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바른미래당이 ICT 산업 노동자에 대한 '주52시간 근로제' 원칙적 적용이 의문이라며 산업 특성상 선택근로제 등 유연근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나섰다. 일명 '크런치 모드'로 악명 높은 게임업계를 비롯, IT업계 종사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이 고발되고 있지만 산업특성을 이유로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

3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는 바른미래당 신용현, 이동섭, 김수민 의원의 주최로 'ICT분야 52시간 근무. 정답인가?'라는 제목의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3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는 바른미래당 신용현, 이동섭, 김수민 의원의 주최로 'ICT분야 52시간 근무. 정답인가?'라는 제목의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손학규 바미당 대표, 권은희 바미당 의원, 김삼화 바미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사진=미디어스)

이 자리에는 손학규 바미당 대표, 권은희 바미당 의원, 김삼화 바미당 의원 등을 비롯해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병태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전무, 한인상 국회 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 입법조사관,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 안병도 한국게임산업협회 선임연구원, 곽병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산업과 과장, 김규직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 과장 등이 참석했다. ICT 산업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된 정책을 논하는 자리였지만 당사자인 노동자 측 인사는 없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를 주창했던 손학규 대표는 "주 52시간 근로제는 저녁이 있는 삶의 창시자인 저로서는 반대를 할래야 할 수 없다"면서도 "요즘 보면 많은 직장에서 왜곡이 되고 있는 것 같다. ICT 업무는 연속해서 근로해야한다. '주52시간제, 정답인가'라는 문제제기는 시의적절하고 사회 취지에 맞는 주제"라고 말했다.

이어 손 대표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3개월, 6개월, 1년으로 확대해서 유연하게 대처하자는 것인데 노조에서 반대를 해 잘 안되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 노조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노조가 자기네들 조직의 이기주의를 위해 경제발전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신용현 의원은 "52시간을 도입해서 근로시간을 줄이고 회사와 근로자 모두 윈-윈하는 그림을 그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획일적으로 도입되면서 거꾸로 윈-윈이 아니라 잘못하면 해가 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고, 이동섭 의원은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된 지 4개월인데 여러 부작용이 도출되고 있다. 다양성이 담보되지 않고 획일적 잣대로 재서 적용했는데 이게 바로 정부의 실체"라고 비판했다.

발제를 맡은 이병태 교수는 ICT 산업의 특성상 선특근로제 도입과 예외 업종 적용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프로젝트 중 변동요인이 많다는 점,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원수를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 글로벌화로 외국계 파트너와 시간을 맞춰 공조해야 한다는 점, 팀 중심의 협업체계로 인해 노동력 추가시 효율이 낮다는 점 등의 이유에서다.

이 교수는 "이번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국제기구가 말하는 '포용적 성장'의 이름만 차용한 사기", "국제 경쟁력을 도외시한 선동정치로부터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일 많이 하는 것을 잘못된 것처럼 말하는데 우리나라가 그나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성장했던 과정을 훼손하고 있다", "개혁대상은 정부이지 시장이 아니다. 5류인 정치인들이 1류인 삼성을 개혁한다고 한다" 등의 말을 쏟아냈다.

채효근 전무도 "연장근로가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업종의 특성이 있다"며 "ICT 산업의 경우 상반기는 놀고, 하반기부터 일에 투입된다. 수주형 산업은 선택적 근로에 목을 멘다"고 말했다. 개발단계 3개월은 월 평균 17.9시간의 '적정한' 초과근로가 발생하고, 테스트 작업 등 하반기에는 월 평균 66시간의 초과 근로가 발생하는데, 유연성이 없는 제도 때문에 '미스매칭'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채 전무의 설명이다.

3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는 바른미래당 신용현, 이동섭, 김수민 의원의 주최로 'ICT분야 52시간 근무. 정답인가?'라는 제목의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이에 따라 '선택근로제'를 전격 도입하고 기본 산정 단위기간을 기존 1개월에서 3개월, 6개월까지 늘려야 한다는 것이 산업계의 주장이다. 선택근로제는 한달간 1일 근로시간을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예를 들면 주 52시간 근로제(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하에서는 한 달 20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한데 일이 몰리는 특정 주에 근로시간을 몰고, 남은 주에는 줄여 근로시간 기준에 맞추는 것이 가능하다. 산업계 주장에 비춰보면 기본 산정 단위를 기존 1개월에서 6개월로 늘려 일이 몰리는 3개월동안 근로를 집중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선택근로제는 노동자 대표와의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제도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은 노동자 대표가 아닌 노동자 개인과의 합의를 이루는 방식의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신 의원은 "저희 당은 단위기간을 연장하고, 근로자 대표와 합의하는 게 아닌 근로자가 합의 주체가 되는 것으로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합의 주체가 되어 자율적으로 근로를 조정한다'는 말이 되는데, 이를 뒤집어 보면 노동자 대표보다 협상력이 약한 노동자 개인이 사측과 협상해 근로시간을 조정하게 될 우려가 크다.

그렇다면 ICT업계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노동현실과 대책은 무엇일까. 지난 6월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ICT 업종은 특별 연장근로가 가능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IT노조(한국정보통신산업노조)는 성명을 내고 "ICT 산업 노동자도 원칙적 52시간 근로를 원한다"고 비판했다.

당시 IT노조는 "김 부총리의 발언 요지는 ICT 산업이 특수하기 때문에 연장근로를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며 "이를 뒤집어 보면 ICT 산업을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에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의 관리책임과 천재지변을 비롯한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한 예방 및 대응 미비 등의 문제를 모두 연장근로로 해결하겠다는 말"이라며 프로젝트 단위의 계약직 채용, 도급 고용, 파견과 하청 등을 철폐하고 긴급 변동사항에 대한 대응 뿐 아니라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예방책 마련을 위한 추가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철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IT노조와 함께 약 한 달간 IT업계 노동자 503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프로젝트 시 필요한 인력만을 채용하기 위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프리랜서 고용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503명 중 원청과 계약을 맺고 있는 사람은 100명에 불과했다. 1차 도급업체 소속이 111명, 2차 하청업체 소속이 101명, 3차 이상 용역업체 소속이 75명에 달했다. 그럼에도 원청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201명이었고,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는 사람 중 원청 회사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다는 응답도 70%에 달했다.

프리랜서로 일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125명(25%)이었다. 이 중 62.4%가 계약기간이 1개월~6개월 미만이라고 답했으며 1년 이상 장기계약을 맺는다는 응답은 12%에 불과했다. 또 이들 중 65.6%는 프로젝트 수행 중 그만 둔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설문조사에서 IT노동자들 중 25.3%는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한다고 응답했으며,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인 40시간을 준수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12.4%에 불과했다. 52시간 상한제 적용 이후 실제로 근로시간이 단축되었다는 응답 역시 17.4% 뿐이었다. 응답자들은 이러한 연장근로 발생 이유에 대해 대체로 '하도급 관행', '무리한 업무일정', '비효율적인 업무배치와 조직의 의사결정'을 꼽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IT노동자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자살을 생각할만큼 위험수위에 있다는 점이다. 응답자 중 최근 1년간 자살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응답은 48.71%로 절반이 안 됐다. 그 중 거의 매일 자살을 생각한다는 응답자가 19명(3.78%), 실제로 최근 1년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14명(2.78%)이나 되었다. 우리나라 성인 일반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최근 1년간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0.1%인 걸 고려할 때 IT노동자들의 자살시도율은 일반 성인의 약 28배에 달한다.

올해 들어 IT·게입업계에서 잇따라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현상이다. 네이버 노조가 첫 문을 연 이후로 넥슨, 스마일게이트, 안랩, 다음 카카오 등의 유력 IT 기업에서 노조가 설립됐다. 이 회사들은 직원 임금수준이나 복지체계가 잘 갖춰진 회사들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력 IT기업을 중심으로 노조가 생기는 이유는 '장시간 노동'이 주 요인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IT서비스업체 83개소에 대해 근로감독 실시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IT업계에는 1주 12시간 이상의 연장근로가 만연해 있었고,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 근로시간 위반은 대체로 임금체불로 이어지고 있었다. 또한 노동부는 대다수의 사업장에서 최저임금 미달, 각종 법정수당 미지급, 휴일·휴가 미부여 등 기초고용질서 위반(74개소, 377건)이 발생하고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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