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KBS 1TV <미디어포커스> 방송 내용을 반박한 동아일보 14일자 보도에 대해 <미디어포커스> 김경래 기자가 반론 글을 보내와 전재합니다. <미디어스>는 토론과 논쟁의 활성화를 기한다는 차원에서 이 글을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동아일보는 지난 1월 3일 정연주 KBS 사장의 신년사에 대해서 이렇게 비판했다. 제목은 <정권말 버티기?>, 중간 소 제목은 <정사장, 취임-신년사 7번 중 권력 비판 언급 처음>이다.

동아일보 1월 3일 :
정 사장이 2003년 4월 취임한 이래 연임을 포함한 두 차례의 취임사와 다섯 차례의 신년사에서 ‘권력비판’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방송가 및 정치권에서는 정 사장이 언급한 ‘오만한 권력’은 차기 정부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과 함께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동아일보가 문제 삼고 있는 정연주 사장의 신년사 내용을 보자.

정연주 사장 신년사 1월 2일 :
언론기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역사적 사회적 책무가 있습니다. 정치 권력이든 자본 권력이든 언론 권력이든, 혹은 사회적 집단이 집단 이기주의를 위해서 자기의 권력 확대를 꾀하건 우리는 그 어떤 권력에 대해서, 특히 오만한 권력에 대해서 의연하고 당당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가장 언론 기관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무 중 하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언론기관인 KBS 스스로가 겸허해야 합니다. 우리는 낮은 곳에서 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고 가진 것 없는 사람 편에서 오만한 권력, 지배하려는 권력에 대해서 가차 없이 비판해야 합니다.

권력비판은 언론의 기본적인 책무이다. 공영방송의 사장이라는 사람이 정말 권력 비판에 대해서 처음 말한 것일까. 정 사장의 공식 발언 기록을 찾아봤다. 정 사장은 지난 2006년 연임이 됐을 때 취임사를 통해 정치와 자본에 독립해 사회적 비판 기능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연주 사장 취임사 2006년 :
공영방송 KBS는 정치와 자본 뿐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집단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사로서 사회적 비판 기능을 다함으로써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KBS 미디어포커스는 지난 1월 12일 ‘차기 정부의 언론 정책’을 다루면서 KBS에 대한 언론의 기사를 분석했다. 동아일보의 1월 3일자 기사 가운데 ‘정 사장이 취임.신년사에서 처음으로 권력 비판을 언급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이에 대해 1월 14일 반론 형식의 기사를 실었다. 내용을 보자.

동아일보 1월 14일 :
그러나 정 사장이 2003년 4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두 차례의 취임사와 다섯 차례의 신년사에서 권력을 직접 겨냥한 비판을 강조한 것은 처음으로, KBS의 주장은 아전인수 격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말이 달라졌다. 동아일보는 1월 3일 기사에서 ‘권력 비판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가 1월 14일자 기사에서는 ‘권력을 직접 겨냥한 비판을 강조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을 바꿨다. 처음에는 ‘언급’한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가, 처음이 아니라고 하니까 이제는 ‘강조’한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말장난이다.

‘권력 비판’에 인색했다고 동아일보가 주장하는 정연주 사장의 또 다른 발언을 보자.

2007년 창립 기념사 :
"이런 때에 한국의 중심 채널 KBS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자명합니다. 언론의 1차적인 기능인 '진실을 전달하는 것', 그리고 '모든 권력을 감시하고 지켜보는 비판적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2004년 신입 사원 연수 :
"현재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문화 권력 등 기득권을 위한 강자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KBS는 이를 감시 견제함으로써 약자에 대한 구조적 제도적 차별을 철폐해야 하며..."
2004년 창립 기념사 :
"진실의 편에 서서 강자의 원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한편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애햐 합니다."
2004년 기자간담회 :
"KBS는 자유, 평등, 정의, 복지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적 강자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며"
2007년 신년사 :
"모든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독립성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아일보는 그러나 이같은 과거 정 사장의 발언은 ‘교과서 같은 원론’에 그쳤다고 항변한다.

동아일보 1월 14일 :
2006년 취임사에서 “독립된 언론사로서 사회적 비판 기능을 다함으로써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교과서 같은 원론만 말했을 뿐이다.

왜 발언의 앞부분은 빼고 이야기하는가. 2006년 취임사의 정확한 문장을 다시 한 번 보자.

정연주 사장 취임사 2006년 :
공영방송 KBS는 정치와 자본 뿐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집단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사로서 사회적 비판 기능을 다함으로써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그렇다면 이번 신년사는 원론적일까 아닐까. 천천히 읽어보자.

정연주 사장 신년사 1월 2일 :
언론기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역사적 사회적 책무가 있습니다. 정치 권력이든 자본 권력이든 언론 권력이든, 혹은 사회적 집단이 집단 이기주의를 위해서 자기의 권력 확대를 꾀하건 우리는 그 어떤 권력에 대해서, 특히 오만한 권력에 대해서 의연하고 당당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가장 언론 기관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무 중 하나입니다.

▲ 동아일보 1월 14일자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원론적”이고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권력을 직접 겨냥”한 것인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동아일보는 답해야 한다.

정 사장의 이번 신년사가 앞서의 신년사와 다른 것은 “오만한 권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것 뿐이다. 동아일보가 이번 신년사에서 문제 삼고 싶었던 것은 “오만한 권력”이라는 단어가 아닌지, 그리고 그 “오만한 권력”은 이명박 당선자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 당선자를 보호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권력에 대한 감시는 모든 언론의 기본적인 책무이다. 동아일보처럼 ‘왜 이 하필 이 시기에 권력 비판을 운운하는가’라고 묻는 것보다, ‘왜 이 시기에 권력 비판을 이야기하는 것을 문제 삼는가’라고 묻는 것이 이른바 ‘비판 신문’에서 해야 할 일이다.

공영방송 KBS의 정연주 사장을 비판하는 것은 모든 언론의 자유이며 책임이다. 미디어포커스도 정연주 사장을 비판할 수 있고 해야한다. 정 사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대내외의 심각한 문제제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12일 방송에서 미디어포커스는 정 사장에 대한 비판적인 사내의 여론까지 보여줬다.

하지만 부적절한 논리, 특히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판단한 ‘잘못된 팩트’에 기반한 비판도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미디어포커스에서 말한 것은 정권교체와 사장교체를 연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그 같은 논리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해치는 논리라는 것이 미디어포커스의 판단이다. 동아일보의 기사는 정 사장의 말꼬리를 잡고 과거 팩트를 왜곡해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흔들려 하는 것이라고 미디어포커스는 비판했을 뿐이다.

언론사 간의 반론과 재반론, 치열한 논쟁은 환영한다. <미디어포커스>가 편파 방송을 하는지도 신문은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단 조건이 있다. 근거가 합리적이고 상식적이어야 한다.

이번 동아일보의 반론처럼 ‘기사’인지 ‘말장난’인지 분간하기 힘든 반론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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