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변경邊境. 강원도는 휴전선으로 찢겨 북한과 총부리를 맞댄 접경지대다. 그 안에 평강, 김화 그리고 철원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는 한국전쟁 격전지다. 철의 삼각지대라고도 부른다. 철원과 화천 경계에 선 대성산. 그 중턱에서 20세기 끝자락 26개월을 사병으로 살았다. 몹시 춥고 고됐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휴가를 손꼽아 기다리는 나날이었다. 운동이나 예능에 재주가 없기에 포상휴가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내 몫은 정기휴가 뿐이었다. 1999년 유월 초, 할머니 칠순 잔치에 맞춰 열흘짜리 상병 휴가를 받았다. 서울 부모님 곁에 여장을 풀었다. 기쁨에 벅찼다. 하지만 곧 긴급뉴스가 떴다. 연평도 해상에서 해군과 북한 경비정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젠장. 하필이면 간만에 나온 휴가 때 이게 뭔 일이데... 휴가증 날아갔구만...’ 중대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합니까?” 중대장은 나에게 당장 돌아올 필요는 없고 일단 기다려 보라 했다. 할머니 고희연古稀宴에 모인 친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황해 북방한계선에서 전해지는 속보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나는 인생 꼬이는 소리 들린다며 투덜대면서도 마음 한편 전상자가 많지 않기를 기도했다. 난리가 났어도 휴가는 휴가라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났고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놀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날을 맞았다.

남북 군사당국이 '9·19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차원에서 시범 철수한 비무장지대 내 GP(감시초소)에 대해 12일 오후 상호검증에 나선 가운데 강원도 철원 중부전선에서 우리측 대표 육군 대령 윤명식과 북측 안내 책임자 육군 상좌 리종수가 악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화천 버스터미널에 내려 부대에 전화 했다. 하태걸 병장이 받는다. 곧 들어간다고 보고했다. 하 병장은 오는 길에 연예인 사진이 들어간 엽서를 사오란다. 핑클이었는지 S.E.S.인지는 모르겠다. 같이 휴가 복귀하는 이들 손에는 최신유행가 테이프와 남성 교양잡지 맥심(MAXIM)이 들려있었다.
민간인 출입 통제선을 지나 대성산에 가까워지자 중무장한 병력을 채운 트럭이 여기저기 지나다녔다. 내무반 문을 여니 다들 시커먼 위장크림을 바른 얼굴에 총을 들고 전투화를 신은 채 침상 끝에 줄 맞춰 앉아있다. 등 뒤로 이미 싸둔 군장이 보였다. 금세라도 출동할 태세다. TV를 켰다. 인기가요 프로그램이다. 좀 전의 긴장감은 어디 갔는지 흩어지고, 대신 수십 개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장난기 많은 선임병 하나는 걸그룹 치마 밑을 보겠다며, 안 될 줄 알면서도 화면에 얼굴을 들이민다.
하사 J가 내무실에 들어왔다. 전쟁나면 말년 병장들은 하사로 바로 진급하는 동시에 자동 복무연장이라고 놀려댔다. 몇몇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몇몇은 조심스럽게 킥킥거렸다. 덧붙여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의 어처구니없던 일화를 믿거나 말거나 떠벌렸다. 헬기에서 줄 타고 내려오다가 순직했다고 알려진 분이, 실은 밥을 싣고 목적지로 가던 중 길 잃고 두리번거리다가 북한군을 만나 돌아가셨고, 매복하던 아군끼리 서로에게 총질하고, 수색병들은 행여나 공비가 자기 앞에 나타날까봐 입으로 휙휙 큰 소리를 냈다 한다. 압권은 그 험악한 와중에 싸리비를 만든다며 비무장으로 낫 들고 싸리나무 가지 베다가 총 든 인민군과 마주친 이야기였다. 모두 배를 잡고 한바탕 웃었다.
군사적 위기가 잦아들자 정훈(정치훈련)교육이 더욱 강화됐다. 정훈장교는 주적이 북괴라고 열변을 토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불편한 장군들의 심기가 느껴졌다. 고위 장교들은 이전과 영 다른 대북정책에 동요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병사들 다수는 그저 ‘국방부 시계야 어서 돌아라.’ 속으로 외치며 끄덕끄덕 졸았다. 이태하고 반년 근무하면 제대하는 소대장들의 태도도 심드렁했다. 장병들은 대개 여자 아이돌에 반색하고, 엄마가 보고 싶고. 애인을 안고 싶고, 놀기 좋아하고, 집에 갈 날만 세는 이십대 초중반 철없는 젊은이들일 뿐이다. 적이 누군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왜 그들이 만난 적도 없는 북녘 땅 또래들에게 적개심을 가져야 하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 보다는 오히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산업을 일으켰으며 1960년 4·19학생혁명, 1980년 5·18 광주 민주화투쟁, 1987년 유월항쟁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일궈온 자랑스러운 역사에 자긍심을 가지고 조국을 지켜내자는 교육이었어야지 않을까?
누군가는 불안하다고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불안한가?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으로 군인들의 대적관이 흔들린다고 주장했다. 어떤 이들은 친북좌파 세력의 흥기로 국가정체성이 흔들린다고도 했다. 그러나 진정 흔들리는 건 불안 해 하는 그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익숙한 냉전체제가 흐려지고 맞이하는 낯선 현실이 불안한 게 아니었을까? 평생을 머리에 이고 온 냉전의식이 사회에서 용도폐기 되는 과정에 엄습하는 존재 상실의 불안 아닌가?
20년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 남북관계에 봄이 오나 싶더니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긴 겨울을 보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러 다시 훈풍이 불어온다. 그런데 죽지 않고 또 찾아온 각설이처럼, 옛적 타령 그대로 흥얼거리며 따라 붙은 자들이 있다. 봄바람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를 닮았다. 그들은 불안하다고 한다. 친북좌파 때문에 나라가 흔들린다고, 주적이 없어 군대가 흔들린다고. 그러나 한반도 평화야 말로 번영의 주춧돌 아닌가? 촛불 혁명을 온몸으로 경험하며 시민의식을 다져온 청년들이 몸담은 군이야 말로 강한 군대 아닌가?
묻고 싶다. 흔들리는 건 대한민국과 국군이 아닌 불안해하는 당신들의 마음이 아닌지.
바람에 움직이는 깃발을 보고 스님 둘이 다툰다.
한 분은 바람이 분다하고 다른 분은 깃발이 나부낀다고 주장한다.
곁을 지나던 육조혜능六祖慧能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나부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대들의 마음이 흔들릴 뿐이다.” - 육조단경六祖壇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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