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가 북한 당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미신고 미사일 운용기지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보수언론도 호응에 나섰다. 청와대가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보수언론은 "청와대가 북한 대변인 노릇을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12일(현지시간) 북한 당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약 20곳의 '미신고(undeclared ) 미사일 운용 기지' 중 13곳의 위치를 확인했다며 이 중 삭간몰 미사일 기지를 분석한 내용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뉴욕타임스 보도에 대해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북한이 미사일 기지들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부정확하다"며 "우리는 논의된 기지들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고, 새로운 것은 없고 비정상적인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적인 가짜뉴스"라며 "만일 상황이 나빠지면 내가 가장 먼저 알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국무부도 뉴욕타임스 보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헤더 나워트 대변인은 "핵 실험이 되고 북한에는 3명의 미국인 억류자가 있었다"며 "그래도 우리는 북미 관계에 있어 먼 길을 걸어왔다"고 밝혔다. 나워트 대변인은 "우리는 그것을 진전으로 보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여러분에게 우리가 큰 진전을 이뤘다고 말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의 입장은 청와대의 반박과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13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CSIS 보고서의 출처는 상업용 위성인데 한미 정보 당국은 군사용 위성으로 훨씬 더 상세하게 파악하고 면밀히 주시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에 대해서도 "북한이 이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고, 해당 기지를 폐기하는 게 의무조항인 어떤 협정도 맺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신고를 해야 할 어떤 협약도, 협상도 현재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신고를 받을 주체도 없다"고 말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오히려 이런 미사일 기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협상을 조기에 성사시켜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며 "북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 북미대화를 비롯해 협상과 대화의 필요성을 부각하는 사실관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도 보수언론은 북한 미사일 기지를 부각하며 위기 분위기 조성에 여념이 없다. 14일자 조선일보는 CSIS 보고서 등을 인용해 북한의 미사일 기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뤘다. 조선일보는 4면에 <北 탄도미사일 기자 3개 벨트에 총 13곳>, <靑 "삭간몰 기지, 北의 기만 아니다"…전문가 "北 대변하나"> 기사를 게재했고, 5면에는 <"北엔 동창리·영변·풍계리보다 삭간몰 같은 더 큰 위협이 존재">, <北, 우리 NLL 인정했다더니…"서해분계선 목숨 걸고 사수"> 기사를 배치했다.

▲14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김의겸 대변인 발언까지 문제 삼으며 '북한 대변인 행태'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정권의 北 대변인 행태 도 넘는 것 아닌가> 사설에서 김의겸 대변인 브리핑 소식을 전하며 "북한 대변인도 이와 똑같이 말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미국 폭스 뉴스 인터뷰서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이 폐기되면 북한이 다시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도발은 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며 "우리 정부도 북한 미사일 기지를 알고 있었다면서 문 대통령은 미사일 위협이 모두 사라진 것처럼 말한 것인가. 북한이 속인 것이 아니라면 우리 대통령이 속인 것이 된다"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뉴욕타임스는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황해도 황주 삭간몰 비밀 기지는 서울에서 불과 135km 떨어져 있다고 우려했다"며 "청와대 대변인은 '삭간몰 기지 미사일은 단거리, 스커드 미사일로 대륙간탄도미사일과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미국 사람들에게 날아가는 미사일이 걱정이지 한국 사람에게 날아오는 미사일은 상관없다는 얘기로 들린다"며 "한국 사람은 북핵 미사일의 위협을 받고 살아도 되나"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이게 청와대 대변인 입에서 나와도 되는 말인가"라며 "북 미사일 기지 운용이 드러났는데 그 공격 대상인 한국의 정부가 발 벗고 나서서 변호해 주고 있으니 이 광경을 국제사회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겠나"라고 우려했다.

▲14일자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3면에 <친트럼프 매체도 "김정은에 속았다"…美야당 "北과 대화 말라">, <南 겨냥한 미사일 기지에도 '北 두둔'>, <지하에 숨긴 우라늄 농축시설도 최소 10여곳> 기사를 배치했다.

동아일보도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김의겸 대변인을 비난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비핵화 팽개친 미사일 기지…그래도 北 대변하는 靑 대변인> 사설에서 "미국 싱크탱크와 언론의 북한 관련 발표·보도 내용을 청와대 대변인이 나서서, 그것도 북한이 내놓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의 강한 톤으로 반박한 것도 모양이 이상하지만, 그 내용도 논리적으로 궁색하다"고 꼬집었다.

동아일보는 "북한이 미사일 기지 폐쇄에 관한 공개 약속이나 협정을 맺은 적이 없음을 몰라서 미 전문가들과 언론이 문제를 삼는 게 아니다"라며 "비밀 미사일 기지 운용 사실이 중요하고 우려스러운 것은 김정은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약속했다는 대전제가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미사일 및 핵물질의 추가 생산은 당연히 중단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4일자 한겨레 사설.

반면 한겨레는 뉴욕타임스 보도가 대북 정책 신뢰도를 깎아내리기 위한 것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한겨레는 <'대북 강경론' 부추기는 부정확한 보도, 우려스럽다> 사설에서 "이제 막 미국의 중간선거가 끝난 시점에 북-미 핵협상은 양쪽이 힘겨루기를 하는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며 "이런 민감한 시기에 분명한 객관적 근거도 없이 협상에 찬물을 끼얹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는 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사실 관계를 살펴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사일 기지의 폐기를 약속한 적이 없다는 게 '팩트'"라며 "북한 미사일 문제는 앞으로 북-미 협상 과정에서 논의되고 해결될 사안이긴 하나, 이걸 두고 '북한이 사기 쳤다'고 보도하는 건 왜곡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더 큰 문제는 국내 보수언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문재인 정부 비난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심지어 청와대 대변인이 <뉴욕타임스> 보도에 관해 사실 확인 차원의 설명을 하자, 일부 신문은 '북한을 대변하고 있다'고 공격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미국발 기사의 사실 관계를 따지기보다 정부 비판에 활용하려는 건, 정치 행위일 뿐 언론의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과거 미국 연구기관이나 언론이 대북 강경론을 부추기는 보고서를 내거나 보도를 하면, 이를 국내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정부 대북정책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소재로 이용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며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주거니 받거니 파장을 키우려는 대북 강경론 커넥션을 새삼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14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비핵화 협상을 망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향신문은 <뜬금없는 북 미사일 기지 논란, 비핵화협상 망칠 셈인가> 사설에서 "CSIS 보고서는 한국 당국이 즉각 부인할 만큼 오류투성이"라며 "문제의 삭간몰 기지는 2016년 3월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한 곳으로 군당국이 이미 정밀 감시하고 있는 대상이다. 민간에서 몰랐을 뿐 새로 밝혀진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경향신문은 "위성사진을 찍은 3월 29일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전"이라며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이 앞에서는 비핵화 협상에 응하면서 뒤로 핵·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과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협상하면서 왜 미사일 기지를 운용하느냐고 북한에 따지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며 "북·미 간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북한에만 무장해제하라는 주장이야말로 억지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북·미 간 협상에는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며 "북한도 비해화 의지를 의심받을 행동을 해서는 안 되지만, 미국도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행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1차 북핵 제네바 합의가 깨어진 데는 미국의 약속 파기도 한 요인이었다"며 "진정 비핵화를 바란다면 기싸움보다 북한의 선제 조치에 부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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