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은 2014년 3월 노조 결성 이후 ‘진짜사장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해왔다. 노조가 끈질기게 싸워온 결과, LG유플러스는 지난 9월 드디어 정규직화 방안을 내놨다. ‘부분자회사’다. 전국 72개 홈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2600여명인데 이중 1300명만 자회사로 고용하고, 나머지 1300명은 하청업체 소속으로 남기겠다는 것이다. 천하제일의 어용노조라도 수용할 수 없는 황당무계한 방안이다. 그래서 우리 노조는 10월 15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32 소재의 LG유플러스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매일 같은 메뉴의 도시락을 꾸역꾸역 삼켜낸다. 춥고 시끄럽고, 매연도 심하다. 잠이 오질 않는다. 억울하다. 그래서 쓴다. / 글쓴이 주

⑦편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동지들은 곧 쓰러질 것이다>를 잇습니다.

동지들이 곡기를 끊은 지 오늘(12월 2일)로 나흘이다. 내가 할 일은 효소와 소금이 얼마나 남았는지 살피고, (동지들의 몸을 따뜻하게 할) 발전기를 점검하고, (발전기를 돌릴) 휘발유 잔량을 확인하고, 동지들에게 필요한 것을 사오는 것이다. 참, 편의점이나 주변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음식냄새를 꼭 빼내고 농성장으로 복귀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다. 글쓰기의 필수요소인 커피도 2백미터쯤 떨어진 편의점에서 마신다.

가장 중요한 일이라면 동지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평소보다 몇 배는 세심하게 지켜보고 물어봐야 한다. 노숙농성과 단식을 동시에 견뎌야 하니 체력과 정신력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동지들은 “아직은 끄떡이 없다”고 하지만 보이고 들리고 느껴진다. 800여 조합원이 상경해 여의도 트윈타워 앞에서 집회를 하는 12월 5일, 이 동지들이 무대에 올라 발언할 수 있을까?

어떤 동지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다고 한다. 어떤 동지들은 이제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동지는 거의 움직이질 않는다. 어떤 동지는 눈물이 많아졌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계속 몰입할 거리를 찾는 동지들도 있다. 대다수는 침낭 안에 핫팩을 터뜨리고 누워 있기만 한다. 하루하루 대화와 웃음은 반으로, 반의반으로, 그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 같다.

이제, 동지들에게 단식의 냄새가 난다. 허기와 피로가 섞인 그 특유의 냄새 말이다. 담배 연기와 결기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이 냄새는 몸이 망가지는 신호다. 몸에서 기력이 빠져나간 만큼 목소리도 줄어들었다. 목소리가 조금씩 잠긴다. 이제 동지들과 대화하려면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한 뼘 더 다가서야 한다.

나는 오늘도 할 일을 했다. 오늘은 동지들에게 생년월일, 주소, 가족관계, 비상연락망 등을 물었고, 동지들이 해준 이야기를 문서로 정리했다. 말을 많이 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의도와는 달리 답이 너무 길었다. 그리고 기억나는 이야기도 너무 많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머니에게 전화하지는 말아 달라”는 노조쟁이 아들, 큰 아이를 대학에 보낼 준비를 하는 아버지, 내년 3월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는 아빠, 이제는 아내에게 “같이 노조 하자” 이야기하는 남편, “가진 게 몸뚱어리밖에 없어서, 가진 것을 모두 걸고 싸우겠다”는 열혈 조합원, 노조를 만나고 삶이 달라졌다는 유독 눈물이 많은 노조 간부… 1969년생에서 1983년생까지 동지들의 이야기에는 삶의 이유, 투쟁의 이유가 빼곡하다.

이중 한 동지의 이야기. 이 동지는 놀랍게도(!) 노조가 파업 중에, 그것도 노조 없는 하청업체에서 홀로 가입했다. 이 동지는 오늘 인터뷰(?) 중에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은 “2014~2015년 동지들이 파업을 하고 있을 때 대체인력으로 들어왔던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그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동지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 더 울었다. “농성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데…지나가면서 마주칠지 모른다. 절대 모르셔야 하는데….”

동지들도 나도 갈수록 눈물이 많아진다. 오늘 용산시민연대와 함께서울에서 우리 싸움을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해 농성장을 찾아왔다. 우리 동지들은 씩씩하게 지역의 동지들을 맞았고, 온힘을 다해 우리 투쟁을 이야기했다. 몇 번을 울컥하면서도 꿋꿋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 동지들이 또 사람을 울렸다.

하루가 끝나는 시간, 전화가 울렸다. 세 살배기 딸과 영상통화를 하는 아빠의 첫마디. “밥 먹었어?” 여섯 살 아들의 하루가 궁금한 아빠의 질문. “오늘 재밌게 놀았어? 어디 갔다 왔어?” 내일 날씨를 전하며 걱정부터 하는 남편. “비 내린다던데 알고 있지?” 이 사람은 11월 29일부터 밥을 먹지 않았고, 한강대교 북단의 한 천막을 지켜왔으며, 자고 일어나면 비를 맞으며 피켓을 들어야 한다.

나는 물어보고 싶다. LG그룹 구광모 회장과 권영수 부회장, LG유플러스 하현회 대표이사와 황상인 부사장, 여러분에게는 이런 동지가 있나. 모두를 위해 최선을 다해 온힘을 다해 싸워본 적이 있나. 목숨을 건 투쟁을 하면서 가족의 끼니와 날씨를 걱정해 본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있나. 우리 동지들은 돈도 권력도 없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뜨거운 박수와 존경을 받는다. 여러분은 돈과 권력과 위치 없이 박수와 존경을 받은 적이 있나.

⑨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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