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부 부처에 언론사 간부들과 산하기관 단체장 등에 대한 대규모 ‘성향 조사’를 지시했다는 지난 12일자 경향신문 보도와 관련한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경향신문은 오늘자(14일) 1면에서 문화관광부가 언론사 간부들에 대한 ‘성향조사’를 했을 때와 비슷한 시기인 지난해 12월말, 산하단체에 중앙일간지의 경영상황과 부대사업, 내부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신문산업 현황’이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지난달 31일자로 작성, 1월초에 제출됐으며 전국단위종합일간지 10개사가 조사대상에 포함됐다.

▲ 경향신문 1월14일자 3면.
대다수 신문, 사설 통해 이명박 정부 비판 … 동아만 사설 게재 안해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와 관련해 인수위 쪽은 문화관광부에서 파견된 박모 전문위원 개인의 돌출행동에서 비롯한 일이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석연찮은 구석이 곳곳에 발견된다. 문화부에서 파견된 박모 전문위원은 문화부에서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운영단장, 문화중심도시 추진기획단 정책관리실장 등을 지낸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오늘자(14일) 한겨레의 지적처럼 “이런 경력을 가진 그가 할 일을 궁리하다 갑자기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 파악에 나섰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게다가 박모 국장은 문화부에서 인수위에 파견된 공무원이다. ‘파견공무원’이 담당 분과 인수위원에 사전·사후 보고도 없이 이 같은 일을 했다는 인수위 쪽의 해명은 무언가 추가적인 설명을 필요로 한다. “인수위의 내부 기강 해이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료 요청 전후에 지시나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란 해석이 타당하다”는 오늘자(14일) 경향신문의 지적을 일정부분 수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한겨레 1월14일자 4면.
이 같은 의혹 때문인지 오늘자 대다수 신문이 사설에서 ‘이명박 정부’와 인수위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 '대열'에서 이탈한 유일한 신문은 동아일보다. 다음과 같다.

<언론장악·사찰이 이명박 정부의 ‘실용’인가> (경향신문 사설)
<언론 통제하겠다는 발상 버려야> (국민일보 사설)
<인수위 ‘언론조사 파문’ 서둘러 덮었지만> (서울신문 사설)
<아직도 언론통제의 미몽에서 헤매는가> (세계일보 사설)
<인수위, 언론인 ‘성향’ 알아서 어디다 쓰려 했나> (조선일보 사설)
<언론사찰 의혹, 철저히 밝혀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권력 잡았으니 언론 길들이겠다는 건가> (한겨레 사설)
<어이없는 인수위의 언론인 성향 조사> (한국일보 사설)

‘노무현 비판’에 사설의 대다수를 할애한 조선일보

비판의 내용은 비슷하다. 하지만 유독 ‘튀는’ 언론사가 있는데 바로 조선일보다. 조선은 서두에서 이번 파문과 인수위 쪽 해명을 언급한 다음 중반 이후부터 사설을 맺을 때까지 ‘노무현 정부 비판’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인수위의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와 내부 동향파악 지시가 노무현 정부 때문이란 소리인가. 직접 ‘감상’해 보시는 게 좋을 듯 싶다.

▲ 조선일보 1월14일자 사설.
“노무현 정권은 출발부터 퇴장까지 그 길을 밟아 왔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좌파 신문사를 찾아가 선거기간 중에 사실을 왜곡하는 사설과 칼럼으로 자신의 선거운동을 도와준 논설책임자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를 공영방송 사장으로 앉혔다. 대통령 되고 나서는 나중에 철회하긴 했지만 자기 월급의 일부를 그 신문사의 발전기금으로 내겠다고까지 나섰다. 물론 대통령은 그 신문과 여러 차례 인터뷰도 했다.

반면에 정권과 성향이 다른 신문에겐 세무사찰을 했고, 그 신문과 인터뷰를 하거나 그 신문에 기고한 공직자에겐 시말서를 받고, 정부와 그 신문이 함께 운영해 오던 모범경찰관, 모범교사를 표창하는 상에서 정부 참여를 폐지하도록 하고, 기자회견 때마다 자신을 비판하는 그 신문들에 공개적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정신 나간 시대는 마감해야 한다. 언론은 정권의 잘못을 비판하고, 정권은 언론의 비판을 감수하는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생명이다. 인수위의 언론인 성향 조사가 노무현 정권의 정신 나간 관행에 길든 관료가 한 짓이라지만 가슴이 철렁하는 건 자라에 놀란 세월이 너무 험했기 때문이다.” <인수위, 언론인 ‘성향’ 알아서 어디다 쓰려 했나> (조선일보 사설 가운데 일부 인용)

조선 “인수위 언론인 성향조사는 노무현 정권의 관행에 길든 관료가 한 짓”

“인수위의 언론인 성향 조사가 노무현 정권의 정신 나간 관행에 길든 관료가 한 짓”이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인수위조차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는 ‘주장’을 조선일보는 아예 “노무현 정권의 정신 나간 관행에 길든 관료가 한 짓”이라고 단정을 짓고 있다. 결과적으로 인수위 ‘대변인’을 자처하고 나선 셈이다.

“언론은 정권의 잘못을 비판하고, 정권은 언론의 비판을 감수하는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오늘자(14일) 조선일보 사설 내용 가운데 일부다. 이 문구를 그대로 조선일보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 중앙일보 1월14일자 사설.
조선일보 사설의 지독한 ‘편파·정파성’은 보수 경쟁지인 중앙일보의 사설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도드라진다. 이것 역시 직접 감상해 보는 게 좋을 듯 싶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일이 당사자 한 사람의 문책과 사과에만 그칠 일이 아니라고 본다. ‘개인행위’를 강조한 인수위 해명에도 불구하고 세간에는 새 정부 차원의 또 다른 언론 길들이기 시도가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돌출행위 운운은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거다 … 인수위는 언론인 성향 파악의 추진 배경은 물론 실무 추진 과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벌여 국민 앞에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차제에 인수위 다른 곳에서 비슷한 사찰성 행위는 없었는지도 조사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 당선인의 말처럼 우리는 이번 일이 ‘해프닝’에 그치기를 바란다. 기자실 대못을 뽑겠다고 약속한 당선인이 한편으론 노무현 정권도 하지 않았던 공작정치를 준비했다는 의심을 사서야 되겠는가.” <언론사찰 의혹, 철저히 밝혀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가운데 일부 인용)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