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이 어떤 이유인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작가가 교체되었다. 흔히 있는 일도 아니고 사실 있어서도 안 될 상황이지만 한번 고삐를 끊고 질주하는 대물의 인기를 붙잡지는 못할 것 같다. 그렇지만 작가가 바뀐 5회부터는 4회까지의 느낌이 미세하게 다름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작가가 달라진 결과일 수도 있고, 본래 작가를 교체한 작품의 방향에 따른 변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변화로 인해 대물이 4회까지 보여주고 또 기대하게 했던 현실 정치 세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그것을 통한 카타르시스는 분명 축소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와 함께 고현정이 가졌던 무게의 일부를 권상우에게 넘겨주고 있음도 감지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이 드라마가 권력을 미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지켜볼 이유를 주고 있다.

그런 작가의 전격 교체 때문인지 애초의 기획의 산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물에는 아주 놀라운, 마치 SF영화 같은 내용이 버젓이 그러나 세상의 이목을 아직은 크게 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여성 대통령의 존재이다. 이는 얼마 전 영화에서도 다룬 바 있었지만 대물의 서혜림은 고두심보다 훨씬 젊고 동기부터 다른 설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다 할 수 있다.

호주제 폐지 등에 몇 년씩 홍역을 겪는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여성 대통령은 곧 나올 것만 같으면서도 절대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게 하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가로막혀 있다. 과연 여자 대통령이 국정을 잘 이끌 것이냐는 질문이 아마도 가장 많고 근본적인 문제인 것처럼 대두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거나 죽음을 맞은 불행한 헌정사를 숨길 수 없는 대한민국의 남자 대통령보다야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서혜림이 대통령이 된 결과만 알고 있을 뿐 보궐선거를 통해서 1년짜리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어떤 과정을 통해서 국가 원수의 자리까지 급행열차를 타게 되는지는 드라마를 더 지켜봐야 알 것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굳이 그 과정의 리얼리티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검사 하도야와 국회의원 강태산의 존재 자체가 충분히 현실이 아닌 드라마라는 허구임을 대단히 힘주어 강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SF영화의 내용이 단지 공상의 소산이 아닌 미래 예언적인 결과들을 가져온 것을 보면 대물이 갖는 판타지는 현실 정치에 대한 푸른 꿈을 갖게도 한다.

그래서 대물은 정치 드라마보다는 판타지 혹은 SF 드라마에 더 가깝다. 즉 풍자보다는 공상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여자 대통령 고현정을 두고 박근혜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연상일 수도 있어 이 드라마의 저의에 대한 오해의 시선이 없지 않지만 딱히 그렇게 보고 싶지는 않다. 이 드라마 인물들을 현실 속 실제 인물과 비교하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작가 교체가 그런 드라마와 현실의 접점을 흐리게 할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진 듯싶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가 꼴통검사 하도야가 집권당 대표 조배호를 상대해서 일지매같은 활약이라도 할 것 같았던 분위기와는 달리 인적사항을 갖고 상대를 약 올리는 것만 하고 마는 것이 그런 변화의 일단이 아닐까 싶다. 정치 실력자를 옭아맬 각오였다면 김태봉의 진술에 따른 진짜 은밀한 내사를 진행했을 것이나 현실은 날뛰는 하룻강아지 같은 객기만 보여주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대물이 정치에 대해 극도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젊은 시청자와 여성들에게 정치에 대해서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갖게 하고 있어 그만한 선행도 없을 것이다. 대쪽 같은 서혜림과 말이 꼴통이지 타협을 모르는 풋내기 검사 하도야 그리고 세련된 정치를 꿈꾸는 강태산의 존재가 워낙 현실감이 없어서 이 드라마가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더 크게 할 우려도 없지는 않지만 실망하게 되더라도 관심을 우선 갖게 된다는 것만도 큰일이다.

그래도 서혜림이 대통령이 된다는 설정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가슴 설레게 한다. 공무원 청렴도에서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 훨씬 높다는 보고를 본 기억이 있다. 최고 권력이란 것이 일반 공무원의 청렴도와 비교할 수 없는 특수한 것이기는 해도 여자가 한다면 분명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의 왕이나 현대의 대통령이나 혼자서 국정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국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나왔듯이 한국의 정치변화를 상징하는 여자 대통령을 상상하는 일은 분명 유쾌하고도 짜릿한 공상이다. 그래서 대물은 정치 풍자가 아닌 정치 공상 드라마라고 명명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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