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물에 아무리 칼을 그어 봐도 물을 벨 수 없는 것처럼, 부부관계에서는 싸움이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뜻의 속담이다. 하지만 ‘아빠를 사형시켜 달라’는 청원으로 불거진 이번 강서구 주차장 세 자매 모녀 살인사건만 보더라도, 전혀 그렇지 않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집계해도, 최소 2.4일에 여성 한 명이 살해됐거나 살인미수 범죄를 경험했다는 등의 통계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정 폭력이 비일비재하고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현실인데도 왜 부부싸움을 물 베기라고 비유해 왔을까? 이는 아내가 남편의 폭력에도 무력한 ‘물’ 같은 존재가 되도록 강요받는 현실을 함축한다.

우선 정부는 가정폭력 기본 통계조차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사실상 가정폭력을 투명 폭력 취급하는 것이다. 실제로 가정폭력에 대한 공권력의 예방 및 처벌, 후속 조처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보호시설을 포함한 여섯 번의 이사와 10여 차례의 휴대전화 변경, 경찰 신고와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어도 결국 죽음을 맞이한 강서구 주차장 살인 피해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정도면 국가는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할뿐더러 남편의 폭력을 조장하는 셈이다.

가정폭력 통념(사진=한국양성평등진흥원 유튜브캡쳐)

여성들은 이렇게 공권력에 도움을 요청해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판단하고, 폭행한 남편이 잘못을 뉘우치다 다시 폭행하는 상황이 반복되어 무기력을 느끼고 개선 의지를 상실하게 되는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는 말에는 또 다른 중요한 조건이 전제돼 있다. 부부싸움, 즉 가정폭력은 남이 끼어들어선 안 되는 사적인 ‘집안일’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왜 ‘집안일’이 가정 폭력을 여타의 폭력과 다르게 취급하게 만들까? 질문을 바꿔 보자. 집 안과 밖을 구별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안사람, 집사람의 책임자로 불리는 ‘가부장’이다. 가정 폭력 가해자의 80%가 ‘밖’에서는 호인, 양반 소리를 듣는다거나 ‘아무리 그래도 남편(아버지)인데 신고하느냐’라는 말들도 가정폭력의 핵심이 가부장 중심의 가족주의라는 것을 뜻한다.

“가정폭력은 남성의 성 역할”이라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지적처럼, ‘가정폭력은 아내가 가족 내 성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남편이 판단할 때 남편이 임의로 수행하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처벌’이다. 남편이 성격 파탄자라거나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은 구실에 불과하다.

‘가정’은 가족을 하나의 단위이자 가부장 권력을 정점으로 하는 성별 위계를 전제하는 개념이다. 이 위계 속에서 가정의 원만한 유지에 대한 책임은 아내(어머니)에게만 부과된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이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책임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가정 > 인권’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가정이 ‘사랑, 평화, 안정, 쉼터’로 표상됨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존엄과 인권이 양립하지 못하고 튕겨 나가는 이유다. 가부장은 가정 내 아내와 자식을 한 존엄한 개인이라기보다 일종의 사유재산으로 취급한다(그래서 가정 폭력에서는 데이트 폭력에서 흔한 ‘리벤지 포르노’ 유출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내는 여자친구와 달리 완전한 소유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에 공공 인권 개념이 들어서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게다가 이러한 가정 속에서 제대로 된 존엄 경험을 하지 못하고, 힘의 논리를 학습하게 되는 아이들 문제 역시 그 자체로 아동 학대일뿐더러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10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시민사회 기자회견

가정폭력 관련 정책 및 제도들을 제대로 뜯어고쳐야 한다. 관련 기본 통계 조사를 실시하고,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을 가정 유지가 아닌 여성 인권 보장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 경찰 및 시민 대상 가정폭력 인식 개선 교육과 캠페인 실시 및 가정폭력 범죄에 반의사불벌죄 도입, 긴급임시조치·임시조치·보호명령의 강도를 높이며 쉼터에서 머물 시 생활비 및 양육비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여자는 그저 남자 잘 만나면 된다’로 말해지는,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게 만드는 성차별적 사회경제적 시스템 역시 개선돼야 한다.

‘여자와 북어는 삼 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말은 유명하다. 남성들 사이에서 여성을 내 입맛대로 대할 수 있다며 ‘삼일한’이라는 줄임말로도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말뜻은 오히려 다음과 같다. ‘남성의 권위라는 것은 삼 일에 한 번씩의 폭력으로 겨우 유지되는 초라한 것.’ 당신들(or 남성들, 아버지들)이 아무리 윽박질러도, 심지어 죽여도 베어지지 않는 진실이다. 언제까지 추한 자리를 자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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