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여야가 15일 선거제도 개혁 입법을 내년 1월 중으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논의하기로 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주요 언론이 관련 소식을 앞다퉈 전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필수조건 중 하나인 의원 정수 확대에 특권 폐지 프레임을 펼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의원 정수 확대 전에 특권을 먼저 폐지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특권을 말하기 전에 이 특권이 발생하고 유지되는 이유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17일자 조선일보는 의원정수 확대 문제를 거론했다. 조선일보는 <'의원 특권 폐지' 입법 후 '연동형 의원 증원' 논의해야> 사설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국회의원 수가 늘어난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17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여야는 330석(10%) 이내 확대를 검토한다고 했지만 시뮬레이션에 따라 400석이 넘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며 "현재의 300명 선을 유지하려면 지역구 253석을 대폭 줄여야 하나 그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깝다. 지금 국회는 거의 혐오 대상이 돼 있는데 의원 숫자를 늘리자고 하면 그 뜻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방법이 없지 않다"며 "의원의 특권을 사실상 폐지 수준으로 낮추고 이를 다시 바꿀 수 없도록 법제화하면 국민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스웨덴·덴마크 등 유럽 의회는 의원 두 명당 한 명의 비서가 있다"며 "우리 의원이 이들보다 무슨 일을 더 한다고 혼자서 7~8명에 달하는 보좌진을 부리나. 유럽 의원들은 사무실도 하나를 반으로 나눠 쓰는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우리 국민은 한국 의원들이 왜 유럽 선진국 의원보다 더 많은 세비, 과도한 보좌진, 번쩍이는 고급차, 넓은 사무실을 누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면책특권 남용 방지와 불체포 특권 폐지, 국회의원 소환제 같은 공약은 대부분 공약(空約)으로 끝났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특권부터 전부 폐지한 후 이를 입법화로 못 박은 뒤에 의원 증원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내년도 국회 총 예산이 6300억원"이라며 "이 돈을 대폭 삭감한 뒤에 의원을 늘린다면 국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하지만 개혁적이라는 의원도 특권 폐지 얘기만 나오면 꼬리를 뺀다. 의원 되는 것을 출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그런 자세라면 연동형이든 무엇이든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말 대로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이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조선일보가 지적한 한국 의원들의 특권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는 국회의원 특권으로 세비, 보좌진 수, 사무실 크기, 고급차 등을 문제 삼았다. 권력은 독점하면 커지고, 많은 사람이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원리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언론은 국회의 행태를 지적할 때 늘 유럽 의회의 모습을 비교하곤 한다. 그러나 비교 대상이 되는 유럽의 의회들은 의원 1명 당 국민 수가 한국에 비해 매우 적다. 그만큼 권력을 한국보다 더 나누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한국의 의원 1명당 국민 수는 2016년 20대 총선을 기준으로 17만1487명이다. 반면 OECD 평균은 약 12만 명이다.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의원 수가 적다. 지난 2015년 국회의장 직속 선거제도 국민자문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서 따르면 조선일보가 언급한 스웨덴의 의원 1인당 국민 수는 2만7276명, 덴마크는 3만1238명이다. 한국 국회의원은 스웨덴 의원보다 6.3배, 덴마크보다 5.5배 많은 국민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셈이다. 이러다보니 의원들에게 권력이 몰리게 되고, 스웨덴, 덴마크 의원보다 자연스럽게 많은 특권을 누리게 된다.

OECD국가 중 한국보다 의원 1인당 국민 수가 많은 국가는 미국, 일본, 멕시코가 있다. 그러나 미국은 연방국가로 주의 독립성이 크게 보장돼있어 한국의 정치 환경과 비교하기는 부적절하다. 일본의 경우는 표의 등가성이 크게 떨어지며 의회독재가 이뤄지고 있는 국가로, 한국이 참고할 만한 모델은 아니다.

여기에 소선거구제라는 국회의원 선출 제도의 특성이 더해지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소선거구제는 1등만 국회에 입성하는 승자독식형 선거제도다. 따라서 유권자도 표를 던질 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아니더라도 당선 가능성이 높은 차악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당정치의 특성상 소선거구제 하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는 결국 여당과 제1야당 후보일 수밖에 없다. 결국 신생정당이나 규모가 작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가 되고, 살아남더라도 의회의 의사결정에 제대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정당으로 전락하게 돼 다양한 목소리가 사장되고 만다.

거대양당의 공천을 받는 것이 곧 당선이 되며, 이 과정에서 정당 내 권력자에 의한 공천, 더 나아가 패거리 정치, 지역주의 등이 만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리고 이는 문제점들이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감안해 보면, 의원정수 확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의 정치개혁 과제는 한국 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해답이 될 수 있다.

특권 폐지가 먼저라는 조선일보의 주장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국민 여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적어도 조선일보가 1등 신문이라면 국회 혐오, 정치 불신이 왜 나왔는지,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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