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김동연 경제부총리 교체가 공식화됐다. 청와대 관계자가 이르면 9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교체 발표를 예고했다는 것이다. 후임은 애초의 예상대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유력하다고 한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정책적 색채가 김동연 부총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 결정 시점은 연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들 봤었는데 앞당겨졌다. 결국 정책적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뭔가 정무적 판단이 있었다는 뜻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이밍이 좋지 않다. 보수야당이 경제팀 교체를 요구해왔다는 점에서 일부 예산에서의 ‘딜’이 성사될 가능성을 헤아리는 시각도 있지만, 김동연 부총리에 대한 ‘갈라치기’가 이미 시작된 데다 보수야당의 요구 또한 ‘인사 돌려막기’가 아닌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전환된 상태라는 점에서 이후 정국이 청와대에 유리하게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교체 논의를 국정감사 이전에 마무리 짓거나 아니면 연말까지 김동연 부총리 체제로 갔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뻔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제부총리 교체를 공식화 한 청와대의 속내가 따로 있을 수밖에 없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7일과 8일 국회 예결산특위의 상황이다. 7일 김동연 부총리가 지금 경제 상황이 위기라는 지적에 대해 “동의하지 않지만 어떻게 보면 경제에 관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인지도 모르겠다”고 발언하면서 논란이 확대됐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8일 김동연 부총리의 이 발언을 청와대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했고 김동연 부총리와 청와대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까지 표현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등은 이 맥락을 확대재생산했고, 정진석 의원의 경우 페이스북을 통해 2016년 김동연 부총리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려고 했었다는 사실까지 밝혔다.

이날 예결산특위에서 같은 논란이 반복되자 김동연 부총리는 일부 언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며 기사를 쓴다며 자신의 메시지가 정치권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제정책이 과도한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면서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얘기라는 것이다. 이런 현실인식은 대개의 경제 관료들이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해명 자체에 의문을 가질 일은 아닌 것 같다.

문제는 김동연 부총리의 행보를 ‘맥락’으로 해석할 때 석연찮은 신호가 감지돼 왔다는 것이다. 김동연 부총리가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 등을 놓고 처음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불협화음을 낸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팀 내의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신경써줄 것을 반복해서 주문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의 기안자로 알려져 있고 학자 출신인 홍장표 당시 경제수석을 관료 출신인 윤종원 현 경제수석으로 교체했고 혁신성장의 맥락 안에 있는 규제완화 등을 직접 밀어 붙이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김동연 부총리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책이 논란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최대한 관료들의 입장을 맞춰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김동연 부총리는 장하성 정책실장 등과 정책적 견해를 달리하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했다. 이미 김동연 부총리가 먼저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청와대가 김동연 부총리를 경질하기 어려운 조건이 형성됐다. 문제의 핵심이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의 충돌이 돼버리면서 둘 다 경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그러나 국정감사와 예산안 처리를 앞둔 상황에서는 두 사람 중 누구라도 교체를 결정하는 것 역시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김동연 부총리의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 발언이 도화선이 되면서 그 ‘부담스러운 일’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인사들은 교체설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김동연 부총리의 정치 관련 발언이 늘었다고 말한다. 7일 예결산특위에서 이헌재 전 부총리의 ‘경제는 정치다’란 책 제목을 언급한 것도 그렇고 최근 모 경제 관련 포럼에서 비슷한 접근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 역시 그렇다. 이날 김동연 부총리는 예결위원장이 주최한 예결위원과 국무위원 오찬에 참석한 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산책을 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최근 한미관계를 포함한 대외 환경 변화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썼다. 상대가 외교부 장관이었다는 점에서 “속 깊은 이야기”의 대부분이 정치적 문제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란 짐작을 하기 어렵지 않다.

교체를 앞둔 경제부총리가 여러 정치적 문제 때문에 경제 정책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식의 이야기를 계속 흘리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단지 ‘정치권을 향한 쓴소리’ 정도로 보기엔 심상찮은 맥락이 있다. 보도에 의하면 김동연 부총리는 8일 국회 예결산특위에서 사실상 교체를 앞둔 마지막 발언을 하면서 “국회에서 또 뵐 거다, 나중에”라고 했다고 한다. 후임자가 지명되더라도 거의 한 달 가까운 기간이 소요될 걸로 보이는 인사청문회 기간 등을 고려하면 여전히 예산안 관련 마무리는 본인이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보이지만, 앞서의 맥락을 더하면 ‘여운’이 남는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경제 관료로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향후에 정치권에서 해결해보겠다는 ‘소신표명’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다.

김동연 부총리가 자신의 공직인생을 경제부총리에서 마무리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지는 오래됐다. 장하성 정책실장과의 충돌이 처음 불거졌을 때 정부 여당 내 일각에서 나중에 보수야당 공천을 받는 것 아니냐는 설이 이미 나왔다. 그러므로 먼저 비례대표 영입론을 띄워야 한다는 설도 있었다. 더 멀리 가자면 김동연 부총리가 2014년 국무조정실장을 그만 둘 당시에 이미 정치권 진출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 상고를 다니다 은행에 입사한 후 야간 대학을 다니다 행시에 합격한 입지전적의 인물이라는 ‘스토리’가 있는데다, 국무조정실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경제 정책에 국한되지 않는 광범위한 사안에 의견을 밝혀온 점 등에서 그렇다. 이런 사람이 ‘소신’을 내세우며 굳이 ‘경질’되는 모양새를 만들고 있다. 그러니 여당은 경계하고 보수야당은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동연 부총리라는 카드는 언젠가 터질 폭탄(?)이었는지도 모른다. 청와대는 그 폭탄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도 굳이 안고 여기까지 온 셈이다. 물론 처음부터 ‘제 식구’가 아니란 이유로 편협하게 대할 일은 아니었고, 또 한 번 선택한 사람을 끝까지 믿어보자는 순진한 생각이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김동연 부총리의 캐릭터에 정권이 휘둘린 모양새가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때문에 여기서 한 번 더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애초에 정권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악세서리 개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개혁을 책임지고 추진할 사람을 경제정책의 사령탑으로 선택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언론이 유력하게 보는 홍남기-김수현 체제는 사람이 바뀌었을지 몰라도 정권 친화적 관료와 불충분한 개혁이 공존하는 구도는 '그대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때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계기를 만들 적기일 수 있지 않을까? 기왕 이 시기에 경제팀 교체를 논해야 한다면 식상한 조합이 아닌 파격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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