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국회 운영위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출석하자 또 난타전이 벌어졌다. 임종석 비서실장의 비무장지대 시찰 문제가 ‘2인자론’이라는 프레임으로 재론된 것이다. 보수야당의 의도에 대해선 이미 다룬 바 있다. 첫 번째는 임종석 비서실장이 학생운동권 출신이라는 점에서 ‘운동권 정부론’의 대상으로 다루기 쉽다는 거고, 두 번째는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야당들이 각자 처한 자기 사정의 문제이다.

언론 보도를 모아보면 전당대회와 정계개편 시즌을 앞둔 자유한국당이 처한 딜레마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는 분열 요인이고,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은 단결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두 가지 모두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는 단적으로 말해 단결이나 혁신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접근해서 어느 한쪽을 택하더라도 확실한 성과가 보장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친박계는 다가오는 전당대회에서 비박계가 당권을 접수할 경우 자신들이 공천을 받지 못할 확률이 크다는 점에서 탈당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는 최근 자유한국당 핵심 인사들이 이른바 ‘태극기 부대’ 포용론을 펴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반면 친박계의 이탈까지 감수하면서 혁신을 추진해봐야 얻을 것은 많지 않다. 국민의당 출신들이 버티고 있는 한 바른미래당과의 당대당 통합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바른정당 출신들 일부만을 대상으로 ‘소통합’을 이룬다고 해도 대단한 성과로 보긴 어렵고 오히려 잃는 게 더 많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친박계가 탈당론을 꺼낼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있지 않을까 한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차기 대권주자라는 점도 ‘집중포화’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으로선 임종석 비서실장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수정치 역시 대권주자를 키워야 한다는 당위를 보수정치 내부에 호소할 수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전당대회 출마 준비에 사실상 돌입했고 이를 위해 극우 개신교 일부가 ‘아스팔트 우파’들과 다시 행동에 나서는 것에도 이런 맥락이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 내 일부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영입에 공을 들이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임종석 비서실장의 선글라스에 집착하는 보수정치의 이런 저런 의도를 논하는 것을 넘어 사안 자체를 다룰 필요도 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남북공동선언 이행 추진위원장으로서 주요 장차관급 인사들과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것은 이례적 일정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례적’이라는 걸 언제나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평가해볼 필요는 있다.

예를 들어 그간 제기돼 온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에 비추어 본다면 어떨까? 임종석 비서실장 문제가 불필요하게 증폭된 것에는 청와대가 권한을 나누기보다는 독점해왔다는 기존의 인식 또한 한몫했다. 보수에서 진보를 넘나드는 전문가 및 평론가들이 지금까지 이 문제를 주로 지적하면서 내각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거나 야당과 협치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이런 비판과 관련해서는 임종석 비서실장의 처신보다, 최근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시교체가 기정사실화된 것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언론은 두 사람의 대립구도를 올해 지방선거를 전후한 시점부터 적극적으로 보도해왔다. 이 때문에 두 사람 모두 교체하기 어려운 조건이 형성됐다.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이 직을 유지하느냐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본인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서로 적대적 공생을 하게 된 셈이다. 때문에 올해 예산국회 국면을 지날 때까지 두 사람의 교체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아직 예산 문제를 마무리 하지 못한 시점에 이미 두 사람 교체는 확정적인 것이 됐다.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이 각각 중요 자리에서 고별사에 준하는 발언을 하고 일부 사의 표명 보도 등의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언론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과 김수현 사회수석이라는 후임자 관련 보도까지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예산을 다뤄야 하는 시점에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의 힘을 빼도 되는 것일까? 정권의 이러한 대응은 실제 예산 정국을 총괄하는 ‘머리’가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보수언론은 ‘왕수석’이라는 클리셰적인 별명을 붙여가며 김수현 사회수석을 지목하고 있다. 졸지에 김수현 수석은 홍장표 전 경제수석과 장하성 정책실장에 이어 비현실적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악의 근원이 되어 버렸다.

이런 해석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이에 대해선 이 정권에 친화적 성향을 가진 일부 인사들이 김수현 수석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첫째로 김수현 수석이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였던 부동산 대책이나 교육 정책 등 문제에서 모자람이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로 거시경제를 총괄해야 하는 정책실장을 맡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김수현 수석이 장하성 정책실장의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의 전폭적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후사정을 앞서의 ‘청와대 정부’에 대한 비판과 이어보면 어떨까? 청와대가 국정을 운영하는 기본 인식은 기득권 내에서 여전히 자신들이 소수파의 위치에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듯 하다. 관료조직이나 보수야당에 국정 권한을 넘길 경우 소수파인 자신들의 노선을 관철하는 것에 어려움이 따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별로 이룬 것도 없이 대통령 임기를 마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믿을 만한’ 사람들 위주로 정권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청와대가 실제 소수파적 개혁을 밀어 붙이는 상황 속에 있다면 지금 상황에 대한 형식적 비판은 있을 수 있어도 정치적 불가피성은 인정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개혁을 밀어 붙이는 힘은 약해져가고 관료 의존은 심화되고 있으며 소수파적 개혁론을 다수파의 통치원리가 대신하고 있다.

최근 통계지표 등에 의한 이런 저런 경제 문제가 제기되고 이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이 정권을 향해 ‘정책적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고언도 내놓았다고 하는데, 문제는 청와대가 잘못된 무언가를 추진해서라기보다는 앞서의 문제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난국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장기집권론은 이런 상황을 정당화 하고 있다.

적어도 이런 상황을 납득할 수 있으려면 정권의 개혁에 대한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청와대 참모진 개편이 예정돼있다면 기준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 개혁적 과제에 대한 동의여부를 우선해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 관료가 문제라면 조직을 장악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선글라스 착용과 같은 지엽적 문제가 ‘보여주기’라는 입씨름의 대상이 되는 배경에도 이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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