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민주당이 3당으로 전락하고 초과의석이 과도하게 발생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민주연구원의 연구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를 왜곡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독일식 선거제도 적용하면 의석 대폭 확대되고 민주당은 3당"

26일 민주연구원은 김영재 수석연구위원 명의의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배분방식에 따른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의 시사점 검토> 이슈브리핑을 내놨다. 김 연구위원은 "독일식 선거제도, 즉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전적으로 각 정당의 총 의석 수를 결정하는 방식이 과연 민심 그대로의 선거제도인지에 대해 재검토하고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독일식 선거제도의 문제점인 초과의석의 발생을 최소화하는 대안을 추진하고, 초과의석을 보정하는 균형의석은 국회의석의 과도한 증가 가능성이 있어 도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왼쪽부터 이해찬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연합뉴스)

김영재 연구위원은 의석몫을 권역별로 나눠 총 의석 350석을 기준으로 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적용한 결과를 내놨다. 비례대표 득표수를 분배해 구한 의석과 지역구 당선자 수 중 더 많은 의석을 최소보장의석으로 산정했다.

20대 총선 서울 비례대표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152만2417표, 민주당은 128만881표, 국민의당은 142만4383표, 정의당은 42만292표를 얻었다. 이를 그대로 서울 의석 몫인 67석에 적용하면 새누리당은 22석, 민주당은 18석, 국민의당은 21석, 정의당은 6석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구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이 12석, 민주당이 35석, 국민의당 2석을 얻었고, 정의당은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민주당의 경우 비례대표 의석수보다 지역구 의석이 더 많으므로 35석이 보장의석이 된다. 따라서 서울에서의 최소보장의석은 새누리당 22석, 민주당 35석, 국민의당 21석, 정의당 6석이 된다. 67석이 아니라 84석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전체권역의 최소보장의석은 새누리당 130석, 민주당 129석, 국민의당 103석, 정의당 27석이 된다.

최소보장의석에 득표율에 비례한 균형의석을 더하면 최종의석이 산출된다. 당시 총 비례대표 득표수는 새누리당 796만272표, 민주당 606만9744표, 국민의당 635만5572표, 정의당 171만9891표다. 정당 득표율 보정에 따라 새누리당은 39석, 국민의당 32석, 정의당 9석의 비례의석을 추가로 받게 된다. 민주당은 초과의석이 많아 추가 의석을 얻을 수 없다.

이렇게 최종적으로 산출된 의석은 새누리당 169석, 민주당 129석, 국민의당 135석, 정의당 36석이 된다. 민주당이 국민의당에 6석 뒤져 3당으로 밀려나고, 총 의석은 469석에 달하게 된다는 게 김영재 연구위원의 분석결과다.

"부작용 과장하고 논의 수준 못 따라가"…"의도 의심돼"

그러나 민주연구원의 이슈브리핑이 현재 정치권과 시민사회, 학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논의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미 대안이 마련된 부분에 대해 부작용을 내세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시민사회는 독일식 보정의석을 주장한 바 없다.

▲지난해 2월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법 개혁 공동행동' 회원들이 18세 투표권, 연동형 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먼저 지난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권고한 선거구제는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을 기준으로 권역별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식이다. 초과의석 보정울 두고 구체적 주장을 펼친 바 없다.

시민사회도 민주연구원이 문제로 지적한 초과의석 보정을 주장한 바 없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중앙선관위 안에도 보정 얘기가 없고, 우리도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고 의아해 했다.

하승수 대표는 "지금 국회에 발의된 안 중에서 박주현 의원안을 보면 총의석 고정방식"이라며 "이미 발의된 안 중에 이런 안이 있기 때문에 초과의석에 대한 대안을 더 검토할 이유가 없고, 우려가 된다면 이 방식을 채택하면 된다"고 밝혔다.

박주현 의원이 발의한 안은 의석수를 고정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지역구에서 초과의석이 생긴 정당이 발생하면, 해당 정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나누는 방식이다.

20대 총선을 시뮬레이션의 데이터로 적용한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20대 총선은 국민의당이 창당되면서 '안풍(안철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통상적인 소선거구제로 양당제가 구성되는 선거가 아니라 변수가 많은 선거였단 얘기다. 민주정책연구원은 이를 근거로 자신들이 1당에서 3당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셈이다.

하승수 대표는 "20대 총선은 예외적인 선거였다. 드물게 정당득표와 지역구 선거의 격차가 컸기 때문에 시뮬레이션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며 "시뮬레이션을 하려면 18대나 19대 선거를 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당시 선거 분위기를 감안하면 손해는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당이 입은 것으로 볼 여지도 많다.

하승수 대표는 "(민주연구원 보고서는) 부작용을 과장하고 현재의 논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의도적으로 이런 자료를 뿌린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논의 상황은 관심 없고 보고서만 받아 쓴 언론

대부분의 언론보도는 민주연구원 시뮬레이션 결과를 전하며 민주당이 3당으로 전락한다는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26일자 조선일보는 민주연구원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전하며 "민주당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123석을 얻어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을 제치고 제1당을 차지했는데,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면 결과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26일자 조선일보 보도.

조선일보는 "이는 연동형 비례제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기 때문"이라며 "현재 여야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 중인데 의석 수 증가는 전체의 10% 이내에서 하기로 한 상태"라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독일식 그대로 하는 건 어렵다"는 여당 관계자의 멘트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조선일보의 기사에서 현재 어떠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가 진행됐는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3당과 시민사회가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어떤 방식인지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다른 언론도 마찬가지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아시아경제, 뉴스핌, 뉴스1, KBS, YTN 등 많은 언론이 조선일보와 같이 민주연구원이 낸 자료에만 근거해 기사를 작성했다. 특히 연합뉴스의 경우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어 종합, 종합 2보까지 작성하면서도 현재 거론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