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을 3개월 앞두고 국내에서 가진 마지막 평가전에서 우승 해법을 찾겠다고 했지만 많은 과제만 남긴 경기가 됐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12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며 아시안컵 전 국내 A매치 평가전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경기는 비겼지만 내용 면에서는 많은 보완점을 발견한 경기였습니다. 후반에 다소 나은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한국은 세밀한 패스플레이와 유기적인 조직플레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며 전체적으로 답답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무엇보다 '에이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무릎 통증으로 결장하면서 구심점 역할을 해줄 선수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보니 상대의 압박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역습 상황에서는 다소 우왕좌왕 하면서 몇 차례 위기를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이전 경기와 다르게 최정예 멤버로 안정형 경기를 추구하려 했던 만큼 이번 경기에서 드러난 약점은 그냥 넘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일전을 비롯해 조광래호가 치른 3경기를 통해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부임 후 치른 3경기에서 같은 전술을 사용한 것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큰 틀에서는 스리백, 원톱을 유지하면서도 중원에서의 다양한 전략을 통해 보다 아기자기한 패스와 공격을 지향하는 플레이를 추구하려 했습니다. 그 때문에 '포어 리베로', '미들라이커' 같은 변화무쌍한 변칙 전략들이 잇달아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추구하는 변화에 오히려 선수들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분위기를 보였습니다. 워낙 다양한 전략을 짧은 기간에 훈련하고 실전에 사용하려다 보니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경기에 나서는 선수가 많았습니다. 감독이 지시하는 것만 따라가려다 보니 오히려 창의적인 플레이가 살아나지 않고 원했던 플레이마저 나오지 않은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첫 경기였던 나이지리아전에서 인상적이었던 짧고 원활한 패스플레이가 이란, 일본전에서 살아나지 못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변화와 실험을 시도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아시안컵이라는 큰 대회가 얼마 안 남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어느 정도 선수들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전술을 정착시켜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적절한 실험과 함께 우승을 위한 확실한 전략으로 아시안컵을 대비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력을 강화하라

일본은 공격의 핵인 혼다 케이스케(CSKA 모스크바)를 중심 축으로 전방으로 정확하고 날카로운 패스플레이를 선보이며 한국 문전을 위협했습니다. 또 수비에서도 탄탄한 조직력을 앞세워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며 한국 공격진을 전반 내내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부임한 뒤 빠르게 안정된 조직력을 정착시키면서 얻은 결과였습니다.

반면 한국은 윤빛가람(경남 FC), 신형민(포항 스틸러스)으로 구성된 중앙 미드필더들이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았고, 포어 리베로를 맡은 조용형(알 라이안)이 애매한 위치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며 어려운 경기를 펼쳤습니다. 이는 이란전에서도 드러났던 문제였는데 허리 역할을 하는 선수들 간의 호흡이 잘 맞지 않으면서 짧은 패스보다 소위 '롱볼'을 구사하는 장면이 많아졌고, 결국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탄탄한 조직력은 어떤 상대를 만나도 자신 있는 경기를 펼칠 수 있는 비결이나 다름없습니다. 빠른 역습이나 반대로 상대의 역습을 맞이했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할 만한 조직력 향상이 절실합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앞서 언급했던 전술 이해와도 연관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체 자원-플랜B 확보하라

이번 한일전에 나섰다면 박지성은 핵심 멤버로서 본래 포지션인 측면이 아닌 중앙 미드필더로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기 하루 전날 오른쪽 무릎 통증이 발생하면서 결국 결장했고, 이 때문에 그동안 실험을 위해 준비했던 것들을 모두 버리게 됐습니다. 하루 전에야 새롭게 짜낸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고, 오히려 경기 내내 답답한 흐름만 보였습니다.

단기전인 아시안컵에서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 또는 경고 누적 결장 등으로 인한 돌발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박지성이 아시안컵 때 정상 컨디션을 찾는다 해도 언제 또 재발할지는 모를 일입니다. 이는 다른 주축 선수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이 때문에 박지성이든 다른 주축 선수들이든 이를 대체할 만한 확실한 자원을 키우거나 플랜B 같은 새로운 전략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상황이 생겨도 흔들리지 않는 전략 구상이 필요합니다.

공격수의 화끈한 골 결정력 필요하다

조광래호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공격수 부재는 한일전에서도 말끔하게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조광래 감독은 박주영, 유병수를 비롯해 김신욱(울산 현대), 이승렬(FC 서울), 최성국(광주 상무) 등을 발탁시켰지만 최성국은 측면 공격수로만 활용하고 김신욱, 이승렬에게는 실전 경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필승 카드로 아직까지는 미덥지 않게 생각했다는 걸 의미하는 부분입니다. 타이틀이 걸린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공격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우승은 어렵습니다. 박주영을 비롯한 다른 공격수들의 분발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트 피스 강국 면모를 보여라

프리킥, 코너킥 같은 세트 피스는 한국 축구의 가장 강력한 공격 루트이자 경기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또 다른 루트로 각광 받았습니다. 하지만 조광래호 출범 이후 세트 피스 득점은 실종됐습니다. 한일전에서도 한국은 4개의 코너킥, 19개의 직간접 프리킥을 얻었지만 골은 물론 결정적인 장면도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후반 10분, 기성용의 코너킥 후 문전 혼전 상황에서 박주영이 날카로운 헤딩슛을 한 것이 전부일 정도였습니다. 전체적으로 키커들의 킥과 세트 피스에 이은 공격 정확도가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세트 피스는 토너먼트전에서 열세에 몰리거나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긴장감 있는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서 그야말로 한 방으로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꼽힙니다. 그런 세트 피스를 한국은 남아공월드컵 본선을 통해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세트 피스 상황 득점에서 1위를 기록하며 '세트 피스 강국'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보고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 우승에 필요한 한국 축구만의 무기로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성용 뿐 아니라 킥 능력이 좋은 다양한 선수들을 실험해보고, 약속된 플레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특화되고 반복된 훈련을 펼칠 필요도 있습니다.

아시안컵 실전 준비 반드시 하라

일단 이번 한일전을 끝으로 한국은 공식적으로 모든 A매치 평가전을 마쳤습니다. 더 이상 FIFA(국제축구연맹)가 지정한 A매치데이가 없는 만큼 2달 정도는 A매치를 갖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아시안컵을 앞두고 여전히 전력이 완전히 갖춰지지도 않고, 선수들 간의 호흡도 여전히 안 맞는 가운데서 곧바로 본선에 뛰어든다면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아시안컵을 앞두고 공식적으로 선수를 소집할 수 있는 12월 24일 이후 대회 전까지 2주 동안 선수들 간 손발을 실제로 맞출 수 있는 실전 준비, 즉 평가전을 2차례 정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다행히 축구협회 차원에서 대회가 열리는 카타르 또는 인근 국가인 아랍에미리트로 건너가 현지 적응 훈련 및 실전 평가전을 갖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보다 체계적인 준비와 치밀한 계획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조광래호지만 2002년 히딩크호처럼 또다시 기적을 연출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새로운 선수와 기존 선수의 적절한 조화와 차원 다른 축구를 구사해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하는 조광래호가 산적한 과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면서 숙원과 같은 우승 꿈을 이뤄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