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민주노총은 대죄인이 된 것 같다. ‘민중총궐기’ 시절 분위기를 연상케 할 정도이다. 보수언론의 시각에서 민주노총은 총파업과 같은 극단적 투쟁으로 일관하면서 공공기관 채용 비리 등을 주도해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집단이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언론도 이들을 정규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외면하며 개혁의 걸림돌이 되는 이익집단처럼 묘사하면서 민주노총은 포위된 것 같은 상태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은 정부 여당이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강하게 불을 붙이면서 악화되고 있다.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두고 더 이상 약자가 아니므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한 데 이어,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극단적 언사를 동원한 비난을 내놓은 것이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12일 민주노총은 항상 폭력적인 방식만 써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만일 미국에서 점거를 하고 감금을 시켰다면 테러로 규정됐을 것이라는, 태극기 집회에서나 나올 법한 말들을 쏟아 내기도 했다.

정부 여당이 민주노총 고립의 한 축을 완성하면서 튄 불똥은 ‘광주형 일자리’로 옮겨 붙는 모양새다. 13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고, 홍영표 원내대표도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협상이 타결될 경우 광주광역시에 공공주택 및 편의시설 등 SOC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날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특위와 경제사회노동위가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광주형 일자리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 광주형 일자리는 사회적 합의로 고용과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는 모델로 상당한 기대를 받고 있는 듯 보인다. 노동자들에게 업계 절반 수준의 임금을 주는 대신 기업은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자의 감소한 임금은 정부가 주거 문화 복지 보육시설 등 지원을 통해 보전하는 모델을 도입하자는 게 핵심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고임금으로 인한 경직적인 고용 상황을 탈피하고, 노동자는 임금 외의 수단으로 사회적 안전망의 수혜자가 돼 생산성을 향상시키자는 얘기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민주노총이 반대하고 있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한겨레나 경향신문 같은 언론들이 나서서 민주노총이 고집을 꺾어야 한다는 취지의 사설을 쓰고 칼럼을 지면에 게재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혹은 노동운동세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에 왜 반대하고 있는지에 주목하는 시선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 수 있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광주형 일자리 합의 반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광주시와 현대차가 신설하기로 한 합작법인에서 노동자들이 받게 될 임금수준이 다른 정규직들에 대한 임금하향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미 기존 자동차 시장이 공급 과잉인 상태에서 광주에서 생산량을 확보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생산 라인을 축소해 해고가 일어나는 부정적인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하향이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눠야 하고, 새롭게 신설되는 합작법인에선 전기차 등 친환경차를 생산하도록 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 대목에서는 각론이 아니라 이들 반응의 배경에 결국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문제가 깔려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고 정부가 약속한 사회안전망 강화는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인데, 그럴 경우 결국 임금 수준 하향을 감수한 노동자만 피해를 뒤집어쓴다는 인식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는 노동운동 세력에게 있어선 트라우마적 기억이다. 외환위기 직후 1998년 1월 발족한 노사정위에서 노동계는 정리해고 및 파견근로제에 대한 대가로 실업대책, 정리해고에 대한 보상 및 재벌개혁 등을 요구했으나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같은 해 6월 2기 노사정위 역시 앞서 합의에 대한 불신과 재계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파국으로 끝났다. 오히려 민주노총이 2기 노사정위에 참여를 결정하고 총파업이 철회되면서 정리해고 문제로 파업을 벌이던 현대차노조는 고립됐다. 이후 김대중 정권은 논의에서 노동계를 완전히 배제했다. 민주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 참가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에도 이런 역사적 경험이 작용할 것이다.

그간 여러 경제 사회적 조건이 변화했고 여전히 사회적 타협을 이루는 것은 앞으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중요한 과제이므로 민주노총도 사회적 합의 구조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본에 기울어져 있는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정권이 보여주면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예를 들면 노동계가 광주형 일자리에 합의해주면 이 성과가 각 지역으로 퍼져 이러저러한 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로 접근하는 건 효용이 없다는 거다. 실제로 정권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선제적으로 구조적 모순을 풀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이를 근거로 노동계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간 익히 지적해온 것처럼 최저임금 인상 외에는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조치가 취해진 바는 없다. 오히려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에 이어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로 노동계와의 갈등은 확대되고 있다. 앞서 광주형 일자리의 문제도 사회적 합의 구조를 실효적으로 만들어 가자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합작법인을 빨리 만들고 이를 통해 지역 SOC 투자를 유치하자는 수준에 논의가 머물러 있는 듯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을 특별히 겨냥해 매도하는 정권 핵심부의 의도는 무엇인가? 국가적 중대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그저 감정적 분풀이를 하자는 건 아닐 것이다. 결국 민주노총을 설득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방법을 앞으로도 모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여론을 동원한 돌파를 시도하는 걸로 볼 수밖에 없다. 노동계와의 관계개선은 포기할 수밖에 없으니 보수세력의 ‘운동권 프레임’을 벗어나는 효과라도 건지자는 것이다. 이것은 정권이 어떤 악독한 의도를 가졌다기보다는 개혁을 향한 의지와 능력의 문제일 것이다.

정권이 이런 식으로 밀어 붙이는 광주형 일자리가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광주형 일자리 논란의 결말보다 더 문제인 것은 현재 노동운동의 상태이다. 정권 핵심 인사들이 기업에 유리한 정책의 정당성만을 피력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민주노총의 총파업 등 ‘투쟁’이 충분히 위력적이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총파업의 위력에 대해서는 민주노총 핵심 간부들도 냉소적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노동운동이 무력한 것은 더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전술을 동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더 넓고 단단한 사회적 연대를 스스로 조직해내는 데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민주노총이든 어떤 노동운동이든 전체 노동자의 대표를 자처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전체 노동자의 대표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 진보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변화를 실제로 추동해내는 기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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