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법 폐지,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차기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탈규제'와 '사유화'로 그 방향이 모아진다. 미디어에 대한 공적 규제를 풀고 시장 자율과 경쟁 체제를 도입해 언론 자유와 산업 활성화를 이루겠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과연 '탈규제'와 '사유화' 정책이 언론 자유를 구현한다고 볼 수 있는가?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언론사주의 자유로 전락할 위험은 없는가?

언론현업단체와 언론시민단체들은 보수신문의 여론 독과점과 파행적인 신문시장에 대한 처방없이 각종 '탈규제'와 '사유화'가 이뤄지면 특정 보수신문에게만 특혜가 돌아갈 뿐 미디어 공공성이 크게 후퇴할 수 밖에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흐름에 맞서 미디어 공공성을 비롯한 교육, 의료, 보건, 철도, 수도 등 우리사회 핵심 공공영역을 강화하는 새로운 연대운동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범사회적인 네트워크 구축을 제안하고 나섰다.

"미디어 규제완화와 시장논리는 여론 다양성 훼손, 미디어 공적 기능 후퇴"

지난 11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주최한 '미디어 공공성의 위기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문효선 언론연대 집행위원장은 "미디어 규제완화와 시장논리가 언론자유를 확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이미 언론을 억압하는 권력의 축이 정치권력에서 자본권력으로 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여론의 다양성은 훼손되고, 수익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거대 공룡' 기업은 언론의 자유와 미디어의 공적 기능을 후퇴시킬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 1월 11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주최한 '미디어공공성의 위기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 ⓒ서정은
문 위원장은 "미디어 공공성은 편견없는 콘텐츠와 소통의 여유 공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 개척을 뜻한다. 그런데 미디어가 '산업 활성화' 도구로서 정책의 우선 순위로 입안되면 우리사회 민주적 역량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며 "무제한의 시장경쟁은 특정 장르, 특정 포맷의 편중된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사회적 소수자나 경제적 소외층의 의견은 반영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은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2기라면 이명박 정부는 3기"라며 "자본과 정권의 유착 속에서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경제는 성공할지 몰라도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민심 파탄 등 임계점에 다다른 사회적 문제들은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디어공공성 사회행동' '공공성수호·확대 연대' 구성해 총체적 대응

양 총장은 또 미디어운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민영화, 교차소유, 신문법 폐지 등의 이슈에 대해 차기 정부와 한나라당이 정면으로 거론하기 전에 운동진영에서 먼저 입장을 모아야 한다. 반대 여론을 조성하는 차원이 아니라 미디어 공공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반 민영화가 아니라 공공성 강화, 반 교차소유가 아니라 여론독과점 해소, 신문법 폐지가 아니라 신문법 개정으로 미디어 공공성을 강화하는 주도적인 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양 총장은 이를 위해 가칭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을 구성해 미디어 공공성을 체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이론과 조직을 재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언론연대 소속 단체를 중심으로 독립영상운동, 인터넷언론네트워크, 한미FTA저지 시청각 미디어 공대위, 영화노조, IT노조 등 다양한 미디어 네트워크와의 결합으로 조직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교육, 의료, 보건 등 대표적인 공공영역과도 '공공성수호·확대 연대' 등 대규모 연대체를 구성해 우리 사회 전체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여론조성 작업을 동시에 펼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자본권력을 통한 언론 통제 의도'에 맞서 '미디어 공공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의 공공성 위기에 대해서도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뜻을 같이 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탈규제' 이슈에 단순히 반대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미디어가 지향해야 하는 공공 가치를 사회적으로 설득하는 논리적인 운동으로 한단계 올라서야 한다는 반성도 뒤따랐다.

아울러 시민단체를 바라보는 언론노조의 시각, 주류 미디어 운동이 보여왔던 이기주의적 한계를 극복하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점도 주요하게 제기됐다.

주류 미디어 운동 '체질개선' 시급…미디어 경계 넘어선 소통과 연대 절실

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은 "미디어 공공성 강화를 위한 논의는 우리사회 여러 분야의 공공성 위기와 결합시켜 풀어나가야 한다"며 "범사회적인 공공성 수호 연대체를 조직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전 소장은 그러나 "언론운동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며 "특히 언론사 노조가 시민단체를 바라보는 기능적이고 도구적인 시각을 극복해야 한다. 또 더 이상 기자회견과 성명서 방식의 투쟁으로는 안된다. 이론과 담론, 철학과 정책이 정교하게 짜여지지 않으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상파 방송의 공공성이 언론자유와 시민사회 가치로 등치되는 경향에 동의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지난 선거 과정에서 UCC의 표현이 부진하고 한미 FTA 투쟁에서 거리 집회가 참담하게 무너질 때 그리고 공적 공간의 해체가 이뤄질 때 지상파방송이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서정은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도 "MBC 민영화 정책에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MBC를 어떻게 바꾸자는 이야기는 왜 하지 않는가"라며 "기존 구조를 지키기에 급급하고 이명박 정부의 논리에 반박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사회적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다. 주류 미디어 운동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디어의 근본 가치가 무엇인지를 논의할 때 상호 연대와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주류 미디어가 독립언론이나 풀뿌리 미디어를 인정하지 않고 비하하는 분위기를 깨야 한다"며 "방송 중심, 신문중심, 인터넷 중심 등 기술적 경계를 넘어서는 소통의 구조, 주류와 독립 미디어의 소통의 구조, 아래로부터의 커뮤니케이션 문화 등을 구현하면서 미디어 융합 시대의 큰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영주 참세상 편집장도 "황우석 사태, 한미 FTA, 비정규직 문제, 삼성 비자금 문제가 터졌을 때 언론이 어디에 있었고 어떤 사회적 책임을 다 했는지부터 평가해야 한다"며 "국가, 시장, 미디어의 복잡한 함수관계에서 국가가 규제를 풀어주고 자본이 이끌어가는 방식이 전개될텐데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미디어 공공성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중동 vs 나머지 신문·방송' 또는 '조중동 vs 지역 언론' 구도 형성

이에 대해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시민단체를 도구화하는 노조의 시각, 미디어에 닥친 공공성 위기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책임을 후회하고 반성한다"며 "우리 사회 공공분야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원칙으로 돌아가 기본부터 시작하겠다.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여러 분야와 연대해 한목소리를 낼 때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최소한의 저지선을 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순기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최근 인수위가 밝힌 신문법 폐지와 신문방송 겸영 허용은 철저히 조중동 중심의 정책"이라며 "실현된다면 나머지 신문들은 비상이 걸릴 수 밖에 없고 지역 언론은 완전히 초토화된다. 따라서 이 싸움은 조중동 대 나머지 언론(신문과 방송, 지역언론), 즉 소수 대 다수의 판세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또 "현재 신문법 폐지에 환영하는 조중동의 보도를 보면 논리가 빈약하고 꿰맞춘 흔적이 역력해 논리적으로 대응해 나간다면 충분히 맞서 싸울 수 있다"며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의 공세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과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