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대로 대통령인수위 문화관광부 업무보고는 문화적 권리나 생태적 가치 그리고 공공영역을 등지고 말았다. 그 대신 보수 정치의 재생산과 사적 욕망에 과포화된 공약이 공식화됐으며 이 과정에서 문화관광부는 문화적 가치를 논할 의사도 없이 납작 엎드렸고, 미디어 시장화의 최대 수혜자일 보수언론사는 이른 시간부터 부채질을 해댔으며, 여기에 인수위는 예산 축소와 공공기관 민영화를 추가 주문했다.

한반도 대운하의 문화적 물길을 복원하여 세계적 수준의 관광자원으로 육성하는 ‘관광운하’ 계획을 추진하겠다는 문화관광부는 운하가 뻗어가며 도미노처럼 훼손될 수밖에 없는 지역 주민의 살림과 문화유산 그리고 생태에는 질끈 눈을 감고, 이미 대부분 타지 부동산자본의 소유인 이유로 주민의 경제적 이익마저 보장해주지 못하는 개발 사업에 손을 들었다. 문화유산 실태 조사 시간의 문제나 조사만해도 수천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 그리고 실질적인 관광산업의 발전이나 보편적인 관광에 대한 접근권 또한 무시됐다. 특히, 관광운하 공약은 관광산업 육성을 취지로 발표됐으나 공약 내용을 뜯어보면 민생형 다목적 담수호가 많은 내륙 물길과 조우할 수 없는 크루즈관광, 적자산업인 컨벤션 지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생태 파괴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 정책임이 불을 보듯 뻔 한 상황에서 결국 개발이익을 취할 수 있는 건설자본만 배불릴 공약이 문화정책으로 버젓이 논의된 것이다.

노무현정부 내내 정쟁의 도마위를 오가던 신문방송겸영의 문제 또한 결국 공론의 장 지원을 통한 공공영역 활성화란 관점에서 다뤄지지 못하고 미디어기업의 독점 강화를 추인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 금지 원칙이 깨질 경우 독과점 신문의 방송시장 진출에 따른 여론 독점의 문제, 2006년 헌법재판소의 신문사의 방송 겸영 금지에 대해 내린 합헌 결정, 미디어다양성과 공익성이 전혀 고려되지 못한 것이다. 언론재단과 신문발전위원회와 신문유통원을 신문재단으로 통합하는 안 역시 미디어 각 분야의 자율적 발전보다는 편의주의적으로 접근됐다.

창작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으로는 단견이기도 하거니와 실제적 효과가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저작권 보호를 위한 온라인상 불법 저작물 삭제명령, 불법 P2P 서비스업체 과태료 부과 등 행정조치 강화, ‘특별사법경찰권’ 도입 및 불법저작물 추적 시스템 구축 등 대책은 이용자의 접근권, 정보인권의 문제를 여전히 배제한 채 거론됐다. 일부 저작권자 그것도 거대문화자본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경제적 이익은 강화하겠지만 국내 문화산업 환경과 이용자의 권리를 크게 훼손할 수밖에 없으며 문화산업 더 나아가 문화 환경의 후퇴를 노정할 수밖에 없는 문제 역시 논의되지 못했다. 심지어 저작권보호를 위해서는 창작자의 권리를 운운하면서도 창작 당사자들이 꾸준히 외쳐왔던 그리고 당선자 공약에는 포함됐던 예술인공제회 지원 정책은 어떤 이유인지 슬쩍 빠졌는데, 전반적으로 문화정책에 대한 입체적 접근도 공공성도 찾아 볼 수 없다.

당인리 화력 발전소의 ‘문화창작발전소’ 전환, 박물관 및 미술관 무료 이용, 공공 체육시설 주야간 개방 확대, 공공자금 지원 학교체육시설 개방, 스포츠클럽 활성화와 같은 국민의 문화적 권리를 보편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공공정책이 함께 논의되기는 하였으나 공공문화정책에 대해 단편적인 아이디어 수준으로 접근했던 당선자의 공약을 베끼는 수준 이상의 진전은 보이지 못했다.

결국 이번 인수위 업무보고는 문화권이라든가, 민주주의 같은 문화사회를 위한 기본적 권리는 일체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정부 인수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보기엔 낙제 수준이거니와 정치적 욕망만이 난무했다. 우리는 인수위가 정녕 공공정책을 논하고자 한다면, 문화적 공공성과 다양성의 풍요로움 속에서 모든 이가 문화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문화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정치적 욕망에 사로잡힌 개발주의와 독점을 문화정책이라 용인할 수 없으며, 문화적 권리 강화를 위한 정책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2008. 1. 9
문화연대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