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 조합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보수세력은 청와대가 ‘마이웨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방점을 청와대와 내각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느냐에 맞춘다면 그런 결론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누가 주도권을 발휘하느냐를 떠나서 실제로 이 조합으로 하려는 게 무엇인지에 있다.

보수세력의 해석은 이런 식이다. 김수현 정책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히 신임하는 사람이고 홍남기 내정자는 리더십을 내세울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김수현 정책실장을 통해 청와대가 정책적 주도권을 행사하고 홍남기 내정자는 이를 충실히 이행하는 ‘예스맨’에 불과한 인사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이념적으로 경직돼 있고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좌편향적 정책을 추진할 것이므로 여전히 이상주의적 정책 추진이 계속될 거라는 얘기다.

놀랍게도 이런 진단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홍남기 내정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비교하면 소신이 강하지 않은 사람처럼 비쳐져 왔다. 그러다보니 내정의 배경에서부터 의구심이 생긴다.

청와대는 홍남기 내정자 인사에 대해 이낙연 국무총리의 천거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홍남기 내정자가 국무조정실장을 맡았다는 점에서 그럴듯한 설명으로 들리지만, 과연 이낙연 총리가 추천하면 경제부총리가 되고 추천을 안 하면 안 되는 구조인지는 의문이다. 지난 5일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홍남기 내정자에 대해 “ 거의 이름을 들은 적이 없는 분”이라면서 “변양균 씨가 참여정부의 정책실장을 할 때 그때 같이 호흡을 맞췄던 공무원 중의 한 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이건 아니건 변양균 씨와의 커넥션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홍남기 내정자의 캐릭터에 대한 그간 언론 보도는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의 관계 등을 주로 언급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물론 변양균 전 정책실장이 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막후에서 좌우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변양균 라인’이라는 표현은 변양균 전 정책실장이 청와대와 기획예산처에서 힘을 발휘하던 시절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관료들을 일컫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경제기획원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한 홍남기 내정자나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 뿐만이 아니라 김동연 부총리도 이 분류에 들어간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의 경우 재무부 출신이긴 하지만 재정경제원 이후 기획예산처에서 근무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연관관계가 있다. 이들의 생각이 모든 사안에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근본적인 철학에서는 경제관료 중에서도 특정한 성향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공유하는 바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윤종원 경제수석의 역할이다. 그간 김수현 정책실장이 사회수석으로 맡아왔던 부동산 정책 등은 전통적인 분류대로 경제수석이 맡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또 윤종원 경제수석은 홍남기 내정자보다 행시기수가 높고 재무부와 기획예산처를 모두 거쳤기 때문에 관료 내부의 논리로 봐도 조직 장악 등에서 유리한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윤종원 경제수석을 발탁할 때 “장악력이 강하시다면서요”라고 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오히려 윤종원 경제수석이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맡고 있는 영역에서도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는데, 어쨌든 이 점도 향후의 경제정책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력이 더 강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이 11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보수언론은 과거 시민단체 활동 이력이 있는 김수현 정책실장이 윤종원 경제수석의 상관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해 관료 논리를 좌편향적 정책으로 대체할 거라고 분석하고 있는데 크게 두 가지 면에서 과연 그럴지 의문이다.

첫째는 김수현 정책실장 자체가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대로 좌편향적 인사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김수현 정책실장이 추진한 부동산 정책은 과열을 방지하고 다주택자의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하는 것 정도에 그칠 뿐이다. 소유 문제를 건드리거나 주거체계 전반을 공공주택 위주로 재편한다는 등의 비전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더군다나 종부세 인상 등 세금 문제에선 ‘참여정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일했던 일부 인사들은 김수현 정책실장이 ‘우클릭’ 했다는 평가까지 내놓는 상황이다.

둘째는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라는 조합을 포기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바로 이런 주장이 세부 내용에 있어서는 얼마든지 정책적 후퇴를 정당화하는 게 현실이란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규제완화를 말하고 정부 여당이 탄력근로제 확대 등을 밀어 붙이는 상황에서 김수현 정책실장이 “큰 틀의 방향에 대해선 전혀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말하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이겠는가.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오히려 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는 관료 집단의 논리가 정권의 최상층부와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게 사실이고 따라서 더 충실하게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대목도 있다. 예를 들면 김연명 중앙대 교수의 사회수석 기용이 그렇다. 김연명 신임 사회수석은 ‘분배 강화’를 책임지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간의 이력을 볼 때 실제로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다루는 문제에 역할이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김연명 교수는 보험료를 크게 인상하지 않으면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 주장을 해왔는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고한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전면재검토’를 지시한 일을 떠올리게 한다.

보수언론은 청와대가 국민연금 개혁안이 보고되기 전 언론에 보도된 일 때문에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들이 감찰을 받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이 사건의 이면에는 청와대가 복지부동하는 관료 조직 장악을 시도한다는 맥락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관료를 장악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를 따져야 하는데, 김연명 사회수석의 등장을 ‘해답’으로 볼 수 있다. 즉, 복지제도를 둘러싼 전반적 철학을 바꾸고 보다 전면적이고 종합적인 복지 강화를 추구하기 보다는 국민연금 강화 등 일부 제도를 통해 ‘면피’를 하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들로 보면 전제부터 잘못된 보수세력의 주장들은 오히려 정권의 ‘우클릭’을 정당화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근본적 개혁을 가로막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보수세력과 관료, 청와대 참모진이 오월동주 하고 있는 결과인 셈이다. 대안을 말하고 제시하는 세력이 힘을 발휘해서 개혁을 지지하는 편에 서서 정권의 팔을 잡아 당겨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자처하는 세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이대로 끌려 다니다가 중요한 시기를 다 놓쳐 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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