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보도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국내 미투(#metoo)운동 확산으로 관련 언론 보도는 늘었지만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대결구도에 놓거나, 사건을 자세히 묘사해 2차 피해를 유발하는 등 성폭력 사건의 본질을 벗어난 보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모니터링 결과가 나왔다. 언론사가 성폭력 사건을 전하는 콘텐츠의 사회적 영향력을 한 번 더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이를 소비하는 수용자들의 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성폭력 사건 '가십' 만드는 언론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미투운동 관련 보도가 집중된 지난 2, 3, 7월 연예오락·시사토크 프로그램, 온라인기사들에 대해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인 가십거리로 다루는 등의 문제가 속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민우회는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인 가십거리로 다루는 제목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논점 없이 가해 행위(단순 사실)만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 14개의 모니터링 도구 항목을 설정해 관련 프로그램과 온라인 보도를 살펴봤다.

여성민우회가 해당 기간동안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의 미투 관련 연예오락·시사토크 프로그램 24개, 693편을 분석한 결과 총 456건의 문제적 장면이 등장했다. 같은 기간 온라인 포털 '네이버', '다음'의 랭킹뉴스 30위까지의 미투 관련 기사에서는 전체 1058건 중 356건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사토크 프로그램의 경우 388건 중 가장 많이 발생한 문제적 항목은 '가해 행위를 자세하게 묘사한 것'(60건, 14.9%)이었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온 항목은 '성폭력을 정치적 공방으로 이용한 것'(47건, 12.2%)이었다. 다음으로는 '가해자의 업적을 부각하는 내용'(44건, 11.4%),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으로 다루는가'(34건, 8.9%)가 뒤를 이었다.

민우회는 이 중 가장 나쁜 사례로 정봉주 전 의원의 성폭력 사건을 다룬 SBS'김어준의 블랙하우스' 3월 29일자 방송을 꼽았다. SBS의 경우 문제 항목 건수 자체는 적었지만 해당 방송의 경우 가해자의 주장을 스스로 나서 검증해 주고, 방송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평가다.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경우 68건 중 가장 많이 문제로 지적된 항목은 '가해 행위를 희석시키는 용어 사용'(12건, 17.6%)이었다. '성추문', '검은 입', '나쁜 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어 '가해행위를 자세히 묘사하는 것'(11건, 16.1%), '선정적인 가십거리로 다루는 제목 사용'과 '가해자 입장 받아쓰기'(13.2%), '가해자에 대한 동정론적 태도'(7.3%)가 뒤를 이었다.

이들 연예정보 프로그램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성추문', '검은 입', '나쁜 손' 등의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피해자의 음성을 변조 없이 내보내거나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결구도를 그려놓고 가십거리로 만드는 등 성폭력 사건의 본질을 흐렸다.

온라인 기사의 경우 클릭수를 유도하기 위한 선정적인 기사제목이 특히 눈에 띈다. 여성민우회가 "선정적 기사제목 중 극히 일부"라며 밝힌 일부 미투 관련 기사 제목들을 살펴보면 <"딸 같다며 바지내린 의원님"… 국회 게시판에도 미투>(중앙일보 3월 7일), <[단독]안희정 측 "두 고소인과 성관계는 애정행위…더연과도 무관">(뉴시스 3월 16일), <"너도 아빠같은 놈에게 당해봐야" 비뚤어진 분노>(동아일보 3월 12일), <"혀가 쑥~" 미투에 민병두 의원직 사퇴…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정봉주에 이어 또 휘청>(세계일보 3월 15일), <[단독] 강의 중 '여자 X먹는 법' 소개한 국민대 교수>(국민일보 3월 16일) 등이다.

30일 서울 마포구 '국민TV 온에어' 에서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미투 관련 연예정보·시사토크 프로그램과 온라인 기사를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미디어스)

"선정적 미투 보도, 그만 보고 그만 써야"… 남성중심적·기계적 중립 언론사 조직문화 문제

이 같은 성폭력 사건 보도 행태가 권력감시와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저널리즘적 가치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언론사가 보도하기 전 한 번이라도 기사가 사회에 미칠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를 소비하는 수용자들의 태도 역시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30일 서울 합정동 '국민TV 온에어'에 열린 모니터링 결과 발표회에서 이소라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연구위원장은 "기자들이 도대체 이 기사를 왜 쓰는가,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며 "공적 지면은 일기장에 끄적이고 싶은 것을 쓰는 게 아니다. 본인이 쓰는 기사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번 쯤 생각해봐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 위원장은 여성가족부와 함께 '성폭력 사건 이렇게 보도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언론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관련 모니터링 결과를 볼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가이드라인 제작과 모니터링만 반복될 뿐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반복되는 모니터링 결과를 보며 수용자의 책임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수용자는 주어진 기사를 클릭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적인 기사, 이상한 제목을 클릭하지 않으면 기자들도 그렇게 안 쓴다"며 "문제적 보도에 수용자의 책임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사건 기사에 있어 기자와 수용자 간 얽힌 연결고리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디지털뉴스팀에서 근무하며 이 같은 현상을 목격했다는 남지원 경향신문 기자는 "제목에 '여'가 들어가냐 아니냐에 따라 클릭 수가 크게 2배는 차이가 났던 기억이 있다"며 "특히 한자 '女'가 있을 때 클릭 수가 많이 올라간다. 수용자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성중심적 언론사 조직문화도 원인으로 꼽힌다. 성폭력 사건 기사의 경우 '당사자성' 여부에 따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는데 반해 사실상 언론사의 보도방향을 결정하는 보도국 간부층이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세심한 기사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세은 교수는 "상당 수 언론사에 보직부장급 여기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IMF 이후 군 가산점이 폐지된 2000년 초반 때 대거 입사한 여기자들이 지금 차장급이다. 차장급은 편집회의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차장급 여기자들을 편집회의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제안을 했지만 현실적으로 실행되기 어려운 것 같다. 7~8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게 결론"이라고 토로했다.

'기계적 중립'이라는 언론의 고질적 문제 역시 성폭력 사건에 대해 단순 사실관계만을 늘어놓는 형식으로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이유 중 하나다. 김 교수는 "기자들은 '팩트'의 신화에 갇혀 있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며 "팩트를 넘어설 수 있으려면 기자가 노력해야 한다. 기자가 기꺼이 사안에 대해 판단을 내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책임을 지는 기사쓰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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