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미투 운동과 내부 고발을 억제하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내부 고발과 미투 운동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면서 “(피해자가) 진실을 말하는 것을 스스로 억제한다는 점에서 큰 해악”이라고 밝혔다.

실제 한국에서는 허위가 아닌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죄의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형법 제307조는 명예훼손을 “공연히 사실이나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선 재판부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표현”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문제는 올해 미투운동 당시 크게 불거졌다. 미투 운동의 피해자가 SNS나 인터넷상에 가해자 신상과 피해 사실을 털어놨을 때, 가해자가 사이버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한다면 피해자가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악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 (사진=미디어스)

손지원 변호사는 11일 열린 ‘사이버 명예훼손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형벌조항의 존재 자체로 (미투운동·내부 문제의 피해자들은) 역고소에 대한 위험이 있고 손해배상에 대한 고통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미투 운동에서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사례를 보면) 게시글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피해자의 몫”이라면서 “미투운동의 가해자나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은 소송을 초기에 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실제 언론인의 30%는 명예훼손에 대한 소송 경험이 있고, 취재 활동이 위축되기도 한다”면서 “문제가 있는 병원 등을 고발할 때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위험 때문에) 익명으로 보도하는 것이 원칙이 됐다”고 지적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국민은 문제가 있는 병원의 실명을 몰라 공포에 떤다”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독일·일본의 경우 사실적시 명예훼손 대신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독일 헌법에 따르면 타인을 비하하는 주장이 사실이 아닐 때만 처벌을 내릴 수 있다. 일본의 명예훼손죄는 공공연하게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처벌을 내리지만, “(명예훼손의) 목적이 공공을 도모하는 것이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사실의 여부를 판단하여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이 있다. 미국의 경우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관한 규정이 없고, 명예훼손이 형사 문제로 불거진 경우가 거의 없다.

김지훈 한국법제연구원 실장은 “인터넷에 사이버 명예훼손을 검색하면 관련 광고 링크가 많이 있다”면서 “전 국민이 사이버 명예훼손의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직면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훈 실장은 “기본적으로 명예훼손 문제에 있어 국가가 개입해 형법적인 것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냐”고 밝혔다. 정경오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형법 적용은)분류가 잘못된 것”이라면서 “사실대로 말한다고 처벌하는 것은 법 감정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희영 법무부 형사법제과 검사(좌)와 권헌영 고려대 교수(우) (사진=미디어스)

권헌영 고려대 교수는 “미투 운동에서 벌어진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예로 든다면 ‘진실된 사실로 인해 피해 사실을 호소할 경우 정당한 행위로 인정한다’ 같은 조건을 만들어 특별법 등에 적용시킬 수 있다”고 제안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폐지하는 대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희영 법무부 형사법제과 검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부작용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면서 “(검찰은) 넓게 판단하고 있고, 대검찰청은 미투 고발자에 대해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을 하지 않도록 하라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고 밝혔다. 신희영 검사는 “종교인 성추행 폭로, 정윤회 국정개입을 보도한 기자들에 대해서도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다만 신희영 검사는 “일반인이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희영 검사는 “현재 한국은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다”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 법률이 폐지된다면 일반인 피해자를 보호할 여지가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사이버 명예훼손 제도 개선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이번 ‘사이버 명예훼손 제도 개선 토론회’는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방송통신위원회·한국법제연구원·한국형사정책연구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발표는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실장·황창근 홍익대학교 교수가 밭았다. 토론자로는 김기중 법무법인 동서양재 변호사·손지원 오픈넷 변호사·신희영 법무부 검사·정경오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김지훈 한국법제연구원 실장·권헌영 고려대학교 교수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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