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국제축구연맹)주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날이 언제 오나 했는데 기어이 젊은 나이(?)에 볼 수 있었습니다. 일요일 아침부터 참 상쾌하고 기분 좋은 소식이 북중미 카리브 해에 위치한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날아와 축구팬 뿐 아니라 온 국민을 기쁘게 했습니다.

최덕주 감독이 이끄는 17세 이하(U-17) 여자 축구 대표팀이 U-17 여자월드컵에서 3-3 무승부를 거둔 뒤 승부차기에서 5-4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사상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데 성공했습니다. 상대가 '숙적' 일본이었기에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를 펼친 끝에 대담하고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우리 어린 여자 선수들이 선보이면서 승부차기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러면서 기분 좋게 한국 축구 128년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정상 정복이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장하고 대단했습니다.

▲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대표팀이 기념촬영을 하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걱정은 많았습니다. 전반 꽤 이른 시간에 선제골이 터지기는 했지만 골키퍼 김민아의 실수로 골을 허용한 뒤 좀처럼 공격 기회가 활발하게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측면에서 활발하게 움직여야 했던 이금민은 평소보다 무거운 몸놀림으로 전반 중반에 교체돼 나갔고, 볼 자체가 전방에 제대로 투입되지 않다보니 스트라이커 여민지에게도 이렇다 할 기회가 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일본은 허술했던 한국 수비의 빈틈을 노려 잇달아 위협적인 중거리포로 골문을 두드렸고, 골키퍼 김민아는 이를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제대로 열리지 않은 공격 루트를 일본처럼 중거리포로 응수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갔고, 결국 끈질기게 따라붙는데 성공하면서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습니다. 특히 후반 교체해 들어간 이소담은 남자 선수들도 해내기 힘든 대포알 중거리 슈팅으로 시원하게 골망을 가르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많이 지치고 위기도 수차례 있었지만 태극 소녀들은 투지 있게 일본을 압박하면서 잘 막고 잘 찼습니다.

그리고 '러시안 룰렛' 피말리는 승부차기에서도 첫 번째 키커의 실축을 이겨내고 두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 다섯명 연속으로 대담하게 골을 넣으면서 마침내 기분 좋은 승리, 그리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참 대단한 것은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당당하게, 그리고 마치 10년 넘게 경기를 한 것처럼 베테랑이 하는 것 같은 플레이를 펼쳤다는 점입니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국 축구 특유의 투혼을 살려낸 것은 물론 패기 있게 당당하게 맞서면서 끈질기게 따라붙어 마침내 목표를 이뤄낸 것을 보면 참 대견하고 멋지게만 느껴졌습니다. 비록 일본전에서 골을 넣지 못했지만 득점왕과 MVP, 그리고 우승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여민지도 그랬고,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다른 선수들 역시 '우리도 할 수 있다'면서 다양한 루트로 골을 뽑아내는 모습을 보면 한국 축구의 미래가 참 밝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줬습니다. 어쨌든 이번 우승은 발전기를 거듭하고 있는 한국 여자 축구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 참 값지고 의미 있는 우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봤습니다.

호기심 많은 10대 중반의 나이에 남들이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직 이 순간을 위해 뛰고 또 달린 어린 선수들이 참 위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무장하고 열정과 패기, 그리고 팀워크로 똘똘 뭉쳐 정상에 도전해 기어이 성공을 이룬 선수들의 표정은 참 순수함, 해맑음 그 자체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요즘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하는 걸그룹보다도 더 예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정말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 그리고 위대한 우승을 이뤄낸 17세 이하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 그리고 이 선수들을 위해 치열한 연구와 노력을 거듭하며 멋진 리더십을 보여준 최덕주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여자 축구에 '척박한 환경'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없이 이 어린 선수들이 마음 놓고 운동하고 즐길 수 있게끔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보다 활발한 지원, 투자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U-20, U-17에 이어 성인 여자월드컵도 한국이 제패하는 모습을 꼭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5년 뒤인 2015년에 열릴 여자월드컵에서는 이들이 주역이기에 충분히 기대감을 가져도 좋습니다. 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제는 필요합니다. 어쨌든 태극 소녀들, 정말 장합니다.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온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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