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화두가 되었다. 그런데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다. 심지어 나라를 위해 총을 들고 싸울지언정 나를 위해 아이를 낳는다는 건 '언어도단'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맞는 말이다. 한참 아이 낳기 좋을 건강한 시절엔 진학이니 취업이니 하느라 엄두를 못 내다 막상 아이를 낳으려니 임신이 쉽지 않은 시대, 이 아이러니한 세태에 대해 EBS 1TV <다큐 시선-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가 분석한다.

왜 비혼주의일까?

EBS 1TV <다큐 시선>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편

33세 한종택 씨는 안정된 직장을 구하자 집을 옮겼다. 새 침대도 놓고 전등도 새로 사며 공간을 꾸미기에 한창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집은 오로지 그만을 위한 공간이다. 이른바 '비혼주의', 그게 결혼에 대한 그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36.3%, 여성의 22.4%만이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즉, 결혼적령기 남성과 여성의 2/3가 결혼은 선택의 문제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곧 '어른이 된다'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남성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의식을 내면화한 젊은이들에게 그럴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결혼은 '부담'일 뿐이다.

이 부담을 현실화시켜주는 통계가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고소득자의 과반수가, 심지어 10분위의 경우 82.5%가 결혼을 하는 반면, 1분위의 경우엔 겨우 6.9%만이 결혼을 했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소득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통계는 증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공교육만으로 아이를 교육시킬 수 있다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비용은 줄어든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교육은 많은 부분 사교육에 의존한다. 또한 직업이나 주거 역시 결혼의 주된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과연 이런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결혼을 감행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젊은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앞서 한종택 씨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기까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미뤄두었단다. 이제 비로소 자신다운 삶을 즐길 수 있는 상황, 그래서 그가 택한 방식이 '비혼주의'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

무자식 상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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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함께 살아도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도 모색된다. 공덕동에 사는 31살 홍혜은 씨에게는 세 명의 동거인이 있다. 애인과 두 명의 동생. 이른바 '공덕동 하우스'라는 계간지까지 내는 이 공동체는 '비혼 생활'을 지향한다.

자유로운 삶과 자기 계발을 위한 비혼만이 아니라, 더 긴밀하고 건강한 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비혼을 주창하는 이들. 우리 사회 많은 가족들의 민낯이 그러하듯, 누나 동생 사이라도 서먹서먹했던 혜은과 막내 동생은 이 공동체 속에서 서로 말을 트며 누나와 동생의 권위를 넘어서는 데 몇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를 잘 꾸려 나가며 그 속에서 서로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함께 고심 중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아이가 없다고 해서, 아이를 당장 낳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이 아이를 외면하는 것일까? 산아제한의 시절 5남매인 덕에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이들이, 9명으로 확대된 온오프라인 공덕동 하우스 일원의 아이에게는 조건 없는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막상 공동체의 일원으로 아이를 기르는 문제에 있어서는 비용과 시간의 문제를 들어 난감함을 표명한다. 아이는 좋아도, 아이를 키우기엔 쉽지 않은 사회다.

이런 젊은 세대의 생각을 반영하듯, ‘결혼해야 한다’가 48.1%인 반면 ‘결혼하지 않아도 같이 살 수 있다’는 비율은 56.6%로 결혼해야 한다를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이 비혼 가정의 자녀를 기꺼이 사회의 일원으로 보호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가 미비한 우리 사회에서 비혼 가족의 출산율은 저조하다. 사회는 아이를 원하지만, 정작 결혼한 ‘정상 가족’의 아이만을 원하는 아이러니가 바로 우리 사회 낮은 출산율의 또 다른 이면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쉽지 않은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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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소위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결혼한 ‘정상 가족’의 아이는 어떨까?

34살 강종희 씨는 오늘도 종종걸음이다. 동네에서 늦게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어린이집을 겨우 찾았지만 그마저도 늦지 않게 가기 위해 늘 조바심에 동동거린다. 엄마를 만난 기쁨도 잠시, 이미 해는 져서 어둑어둑한 놀이터에서 아이는 ‘1분만 더’를 조른다. 겨우 달래서 들어온 저녁, 삼교대 근무를 하느라 부재중인 남편을 대신하여 아이랑 놀아주고 씻기고 다시 내일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그리고 다시 새벽부터 이어지는 하루. 주변에서 은근히 부담을 주는 둘째는 언감생심이다. 엄마의 출근 시간에 쫓겨 못자고, 먹을 것도 빨리 먹어야 하고, 놀이터에서 실컷 놀지도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직장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못할 짓이다 싶다. 아이를 낳으면 시댁에 맡기라는 시부모님의 말씀이 반갑기보다, 조부모님 품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자기가 무슨 엄마 자격이 있을까 싶다. 또한 직장에서는 아이 생각, 집에서는 직장 일 생각을 하며 늘 머릿속이 복잡한 자신의 생활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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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낳아서 지지고 볶으면 다행일 수도 있다. 29살 김수연 씨는 오늘도 매끼니 고가의 영양제를 한 움큼씩 삼킨다. 임신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도한 두 번의 시술, 그러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몇 번의 기회, 나날이 그녀는 위축되어간다. 국가에서 비용을 보조해준다고 하지만 그조차 만만치 않다. 아이를 낳고자하지만 정작 아이는 그녀에게 쉽게 오지 않는다.

이건 비단 김수연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병원 간호사였던 그녀. 불규칙한 수면과 식사, 그리고 과로는 그녀의 직장 생활을 정의하는 단어들이었다. 김수연 씨와 같은 조건 혹은 비슷한 조건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난임의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임신을 할 수 있는 나이에는 결혼도 안 되고, 임신은 더더욱 안 된다는 사회적 압력을 받으며 우리 사회 출산연령은 자꾸만 늦어진다. 더구나 난소기능 검사(AMH)와 같은, 조기에 치료가 중요한 난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미처 갖춰져 있지 않다. 결국 정작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할 때 아이를 가지지 못하거나 힘든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산아 정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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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우리 정부에서는 정부 주도의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가 정부의 주요 시책이었다. ‘가족계획 어머니회’를 내세운 임신 중절을 위한 차가 마을에까지 가서 낙태를 주도했다. 1980년대 출산율이 2.1%였다면 모집단을 통해 집계된 낙태율이 2.1%였다. 즉 국가가 앞장서서 낙태를 조장했다. 이런 정책은 80년대에도 지속되었다. 한 자녀에게는 의료보험 혜택과 새마을 유아원 무료 교육과 육아 보조비, 산모 요양비가 주어졌으며 다산 가족에게는 셋째부터 주민세 등의 불이익이 주어졌다.

'산아'에 대한 국가적인 개입의 역사였다. 이 과정에서 모성은 도구화되었고, 여성은 객체화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고 다를까? 아이를 낳으면 이러저러한 이익을 보장한다는 각 지자체의 홍보성 정책은 과거 정책의 ‘반사판’ 판박이이다. 사회와 국가는 여전히 여성에게, 엄마에게 매달린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의 출산과 양육, 그 대부분은 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되어 있다. 경쟁의 한국 사회, 그 경쟁에서 승리하는 아이를 만들어내는 건 여전히 엄마다. 그런데 그런 엄마의 역할을 충족시킨 자식은 1%도 못 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바로 '엄마 스트레스'로, 가임기 세대에게 온전히 압박감으로 가중된다는 것이 전문가의 해석이다. 그래서 그걸 미리 거부하면 '비혼'이요, 결혼해서 거부하면 '무자녀'이며, 한번쯤 시도해 봤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한 자녀'라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줄어든 아이들은 바로 '둘째'이다.

결국, 여전히 19세기와 20세기의 프레임 속에 갇힌 한국 사회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패러다임이 21세기의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미루게 만든다고 다큐는 결론 내린다. 아이를 낳으면 ‘뭘 해주겠다’ 하기 전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인식의 변화와 조건을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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