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여야 5당이 선거제도 개혁 입법을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여야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해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회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정확히 못 박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 논의 추이를 지켜보며 강도 높은 정치개혁 논의를 촉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다.

▲왼쪽부터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연합뉴스)

국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물꼬 텄지만

지난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한 6개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검토하고,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처리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문제는 정치권의 오래된 의제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1등이 모든 권력을 독식하는 전형적인 승자독식형 선거제도다. 특히 1등 후보에게 투표한 표를 제외한 나머지 표가 사표가 되면서 대의민주주의에서 비례성과 대표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선거는 현행과 같이 치르되,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의석을 배분해 사표를 없애는 방식으로 비례성과 대표성을 보장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 내부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의회의 정당성을 높이는 정치개혁 방향을 주장해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는 지난 19대 국회에서 논의된 20대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본격적인 의제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역구, 비례대표 비율을 2대1로 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권고안을 내놨고,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었다.

21대 총선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을 약 4개월 앞둔 상황에서 논의를 진행 중인 국회 정개특위에서도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진행됐다. 이번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논의는 표류할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거대양당이었다.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입장을 선회하고 자유한국당이 명확한 당론을 정하지 않고 반대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단식투쟁을 벌이고,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시민사회와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선전에 나서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야3당의 압박에 결국 여야 5당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합의안을 내놨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물꼬가 트인 셈이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대표 및 당직자들이 15일 오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단식농성 해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불확실성 여전해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합의문을 자세히 뜯어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국회가 완전히 합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첫 번째 합의 사항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를 뜯어보면, 큰 틀의 방향성이 설정된 것은 맞지만 명확히 못을 박은 것은 아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촉구에 고삐를 더 당겨야 하는 이유다.

두 번째 합의 사항은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다. 국회가 여전히 의원정수 확대에 대해서는 망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괄호 안에 '10% 이내 확대 여부'는 당초 '10% 이내 확대'였으나, 문구 협상 과정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여부'를 넣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는 후문이다. 한국당이 여전히 의원 정수 확대에 부정적인 여론을 이용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좌초시킬 수 있는 단초를 남긴 셈이다.

사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서는 의원정수 확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시행하려면 지역구-비례대표 비율이 2대1은 돼야 한다는 게 학계와 정치권의 중론이다.

물론 선관위 안처럼 지역구를 200석으로 줄이는 방안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국회의원 지역구를 줄이는 것은 반발이 클 공산이 크다. 또한 OECD 가입국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국회의원 1인당 국민수가 지나치게 많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의원정수 확대가 불가피 하다는 게 학계와 정치권, 시민사회의 인식이다.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여의도 불꽃집회’가 열렸다. (사진=오마이뉴스)

합의사항 6번에 등장한 권력구조개편 개헌 논의도 논란의 불씨다.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원포인트 개헌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론적으로 봤을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민의가 의회에 제대로 반영되면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권력구조 개편은 명분이 있다. 실제로 유럽 선진국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의원내각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함께 시행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만에 하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지 않고 선거제도 개혁 입법이 마무리 될 경우 이 합의사항은 독이 될 수 있다. 한국당이 합의를 빌미로 권력구조개편 논의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소선거구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가 도입될 경우 민의의 심각한 왜곡으로 의회독재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소선거구제에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10월 22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총선에서 일본 여당인 자민당은 33.28% 득표에 그쳤고, 연립파트너인 공명단이 얻은 득표율 12.51%를 합쳐도 45.29%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민당, 공명당이 얻은 의석은 67.31%에 달한다. 절반도 안 되는 득표로 2/3 이상 의석을 차지했고, 아베 총리는 3연임 장기집권에 성공했다.

결국 이 같은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좀 더 확실한 정치개혁 논의가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많이 담겨있는 합의문"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석수 확대 검토, 정개특위 연장 등이 합의된 것은 나름의 진전이다. 꺼져가는 불씨를 살렸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 대표는 "할 일이 많아졌다"며 "1월까지 꼭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져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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