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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와 '몰카제국'사회적 의무를 보상과 교환하려는 인식을 바꿔야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8.11.02 08:55

양심적 병역거부가 사회적 논쟁거리가 된 지 그야말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오랜 기간 이어진 많은 이들의 비판과 실천은 사법부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 오모씨의 상고심에서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 한 것이다. 대법원은 병역거부자의 처벌을 “기본권의 과도한 제한이자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했다.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해 온 사람들의 입장에선 지난 6월 헌법재판소 결정에 이은 일대쾌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차원에서 논쟁이 종결됐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인터넷 공간 등에서 이번 판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목소리들에는 누가 현역 입대를 하겠느냐는 단순한 것부터 ‘진정한 양심’을 누가 어떻게 판별하느냐는 복잡한 문제제기까지 다양한 논리가 총망라돼 있다.

다만 그간의 논쟁 덕분인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개념 자체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최소한의 공감대는 형성되는 과정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대체복무의 기간이나 업무 내용에서 쟁점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징벌’에 비할 만큼 혹독한 조건에서의 대체복무를 요구한다. 앞으로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이런 불만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숙제이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반발이 어떤 정서적 배경에서 나오는지를 되짚어봐야 할 필요도 있다. 이에 대해선 다양한 차원의 분석이 가능하지만 특히 2, 30대 젊은 남성들이 반발하는 동력은 어떤 불공평함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국방의 의무를 다했는데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실질적 책임’ 없이 일종의 무임승차를 하는 것에 불과하고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언급하였듯, 이러한 인식은 ‘외적’을 이유로 폭력을 내면화할 것을 강요하는 체제를 외면한 결과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볼 것은 국가가 강요하는 이 ‘폭력’이 어떤 ‘계서(階序)’로서 표출된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서 병역을 이행하는 사람은 폭력적 구조의 최상위에 위치하게 돼있다.

예를 들면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군대를 갈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은 물론 없다고 볼 순 없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대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태도는 당연히 ‘양심적’이란 개념이 기만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기인한다. ‘신체적 결함’은 실측된다는 점에서 대부분 거짓일 수 없다. 군필자들은 권리와 의무를 등가로 보는데, ‘신체적 결함’은 대개 권리 행사의 한계로 작용한다. 즉 현역 입영은 상대적으로 우월한, ‘정상인’에게 적용되는 것이므로 ‘뒤떨어지는 사람’이란 전제가 있다면 의무의 면제도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관된 인식이 있기 때문에 군필자들은 자신이 사회적 의무를 이행한 만큼의 권리 보장을 늘 요구한다. 군가산점을 둘러싼 지난한 논쟁 역시 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세계관에서 사회적 의무의 이행은 반드시 등가교환을 통한 보상을 전제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오늘날 다양한 영역에서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공정성에 대한 희구가 드러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의 원리이다. 즉 베푼 만큼 받아야 하고, 가져간 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현역 입영 면제’를 받았으면 ‘징벌’을 감당하라는 논리가 여기서 나온다.

1일 오전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법 관련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인식 속에서 베풀었는데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원한감정의 원인이 된다. 속내야 어떻든 많은 남성들은 병역을 이행한 경험을 “나라와 가족을 지키는 일”에 비유한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병역 이행이 국가라는 폭력적 장치에 의한 착취에 불과했다는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외로운 순간에 “베푼 만큼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속는 놈만 바보”라는 파국적 결론에 이른다. ‘뒤떨어지는 사람’도 아니면서 부당하게 병역을 면제 받은 기득권과 “사지가 멀쩡”한데도 현역 입영을 의무적으로 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분노가 히스테릭하게 표출되는 이유에도 이런 사정이 작용한다.

개별 남성의 지위와 이해관계를 둘러싼 내적 투쟁이 병역 이행 여부 등을 주요 소재로 해서 이뤄지고 있다면 외부의 주요 전선은 물화된 여성의 소유권을 둘러싼 형태로 그어진다. 위의 논리에 익숙한 남성의 입장에선 여성은 ‘정상적인 삶’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장식품이거나 성적 욕망을 채우는 음란물의 지위를 가질 뿐이다. 앞의 세계관에서 어느 남성이 병역을 이행하는 등 정상적 삶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 이 사회는 ‘여성’을 일종의 보상물로서 수여해야 한다. 여기서 종종 남녀관계는 기득권 남성이 더 좋은 상품으로서의 여성을 독점하는 불평등의 구현인 것처럼 표현된다.

위디스크 등 웹하드업체의 실소유주로 알려져 있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갑질 사건은 이 구조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이다. 양진호 회장의 상식을 뛰어넘는 기행은 돈이 만들어 낸 권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몰카제국의 황제”로 불리는 양진호 회장의 ‘돈’은 셜록과 뉴스타파가 보도했듯 대개 불법 촬영물 다운로드 수익으로부터 나왔다. 촬영자, 업로더 및 다운로더, 플랫폼을 소유한 자본가가 이심전심해 여성에 대한 직접적인 성적 착취의 먹이사슬을 구성하고 유지해온 셈이다.

놀라운 것은 여기서도 다운로더-업로더-촬영자-웹하드 또는 사이트 운영자의 순서로 된 계서논리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 사슬의 가장 하위에 위치한 다운로더는 종종 사회로부터 여성을 수여받지 못해 대리만족에 머물러야 하는 존재처럼 그려진다. 대중문화적 표현에서 음란물을 소비하는 남성을 종종 동정적 시선으로 보는 것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런 풍조가 사회문화적 기반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는 한 불법 촬영물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요원하다.

병역이든 세금이든 아니면 단지 완성된 남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든 간에 공동체적 의무 이행의 본질이 어떤 물질적 보상 유무에 있다는 인식은 단적으로 말해 냉소주의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나 아니면 오늘날의 ‘백래쉬’ 같은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선 의무 이행의 본질이 보상이 아니라 공동체 운영 자체에 있다는 점이 환기되어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이런 문제를 논하는 기회가 되어야 사회가 진보할 수 있고, 이를 위해 정치와 언론의 심층적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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