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전체가 침체의 늪에 빠진 MBC지만 적어도 월화드라마에서는 아직 힘이 빠지지 않았다. 또한 내조의 여왕 신드롬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후속 드라마의 제목을 결정하게 한 파워풀 여배우 김남주 역시도 기대에 조금도 실망시키지 않고 힘찬 출발을 알렸다. 봉준수와 황태희. 이들의 이름이야 뭐가 됐건 성을 합치면 봉황이 된다. 요즘 커플 이름 짓기가 유행인 것에 비하면 작가의 의도적인 작성(作姓)이 분명하다.
나이 서른셋의 노처녀 황태희는 기획실의 팀장으로 회사 내에서 막강한 파워를 과시한다. 일에서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지만 문제는 남자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 그 점 때문에 같은 올드미스 상무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친구의 아들 봉준수가 수습사원으로 기획실에 배치된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엄친아의 의미는 아니지만 봉준수는 적어도 황태희에게는 그야말로 엄친아였다. 곧바로 엄친아 낚기 작전에 돌입한다.
그 찰나에 군대를 마치고 돌아온 회장의 배다른 아들 구용식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구용식은 철저히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봉황부부를 역전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하게 될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세상에 찬성하는 사람이라고는 결혼 당자자들밖에 없는 한편으로는 불행한 봉황부부를 노리는 한상무와 그녀의 새로운 심복이자 자발적 동기를 가진 복수의 무기 백여진을 막아낼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늘 그렇듯이 그 희망을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롭게 하는 일이 있다. 구용식에게 봉준수는 군대 시절 웬수나 다름없는 선임 병장이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를 살펴보면 전작 내조의 여왕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그러나 역할은 다소 바뀌고 관계들 역시도 전투적이고 살벌한 느낌까지 주고 있다. 그래서 흥미롭다. 봉황부부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어떻게 엮이고 부딪혀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흥미진진하다.
그런 김남주의 한 살 연하 남편 정준호는 워낙 전작의 오지호의 이미지가 커서 그런지 좀 더 힘을 뺀 연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정준호하면 코믹물에서 결코 누구에게 밀릴 배우가 아니지만 김남주와 연기 화음을 내기 위해서는 아주 조금만 느린 호흡으로 김남주와 마주하면 좋을 것이다. 김남주는 황태희라는 케릭터를 단 일회 만에 각인시켰는데, 정준호의 봉준수는 아직 명확한 선이 그어지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그 부분은 구용식과의 관계를 통해서 더 명확해지고 색깔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동이가 종영을 맞으면서 MBC는 아마도 큰 불안에 빠졌을 것이다. 요즘 하는 드라마들이 거의 전부 부진한 탓에 믿으면서도 역전의 여왕에 대한 반응이 저조하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김남주는 김남주였다. 이 여자처럼 한국의 여배우들이 나이를 먹어간다면 우리 영상예술의 질은 얼마나 더 풍부하고 재미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게 망가질 수 있는 김남주의 허허실실 연기에 또 다시 빠져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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