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은 온 국민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 명승부이자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든 한편의 드라마였다. 연장과 재연장을 거쳐 마지막 승부던지기까지 이어진 128분의 피 말리는 혈투는 안타까운 패배로 이어졌기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특히 시상식 직후 이어진 오성옥 선수와 임영철 감독의 인터뷰는 감동의 극점이었다.

"후배들이 열심히 뛰어줬는데 제가 마지막 조금만 더 해줬으면 금메달이 제 것이 아니었을까…"라며 눈물 흘리던 오성옥 선수에게서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이라는 희망을, "패인의 원인은 딱 한마디로 덴마크의 핸드볼 열기와 우리나라의 핸드볼 열기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답답한 심정을 어떻게 얘기할까요? 뭘로 어떻게 얘기해드릴까요?"라며 말을 잇지 못하던 임영철 감독에게서 '대한민국 핸드볼의 현실'이라는 설움을 보았다.

'반짝 인기'에 식어버린 핸드볼…영화 <우생순>은 무엇을 말할까

한국 핸드볼은 올림픽을 계기로 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오성옥 선수와 임오경 선수의 일본 생활을 다룬 한 TV 프로그램도 한 몫 거들었다. 핸드볼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은 인터넷 카페 '핸드볼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수였지만 텅 빈 경기장의 객석을 드문드문 채웠다. 핸드볼에도 서포터즈가 생기기 시작한 거였다. 때맞춰 여자실업팀도 창단됐고, 핸드볼큰잔치는 희망과 기대 속에서 개막식을 열었다.

▲ 영화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그리고 3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항상 지적되던 국민들의 냄비근성이나 핸드볼협회의 방만한 운영도 문제였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열악한 저변이었다. 아무런 미래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스포츠 종목에 어떤 학생, 어떤 학부모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건 당연했다. 힘들지만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핸드볼의 끈을 놓지 않았던 선수들도 졸업 후 활동할 실업팀이 없었다. 근근이 운영되는 실업팀은 유망주 한두 명을 영입하는 것도 벅찼다.

결과는 그대로 드러났다. 올림픽 출전권 획득을 위한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의 충격적 패배. 노골적인 아시아핸드볼연맹(AHF)의 텃세와 중동 심판의 편파판정 때문이지만, 언제 중동과 유럽이 한국 핸드볼에게 텃세를 부리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아시아를 호령하고 유럽을 위협하던 한국핸드볼, 그 실력이 하향세를 그린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원인이었다.

임순례 감독 연출, '아줌마' 선수들의 기적 같은 명승부 실화 바탕

아시아 지역 예선의 재경기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지금,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대표팀을 소재로 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MK픽처스의 심재명 대표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영화는 <화려한 휴가>의 나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이 6년 만에 연출을 맡으며 제작이 가속화됐다.

세계 최초의 핸드볼 영화라는 명목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이 영화는 국내 핸드볼계의 현실을 비추어봤을 때 그 제작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였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보유했지만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겪어야했던 핸드볼 선수들, 그것도 '아줌마' 선수들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명승부라는 실화의 기본 틀 속에서 인물과 드라마를 재구성해야했던 영화화의 과정. 그 속에서 스포츠를 통한 휴먼드라마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전형적인 갈등이 다소 영화를 미적지근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또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몸놀림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인 배우들, 그리고 이를 보완할 카메라의 움직임 또한 아쉬움을 남긴다. 그래도 핸드볼을 대하는 연출자의 진정성, '아줌마' 배우들의 억척스럽고 능청스런 연기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단연 돋보이게 만든다.

현실을 극복하려는 희망, 소외된 이들의 가능성을 말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임순례 감독은 당시의 감동을 재현하는데 급급하지 않았다. 핸드볼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아줌마, 더 나아가 대한민국 여성에게 덧씌워진 현실을 극복하려는 희망. 그것이 이 영화가 온전히 이야기하고픈 소외된 이들의 가능성이다. 실화만큼 진한 감동은 없기 때문일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오성옥 선수와 임영철 감독의 인터뷰를 삽입하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 영화전문포털 '조이씨네' 서정환 편집장
2004년의 감동을 다시금 아로새긴다. 4년이라는 시간을 다시 되돌려주고픈 바람. 영화가 핸드볼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안타깝지만 이것이 전부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이 다가왔다. 한국 핸드볼이 출전할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올림픽이 개최되는 4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핸드볼의 '반짝 인기'. 그 사이클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미세한 균열을 가할 수 있을까. 곧 핸드볼큰잔치도 개막된다. 핸드볼에 대한 관심은 아테네 올림픽 이후 가장 높아질지 모른다. 변화의 움직임, 여전히 몫은 핸드볼 자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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