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며 엿새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10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손 대표, 이 대표를 찾아 "정개특위(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은 국회의원 선거의 규칙을 결정하는 문제인 만큼 사실상 정당 지도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결국 이 대표의 발언이 책임 떠넘기기라는 지적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10일 오전 이해찬 대표는 단식을 진행 중인 손학규 대표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손 대표가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을 확실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줘야지"라고 하자, 이 대표는 "그래서 정개특위에 입법권까지 줬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정개특위에서 논의를 하자는 얘기다.

이해찬 대표는 이정미 대표를 찾은 자리에서도 같은 내용을 되풀이 했다. 이해찬 대표는 이정미 대표에게 "논의를 시작하자"고 말했고, 이정미 대표는 "시작이 아니라, 언제까지 어떻게 라는 얘기가 나와야 한다"고 버텼다. 대화가 길어지자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이 이정미 대표에게 "정개특위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정상화해 달라"며 "이렇게 굶고 계시는데 어떻게 논의가 이뤄지느냐. 어느 선만 그어놓고, 여기까지 안 오면 절대 안 온다고 하면 합리적 논의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이해찬 대표는 국회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 대표는 "천하의 이해찬은 정치개혁을 위해 살아온 사람 아니냐. 민주당에 야3당과 친여 무소속 의원을 합치면 182석인데, 182석으로 예산과 정치개혁을 하면 정부 성공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 우리가 예산을 안 하겠다고 하는 것 아니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이해찬 대표가 "그래서 연계하지 말자고 했지 않느냐. 예산은 예산대로 하고, 정개특위는 그거대로 가야한다"고 하자, 정 대표는 "예산안 처리했으니 선거제도를, 이제 임시국회 바로 소집해야죠"라고 응수했다. 이에 이 대표는 "정개특위에서 얘기를 좀 하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3당 대표와의 만남에서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정개특위에서 진행하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야3당은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결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전제로 세부논의를 이어가자는 얘기다. 야3당이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이유가 있다. 정개특위 논의는 결국 거대양당 지도부의 결단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정개특위 위원장과 간사들은 회의를 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비례대표 의석 비율 확대 ▲의원정수는 향후 정개특위에서 세부 논의 ▲정개특위 기간 연장 등의 내용을 담은 검토안을 만들어 각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이 검토안은 수용되지 않았다. 정개특위 논의, 결정에 당 지도부의 의중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은 미디어스와 전화통화에서 "(검토안은)결국 수용이 안 됐다"며 "정개특위라는 것이 각 당으로 구성돼 있으니, 당 지도부의 의중과 병행해서 가는 것이다. 원래 정개특위 논의와 각 당 논의를 병행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심 위원장은 "지금 정개특위 안에서는 각 당의 논의가 안 돼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야3당이 민주당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란 큰 틀의 결단을 요구하는 이유다.

심상정 위원장은 이날 이해찬 대표가 손학규 대표에게 '정개특위에 입법권을 줬지 않느냐'고 한 것에 대해 "정개특위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누가 줬느냐"며 "결국은 모든 국회의 결정은 (민주당, 한국당) 양당이 잘 조율돼야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 위원장은 "정개특위에 권한을 다 주셨다는 분이 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못 받는다고 하시느냐"고 비판했다.

따라서 민주당과 한국당 거대정당이 큰 틀의 결론을 내려줘야 본격적인 세부 논의가 가능할 거란 지적이다. 국회 정개특위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정개특위에서 논의하자는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면피하는 것"이라며 "(선거제도 개혁은)각 당 지도부가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승수 대표는 "큰 틀은 당 지도부가 책임 있게 협상을 해야지, 정개특위 위원들에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자문위원들도 각 당이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며 "그래야 구체적인 쟁점에 대해 정개특위가 본격적 논의에 돌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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