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씨 등 4명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3년만에 승소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정되면서 관련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이춘식 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신일본제철은 원고 4인에게 각 1억원씩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승소 판결을 받고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941~1943년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일본제철에 강제징용되어 노역을 산 피해자들은 1997년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고,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를 확정했다.

2005년 국내 소송 제기 이후 1심과 2심 재판부는 일본의 확정 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2년 5월 일본 법원의 판결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며 2심으로 파기환송했다.

사건을 다시 심리한 2심 재판부는 "일본의 핵심 군수업체였던 구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와 함께 침략 전쟁을 위해 인력을 동원하는 등 반인도적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며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같은 2심 판결에 신일본제철 측이 불복해 재상고하면서 사건은 대법원으로 다시 넘어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5년이 넘게 판결을 내리지 않았고, 이춘식 씨를 제외한 피해자 3명(여운택·신천수·김규수)은 판결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양승태 사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공모해 고의로 재판을 늦추는 등 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춘식 씨는 오늘 오후 1시 50분경 휠체어를 타고 대법정에 도착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재판에서 "상고 모두를 기각한다"는 주문을 읽었다. 선고를 보고 나온 이 씨는 "오늘 와서 보니 나 혼자다. 같이 살아서 왔다면 마음이 안 아픈데, 혼자 오니 슬프고 서운하다"며 "눈물이 많이 나오고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흐느꼈다.

신일철주금 측은 소멸시효가 완성돼 배상책임을 질 필요가 없으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소멸시효 주장은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한 권리남용"이라면서 "배상청구건은 청구권 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번 판결로 강제징용과 관련된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한 피해자들의 소송이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대법원 2건, 서울고법에 1건 등 10여건이 심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대법원 판결 직후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매우 유감이다.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양국과 국민의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 이번 판결은 한일 우호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엎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