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 군기 문란 엄정 대처해야.”

군대에서 성폭력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나오는 말이다. 최근 부하를 성폭행한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은 해군 장교 2명이 고등군사법원에서 열린 2심에서 원심을 깨고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서도 그랬다. 군 관계자들 의견과 언론사 헤드라인, 여론에서 어김없이 이 주장이 등장했다.

군 기강이란 무엇인가? 상명하복 위계질서나 단합력 등 군대 내 특수적으로 작용하는 규율과 법도를 이르는 말이다. 군의 전투력과 방어력을 확립해 궁극적으로 국가 안보에 기여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군대 내 성폭력은 이 군 기강이 문란한 탓이기보다, 성 군기 자체가 문란한 것이 문제다. 강간과 계간(동성간 성행위)에 대한 모순적인 규율 때문이다.

군 성폭력 근절 대책회의에서 발언하는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사진=연합뉴스TV)

이번 사건에서 고등군사법원은 원심을 모조리 무시하고 무죄 판결을 내린 사유로 “군의 위계질서로 저항이 곤란할 만한 사정은 인정되나 폭행, 협박이라는 강간죄의 수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해당 사건이 친고죄 폐지 이전에 발생해 위력에 의한 간음 행위는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2011년 헌법재판소가 동성 군인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상 추행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근거는 이와 정반대였다. 당시 헌재는 “군의 엄격한 계급구조로 인하여 상급자가 직접적인 폭행이나 위력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에도 하급자가 스스로 원하지 않는 성적 교섭행위에 연관될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강제에 의한 추행과 비강제에 의한 추행을 구별할 필요조차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즉 여성에 대한 강간죄 판결에 있어서는 저항 불가능한 폭행·협박 여부로 판가름하는 ‘최협의설’에 가까운 반면, 남성에 대한 계간죄는 강제 여부를 가릴 ‘필요조차 없다’며 무조건 처벌하도록 한 ‘최광의설’ 입장을 취한 것이다. 전자는 강간인데 동의한 관계가 되고, 후자는 동의했는데 계간이 되는 부조리가 생긴다. 게다가 위계 및 위력에 의한 간음은 위헌 소송 당시 군형법에서 강간으로 규율할 수 없었으나, 계간죄를 통해서는 무조건 가능했다.

이렇게 군의 규율은 같은 성폭력 피해라도 남성이냐 여성이냐, 그리고 이성 간이냐 동성 간이냐에 따라 그 처우를 달리하는 모순을 보인다. 이는 성폭력의 원인을 남성의 성욕에 두는 담론에서 기인한다. 남성간 성폭력에서는 동성애가 곧 성폭력이라며 동성애를 과잉성애화 하고, 이성간 성폭력에서는 저항 불가능한 폭행·협박이 있었는지 따지며 피해 여성에게 과한 책임을 부과한다.

이 담론은 곧 이성애자 남성에게 편향된 담론이기도 하다. 동성애자 군인의 성행위는 철저히 금지하는 반면, 이성애자 군인의 성욕 해소는 오히려 장려되기 때문이다. 위문 공연 문화나 휴가 시 불법임에도 공공연하게 성매매를 권하는 문화가 대표적이다. 또 부부 군인의 군대 내 성행위에 대해서는 처벌 규정이 없다.

이와 달리 동성 군인간의 성행위는 군 기강을 해치는 원인으로 지목되며 무조건 금지되고 있다. 군형법상 추행죄 위헌 소송 당시 강간죄와 달리 계간죄는 비 친고죄로 규정된 사유를 살펴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순에 대한 헌재의 주장은 ‘남성에 대한 성폭력은 전투력 및 군 기강과 직결돼 있지만 여군에 대한 성폭력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다’였다.

해군 간부 성폭력 무죄 판결을 규탄하는 국민청원 게시물(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여기서 알 수 있는 군대 내 성폭력 범죄의 보호법익은, 남성 피해자에 대해서는 군 기강이라는 ‘공익’인 반면. 여성 피해자에 대해서는 ‘사익’으로 차별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성 군기를 둘러싼 모순들은 ‘호모 소셜(homo social, 남성 연대)’로 설명 가능하다. 호모 소셜은 이성애자 남성 중심의 위계 사회로, 동성애 혐오와 여성 혐오를 토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군 기강의 핵심은, 이 호모 소셜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구성원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남성-이성애 중심주의로 통제하고 규율하는 것이다. 군대 내 성폭력 사건 실형 선고율이 일반 법원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턱없이 낮고, 기본권 침해에도 불구하고 남성 군인 간 성행위 처벌 규정이 존재하는 이유다. 여성 동성애자에 대해서도 이번 사건처럼 ‘교정강간’이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결국 군대 내 성폭력 문제는 호모 소셜을 핵심으로 하는 군 기강의 특수성에 기반해 풀어 나가야 한다. 동성애 혐오 및 여성 혐오적인 군 기강이야말로 강제로 교정되어야 할 적폐다. 문제 해결 방안으로 군 적폐를 그대로 답습하는 군사법원 폐지, 군과 독립된 성폭력 대응 체계 정립 등과 함께 강간죄와 계간죄 차별과 강간죄 최협의설 관행 철폐, 그리고 근본적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하는 이유다.

‘남자 맛을 알려주겠다.’ 피해자가 동성애자임을 밝히자 가해자가 강간의 구실로 했다는 말이다. 얼마 전 문단 내 성폭력 고발로 불거진 모 시인도 같은 말로 가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남자 맛이 어떻길래 알려주지 못해 안달들이 난 것일까? 그 말대로라면 얼마나 맛없길래 본인들은 여전히 이성애자인 것일까. 정 그렇다면 당신들끼리 사이 좋게 나눠 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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