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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고비 넘긴 선거제도 개혁자유한국당 내 혼란과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여론 변화 등 변수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8.12.17 08:48

뭐가 됐든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여야 5당이 합의를 이룬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까지 거대양당이 서로 공을 넘기며 이런 저런 얘기를 흘리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조건이 됐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15일 합의는 두 가지 요인이 만들어 낸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첫째는 일종의 구조적 문제이다.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의 대표들이 단식을 하고 있는 상황에선 의사일정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든 단식을 풀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하는 게 필요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을 필두로 청와대 주요 관계자들이 농성장에 나타난 것은 정부 여당의 이런 절실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원내교섭단체 3당은 공공부문 채용비리 의혹 관련 국정조사계획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법안, 사립유치원 관련 개혁 법안,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과 인준안 표결 처리 등 1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할 주요 안건의 선정에 합의했다.

둘째는 말하자면 캐릭터의 문제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희상 국회의장이 막후 채널을 가동해 합의를 추동했다는 게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희상 국회의장과 14일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중앙선관위 안을 기본으로 해서 여야가 합의하면 지지하겠다”는 메시지를 영상 녹화하도록 한 걸로 알려졌다. 단식농성 중인 손학규 이정미 대표에게 일종의 정치적 보증을 해준 셈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거부감을 나타냈던 나경원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의 태도도 상황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예를 들면 지난 12일 TBS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정두언 전 의원은 나경원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관련 부정적 발언을 내놓은 것에 대해 “그러면 다 뒤집어 쓰는 것”이라면서 “서로 민주당하고 떠넘기기 할 판인데 뒤집어 쓰는 얘기를 벌써 해버렸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다른 당들과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공통분모를 확보하고 자유한국당을 “개혁을 거부하는 세력”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프레임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5일 합의 이후 자유한국당의 혼란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앞서의 프레임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이미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기 때문에 ‘개헌 논의’라는 명분을 덧붙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합의 이후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자신들이 원론적으로 찬성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의 해명을 연이어 내놓았다. 실제 합의문의 내용을 보면 도농복합선거구제 등 자유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반대하며 주장해왔던 안이 논의 대상에서 사라진 건 아니라는 해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5일 오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 개혁'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농성 중인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대표들을 방문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자유한국당의 상황을 보면 앞으로 선거제도 개혁에 이르는 길에 놓인 장애물이 어느 대목에서 나타날 것인지를 예상할 수 있다. 사실 자유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충실히 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인적쇄신’이니 하는 일 때문에 당내가 어지러운 걸 봐도 그렇다.

자유한국당은 15일 현역 의원 21명의 당협위원장 자격을 박탈하거나 향후 공모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인적 쇄신’의 명단은 친박 12명, 비박 9명으로 이뤄져있고 이 중에는 김무성 의원처럼 계파 핵심으로 볼 수 있는 인사들도 포함돼있다. 친박계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 명단을 수용할 수 없다고 하고 홍문종 의원은 그동안 접어두었던 ‘친박신당론’을 또다시 꺼내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당협위원장 자격 박탈 및 공모 배제라는 조치가 계파 항쟁의 불을 다시 당길 정도로 각 개인에게 치명적 타격인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명단에 포함된 상당수가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거나, 여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등의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대위나 조강특위가 인적쇄신의 기준 중 하나로 내세웠던 ‘영남 다선’이란 조건을 놓고 보면 이번에 발표된 명단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당협위원장 자격 박탈이나 공모 배제가 공천이나 경선 과정에서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치명적’이라고 까지 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현역 의원들이 이런 저런 반발을 하고 있는 것은 어쨌든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공천이 좌우되는 상황에서 조그마한 흠이라도 잡히고 싶지 않다는 생존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당협위원장직 정도만 갖고도 이런 식인데 총선에서 지역구 상황에 따라 국회의원들 각각의 유불리를 가를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을 논하자고 하면 과연 당적 차원에서 합의가 될지 의문이다. 거기다가 바른미래당 내의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복당 문제까지 더하면 당내의 논의는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정치적 사정으로부터 더불어민주당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간 여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해왔으므로 대통령까지 지지 의사를 확고히 하는 상태에서 발을 빼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개혁의제를 총론적으로 정리하고 그 안에 선거제도 개혁이 포함된다는 걸 분명히 한 상태에서 드라이브를 걸어 국민의 지지 획득을 모색할 때다.

선거제도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로 누구나 지적하는 것은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다. 만일 더불어민주당이 실제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갖고 있다면 의원 정수 확대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더 강하게 호소해야 한다.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거부감은 정치 불신 때문이다. 따라서 개혁 의제를 전면에 내세워 이를 돌파하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국회가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개혁 법안들을 처리하고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증명하면 여론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를 통해서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야당들과 ‘개혁블록’을 형성하고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으면 당장은 어렵더라도 선거제도 개혁은 결국 이루어 질 것이다. 여당이 그 정도의 절실함을 보여주느냐의 문제가 남았다는 얘기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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