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있었던 한일 축구 평가전 이후 우리 축구대표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 가운데서 큰 이슈로 떠오른 것은 바로 '포스트 박지성'이었습니다. '캡틴' 박지성(맨유)이 오른쪽 무릎 통증으로 선수 보호 차원에서 이번 한일전에 빠지자 조광래 대표팀 감독의 구상이 흐트러졌고, 결국 원하는 경기를 펼치지 못하면서 비판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에 상당수 언론들은 박지성에만 의존하는 대표팀 운영에 대해 거센 비판을 하면서 이제부터라도 '포스트 박지성'을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축구팬들 역시 '포스트 박지성 키우기'에 지금부터라도 열을 올려야 한다면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 한ㆍ일 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 부상으로 벤치에 앉아 있는 박지성 ⓒ연합뉴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는 유럽 무대를 밟아보고, 큰 경기 경험이 많으면서 다양한 전술 소화 능력을 갖고 있는 박지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박지성이 곧 한국 축구라는 등식까지 성립될 만큼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컵 같은 각종 대회에 박지성을 차출하는 일이 계속 나타났습니다.(그러나 2007 아시안컵, 2004, 2008 올림픽 본선에는 부상, 팀 사정 등으로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박지성의 나이도 젊고, 충분히 능력도 있는 만큼 그를 차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강했고, 클럽보다 국가대표 축구에 대한 중요도가 강한 한국 입장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승리 보증 수표'로 박지성을 연달아 차출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늘어나면서 박지성을 지나치게 혹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인식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어느 정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서서히 나타났습니다. 박지성에 대한 신뢰는 곧 의존으로 변질됐고, 이는 오히려 한국 축구 대표팀의 질적인 발전에 영향을 주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월드컵 본선에서 박지성의 몸에 무리가 가서 뛰지 못하는 아픔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몇 차례 중요한 평가전에서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일이 제법 있어 왔습니다. 물론 이 때마다 박지성 없는 경기를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대표팀 내부적으로 다양한 논의들을 거쳐 왔고, 그것을 실전에서 실행해 몇 차례 성과를 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독들이 대부분 '박지성은 꼭 있어야 할 자원'이라 생각하면서 박지성 없는 경기를 펼칠 때는 다소 애매한 전략으로 경기를 치르기도 했고, 이때마다 한국 축구는 졸전을 거듭하거나 의외의 패배를 당해 망신을 당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다양한 실험을 거듭해도 결국 주전으로 박지성을 쓰려 하는 감독들의 자세는 박지성급으로 클 수 있는 선수들이 더 나타나지 않는 계기도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포스트 박지성 문제'는 감독들의 팀 운영 문제로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포스트 박지성 문제'를 보면 마치 예전에 황선홍, 홍명보가 은퇴했을 당시가 떠오릅니다. 한국 축구에서 10년 넘게 활약하며 엄청난 족적을 남긴 황선홍, 홍명보를 대체할 만한 선수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있었습니다만 아직까지도 이를 뛰어넘을 만한 선수를 찾지 못한 것은 이번 '포스트 박지성' 문제도 쉽게 넘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특히 홍명보 이후 대형수비수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한국 축구의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시간을 갖고 해결할 일이 아닌가 했지만 10년 가까이 황선홍, 홍명보를 이을 마땅한 선수를 찾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 축구의 '원맨팀' 운영이 뭔가 잘 못 돼도 한참 잘 못 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합니다. 한 언론에서는 '지단 없는 프랑스'를 거론하며 지네딘 지단이 은퇴한 후 후유증이 심각한 프랑스를 따르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기도 했는데 어쨌든 이 포스트 박지성이 한국 축구에 상당히 심각한 문제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매 경기마다 일희일비하는 우리 축구 문화와도 문제를 연결해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경기마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기량이 출중한 최정예 선수들을 무조건 불러야 한다는 인식이 고착화되는 계기로 이어졌고, 이 때문에 몇몇 주요 선수들이 혹사당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했습니다. 선수 스스로 몸 관리를 철저히 하는 만큼 그것이 지금껏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부상을 당할 때마다 이에 대한 후유증이 상당하게 나타나면서 예기치 않은 졸전이 이어지고, 팀 전력이 들쭉날쭉하게 이어진 것은 큰 문제로 지적돼 왔습니다.

어찌 됐든 그 시기가 조금 늦어지기는 했어도 이 문제를 통해 선수 관리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만들어졌고, 이에 대한 감독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게 됐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울러 '포스트 박지성'을 할 만한 가능성 있는 자원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도 조금은 희망적인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당장의 성적, 결과 때문에 박지성을 주요 자원으로 여전히 고집하려 하는 감독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포스트 박지성 문제'를 당장 해결할 가능성은 그만큼 점점 더 줄어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꽤 중요한 시기에 지휘봉을 잡은 조광래 감독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아시안컵이라는 큰 대회가 바로 코앞에 다가오기는 했지만 진정한 세대 교체를 이루기 위해서 보다 다양한 자원들을 주축 멤버로 활용하며 기회를 주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A매치 경험이 아직까지 일천하다시피 한 윤빛가람이 한일전에 나선 것은 결과적으로 아쉬웠지만 그런 반면에 큰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평소 소신 있는 행동을 보여 온 조광래 감독이 강한 의지를 갖고 '포스트 박지성 키우기'에 힘을 쏟으면서 보다 탄탄한 전력을 갖추는 데 열을 올리고 더불어 축구계나 축구팬들이 조금은 답답한 감이 있어도 이를 인내하고 지켜본다면 충분히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박지성의 의존도를 줄이고, 대체할 수 있는 선수들을 발굴해 내면서 이에 대해 우리 팬들은 무조건적인 비판, 비난보다는 인내를 갖고 지켜보면서 건설적인 한국 축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건 자원이 부족한 것은 결코 아니며, 기회나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 '포스트 박지성 문제' '원맨팀 후유증 문제'는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원만히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강한 의지와 주변의 '건설적인' 비판, 그런 가운데서 나타나는 지혜로운 자세가 '포스트 박지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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