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흐름인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자리 못 잡는다고 핀잔 받고,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줄줄이 하차하거나 폐지되고, 사회 현상에 대한 발언 같은 방송 외적인 부분에서 더욱 주목받은 비운의 남자 김제동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자신의 장점을 선보일 수 있는 적절한 자리였다는 것이죠. 오랜만에 KBS에 출연한 그가 동시대 경쟁 프로그램인 강심장에게 내내 밀리는 침체에 빠진 승승장구의 시청률을 급상승키며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재확인시켜준 것이죠.

그만큼 궁합이 잘 맞는 만남이기도 했습니다. 시청자들의 질문과 지인들의 이야기로 꾸며진 포맷은 물론이고, 김승우를 비롯해 여전히 진행이 미숙한 MC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재 어떤 토크 프로그램보다 출연자의 말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인 승승장구에서 말로 승부하는 것에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김제동이 살아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죠. 초보 진행자들 투성이인 승승장구에서 MC와 게스트의 자리가 바뀐 것처럼 무게의 추가 노련한 초대손님에게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뭐 따지고 보면 그가 이효리나 이수영처럼 자신의 집을 제 집처럼 거리낌 없이 방문하며 사용하는 유명 연예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나, 고현정을 비롯한 다른 연예인들과의 친분 같은, 이번 방송에서 이야기한 것들은 익숙한 것들입니다. 혹은 첫째 매형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토크 콘서트를 통해 이미 공개된 것들도 많았구요. 그가 직접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을 따름이지 인터뷰식의 지면을 통해서도, 혹은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도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되거나 화제가 되었던 것들이죠. 어떻게 보면 김제동의 이번 승승장구 출연은 그가 얼마나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만한 자리가 부족했었는지, 그동안 쌓아 두었던 이야깃거리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였어요.

하지만 듣던 이야기라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김제동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 그 단어들은 생명력을 획득합니다. 활자로 읽는 책의 내용이 맛깔나는 화자가 들려주는 구연동화를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처럼 말이죠.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전체 분위기와 기존 MC들을 줘락펴락 하면서 토크의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자라는 사실을 다시금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그는 자신을 진행자라고 소개했지만, 그보다 김제동을 소개하기에 적합한 말은 역시 말하는 사람, 이야기꾼입니다.

그것은 이번 주 승승장구의 후반부를 책임졌던 게스트, 멋진 배우 성동일의 출연분과 비교해보아도 더더욱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분명 성동일 역시도 출중한 입담과 넉살을 가진 좋은 초대 손님이었고, 주인장 김승우의 형수님인 김남주를 비롯해서 다음 주로 예고된 도망자의 출연진들처럼 그와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의 면면은 훨씬 더 화려했지만 정작 프로그램의 재미는 훨씬 더 떨어졌어요. 물론 그의 출연 자체가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 도망자를 홍보해주기 위한 방편이었기에 그 목적이 너무 뻔하고, 대화의 흐름를 끊어먹는 진행자들의 역량이 도드라지게 다시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말하는 이의 자세, 전체를 주도해나가는 능력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게 드러났거든요.

웃음과 재미를 위해 짐짓 자신을 망가뜨리기도 하고, 혹은 지레 허세를 부리면서도 그것에 취해 말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감각. 필요한 부분에서 적절한 단어와 추임새를 찾아 말하는 능력. 그리고 그러면서도 진행자와 찾아온 손님들의 반응에 맞추어 템포를 조절하는 진행 능력까지. 그가 지난주에 넌지시 농담처럼 흘린 것처럼, 현재 그가 가장 탐을 낼만한 프로그램은, 그리고 제일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은 박명수, 탁재훈 등등의 단체 MC 체제에 새롭게 투입된다는 SBS의 신설 토크쇼가 아닌 바로 승승장구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아직도 강호동의 강심장과의 정면승부를 노리고 있다면, 그리고 정말로 KBS가 김제동의 출연에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승승장구가 잡아야할 최고의 카드는 바로 김제동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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