며 투자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실패했던 사업을 만회하기 위해 뛰어든 이성규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동산의 100배, 1000배를 벌 수 있다며 그를 유혹한 건 보물섬 인양 해프닝을 벌여 투자금을 모아 먹튀했던, 신일그룹이 모태가 된 신일골드코인. 얼마 되지 않는 투자금에 대번에 감투까지 씌워준 그룹에 이성규 씨는 헌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떼인 돈을 일부라도 받아내기 위해 사라진 코인업체의 주소를 수소문하여 이리저리 헤매는 중이다.

이성규 씨와 같은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30만 원을 출금하는 데 50억의 수수료를 떼는 비현실적인 조항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덥석 뛰어드는 사람들에게 가상화폐 시장의 ‘봉이 김선달들’은 활개를 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가상화폐 사업에 감투를 쓰고 오프라인에서 투자자를 모으는 데 앞장서는 이성규 씨 등처럼 자신들이 피해자인 줄도 모르는 채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신기술 vs. 사기성 도박

SBS 스폐셜 ‘2018 고스트 머니’ 편

유튜브에서 암호화폐 인플루언서(influencer, 영향력을 주는 개인)로 활약하는 황규호 씨는 현재의 암호화폐 시장을 ‘피바다’라 정의 내린다. 하지만 그는 장기적인 기술의 가능성을 믿는다며 자신의 신념을 접지는 않았다.

신기술에 대한 믿음과, 일확천금의 비현실적 사기성 도박이라는 두 의견이 팽팽한 상황. 1월의 토론에서 유시민 작가에게 완패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았던 정재승 교수는, 지난 12월 29일 중앙일보 칼럼 '4차 산업혁명은 어떻게 오는가'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다시 한번 펼친다.

'내년에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기반한 생활체감형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다. 제도적으로 이를 준비하지 않으면 혁신의 열매를 만끽할 기회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게 된다. 지금처럼 거래소를 겁박만 하지 말고, 블록체인 회사들이 혁신에 도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정재승 교수도 국민들이 큰 피해를 보지 않도록 거래를 투명하게 할 수 있는 관리 제도와 규정 등 대처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즉 비트코인 등 비정상적인 가상화폐 광풍은 제어하되, 블록체인 기술은 암호화폐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 금융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올 중요한 기술이므로 적극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블록체인 선구자 박창기 씨 역시 99년 인터넷 버블이나 2008년 부동산 버블처럼, 2018년의 비트코인 버블은 신기술의 통과의례라는 입장이다. 과도하게 투자되었다가 거품이 꺼지면 그때 비로소 새로운 금융 제도가 만들어질 거라는 낙관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현실은 기술에 대한 긍정적 접근보다는, 일확천금을 노린 맹목적 투자와 그로 인한 피해의 버블이 주목되고 있다. 이에 중앙일보 고성일 기자는 암호화폐로 인한 부작용이 계속 되풀이되는 이유를 '비트코인'처럼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심리에서 찾는다.

그 심리는 어쩌면 한국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심리이기도 하다. 전후 똑같이 못 먹고 못살던 시절, 그중 누군가는 더 열심히 일해서가 아니라 더 좋은 줄을 잡아서, 더 좋은 건수를 잡아서 돈을 벌었다고 여겨지는 사회. 부동산 투기를 통해 일궈진 부의 역사. 투자라고 쓰고 투기라고 읽지만, 기꺼이 그 투기의 기회를 잡지 못한 게 무능이 되어버린 사회. 그 역사를 보고 배운 것이다. 이렇게 살다가는 흙수저를 면치 못할 것 같아서 시작했다는 데이트레이더의 자조적인 한 마디, 과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돈 밝히는 책읽기>와 같은 돈공부, 마음 다스림을 통해 그 광풍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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