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8주 동안이나 방송된 남자의 자격 합창단의 대단원을 마친 그들이 다음 주제로 초심으로 돌아가자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주제 선정, 적절한 접근 방법이었습니다. 부담이 컸던 장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그때의 감흥과 박수소리가 여전히 참가자들에게나 시청자들에게나 확연하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은 괜한 합창단 시즌2의 군불을 지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의 영광에 젖어 같은 것을 반복하거나 의미 없는 회상으로 분량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없었던 일처럼 깔끔하게 성공을 잊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박수칠 때 떠나라는 격언은 진부하지만 확실히 되새겨야 할 힘을 가지고 있어요.
50줄의 원로 코미디언 이경규와 큰형님 뻘도 훨씬 넘은 왕년의 스타 김국진, 콩트 개그를 졸업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윤석이 개그콘서트 추석특집 편에 한 꼭지를 맡아 도전한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다니며 열악하지만 자유로운 독립영화 촬영에 합류한 김성민의 모습도 마찬가지였구요. 과거에 거쳐 왔던 길이지만 이젠 너무 커버려서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뒤뚱거리는 멤버들의 어색함은 색다른 즐거움이었어요. 물론 중간 중간 넬라 판타지아를 흥얼거리던 이들의 잔상은 아쉬웠지만 그들 역시도 또 다른 멋진 에피소드로 대체해 나가겠죠.
하지만 정작 이런 초심 돌아가기 프로젝트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부분은 아저씨들의 좌충우돌 초심 찾기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오랜 시간동안 박칼린과 합창단에게 의지해왔던 남자의 자격이 기존 멤버들의 매력과 캐릭터에 집중하는 법을 잊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번 주 역시도 그 주인공은 남격 멤버들이 아니었거든요. 이번 주 초심 특집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 고달프고 힘겨운 과정을 감내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자신을 짜내는 개콘의 개그맨들, 그리고 별다른 장비도, 넉넉한 제작비 없이도 묵묵하게 주어진 환경에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젊은 영화인들이었어요.
특히나 이젠 공개 코미디의 마지막 보루로 남은 개그콘서트의 까마득한 후배들의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찰나의 순발력과 개인의 캐릭터로 승부를 보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에도 이들은 여전히 한결같이 선배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매주 반복되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고통과 스트레스와 함께 같은 코너지기들과 함께 합을 짜고 호흡을 맞추며, 대본을 만들고 수정하고 다시 만들어가는 이들의 노력. 사람을 웃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아저씨 선배들의 어색함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었으니까요.
그렇기에 MBC를 넘어 이제 SBS의 웃찾사까지 폐지된 지금 김병만은 개그콘서트의 상징을 넘어 공개코미디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주일 내내 프로그램 하나에 매진하고, 그럼에도 버라이어티에서 활약하는 동료들에 비해 훨씬 더 경제적으로 열악한 대우, 아무리 인기를 끌고 주목을 받아도 순간이면 잊혀지는 잔혹한 경쟁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의 열망의 정점에 그가 서있는 것이죠. 김병만의 달인은 가장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엄청난 노력과 준비가 만든 웃음의 가치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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