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언론에도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이번 불상사가 이토록 보도 가치가 높고 주목할 사건이라면 지난 8년간 유성기업에서 발생한 사측의 불법, 폭력, 인권유린, 노동자의 죽음, 재벌과 관계 당국의 공조와 갑질은 보도할 가치가 없어서 넘어갔습니까? 보수언론은 지난 2, 3일간 할애한 지면과 시간만큼 유성 8년의 투쟁을 보도했습니까? 기울어진 운동장은 감수할 테니 기계적 중립이라도 부탁드립니다."

지난달 22일 오후 4시, 유성기업 아산공장에서는 유성기업 임원 김 모 상무가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노조원들에게 폭행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노조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고, 유성기업지회는 29일 공식사과와 함께 45일간의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점거 농성을 접었다.

29일 유성기업지회는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산공장에서 벌어진 불상사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 지회는 이 같은 상황이 반복 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며 "조합원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지회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고 사과했다. 이승열 금속노조 부위원장도 28일 "어떤 식으로든 폭력은 있어서는 안 된다. 폭력사태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지난 일주일간 쏟아진 언론보도를 접하고 참을 수 없는 울분을 느낀다"며 "보수언론과 경제지가 경쟁적으로 부풀리기 기사를 생산하다 보니 기사마다 상황이 다르고 보도를 거듭할수록 수치가 늘어나는 기이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선정성과 정략에 기댄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고 호소했다.

도성대 금속노조 유성아산지회장은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고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 회사의 노조 파괴로 3명이 죽었다. 상전이 하인을 8년 동안 일상적으로 두드려 패도 뉴스가 안 됐다. 우리는 8년 동안 일상적으로 맞았다. 그동안 언론은 어디 있었나"라고 울분을 토했다.

노조가 "폭력은 어떤식으로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사과입장을 밝히면서도 언론에 기계적 중립을 호소하며 말하고자 하는 '8년'은 무엇일까.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11월 29일 서울 강남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농성 철회 기자회견을 연 모습. (사진=연합뉴스)

유성기업은 현대차 핵심 엔진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다. 유성기업과 유성기업지회는 2009년 임단협에서 2011년부터 기존 '24시간 2교대제'에서 '주간 2교대제'로의 변경을 목표로 추진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어진 2011년 특별교섭에서 노사는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노조는 그해 5월 파업에 돌입했고, 사측은 아산과 영동 공장을 모두 직장 폐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직장폐쇄 직후 사측은 공장 안에 있던 조합원을 끌어내고 조합원 회사 출입을 막기 위해 경비용역을 동원했다. 노조는 500여명 규모의 경비용역이 수개월간 폭행을 가해 매일 2~30여명의 조합원이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 실려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다. 일례로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아산공장으로 진입하려던 조합원들을 용역업체 직원이 운전하는 차량이 덮치면서 10여 명이 다치는 일도 벌어졌다.

이후 법원의 조정으로 직장폐쇄가 종료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이 과정에서 사측은 노조원 일부가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을 위반했다며 해고를 단행했다.

노조는 2011년 10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사측의 노조 파괴 행위와 부당노동행위를 검찰에 고소했지만 수사 진척은 없었다. 그러나 2012년 국회 청문회에서 유성기업과 노무법인 '창조 컨설팅'이 공모한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폭로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시나리오'와 이어진 재판에서 입증된 사실을 살펴보면, 2011년 5월 6일 유성기업과 창조 컨설팅은 '성공보수'라는 명목으로 이면계약을 맺었다. 금속노조 산하 지회 조합원 수가 5월 6일 기준 50%로 감소된 시점에 일금 8000만원 지급하고 20%로 감소된 시점에 또다시 일금 8000만원을 7일 이내에 지급한다는 내용 등이다.

창조 컨설팅이 작성한 '노사관계 안정화 컨설팅 제안서'(2011년 4월)에는 '유성기업 노조(제2노조)' 설립과 육성, 단체교섭·쟁의행위에 대한 대응, 정부 등 유관기관 대응 등이 적시돼 있었다. 2011년 7월부터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다는 점을 이용한 전략이었다. 계약금액은 월 5000만원, 유성기업은 창조 컨설팅에 14억원을 지급했다.

검찰은 2011년부터 이어져 온 노조의 고소건과 관련해 2012년 11월 유성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사측이 노조 파괴를 진행해왔다는 증거들을 확보했지만 유성기업을 기소하지 않았고, 2013년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노조는 이에 항의해 재정신청을 했고 2014년 법원은 재정신청을 인용, 검찰에 기소명령을 내렸다. 이후 2016년 법원은 제2노조 설립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고, 2017년 대법원은 '노조 파괴' 혐의로 고소당한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에 대해 징역 1년 2개월 실형을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에 대한 해고, 출근정지, 정직 등의 중징계와 고소·고발, 감시통제가 지속됐다. 고소·고발 건은 1300여건에 이르며, 아산공장과 영동공장에는 각각 19대, 11대의 CCTV가 설치돼 노동자에 대한 감시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콘센트 등으로 위장한 몰래카메라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 결과 조합원들은 정신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정신질환으로 산재를 인정 받은 조합원은 현재까지 9명으로 충남노동인권센터가 2015년 유성기업 아산·영동공장 노동자 2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3.3%가 우울증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측의 조치는 한 조합원의 자살로까지 이어졌다. 조합원이었던 고 한광호 씨는 2016년 3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한 씨는 노조활동과 관련해 회사로부터 징계위원회 출석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한 씨는 재직 중 11건의 고소·고발을 겪었고, 2014년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는 우울증 고위험군으로 판정돼 상담치료를 받았다.

현재 지회의 요구는 ▲유시영 회장과의 직접 교섭 ▲노조파괴 책임자 처벌 ▲어용노조 무효화 ▲한광호 조합원에 대한 사과와 보상 ▲임금교섭 재개 등이다. 부당노동행위 등 불법행위가 법원 판결을 통해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사측이 책임을 회피하며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지회는 유시영 회장을 업무상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사측이 8년동안 '노조 파괴' 컨설팅 비용과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소송비용을 회사 돈으로 지불했다는 것이 지회의 주장이다. 유 회장을 비롯한 회사 임직원의 소송비용을 법인 비용을 처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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