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분장보다 웃겼던 세 개그우먼의 토크 <나 혼자 산다> (10월 26일 방송)

지난 26일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 박나래 편에서는 홍현희-제이쓴 예비부부의 신혼집을 방문했다. 홍현희의 신혼집 근처에 도착한 김영희와 박나래는 홍현희에게 전화를 걸어 주차 문제를 물었다. 어디에 주차를 하면 되느냐는 말에 홍현희는 이렇게 말했다. “주차는 본인 역량이다, 재량껏 하라.” 얼굴이 등장하기도 전부터 이미 빵 터진 홍현희였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김영희, 박나래 그리고 홍현희. 세 명의 개그우먼이 모여서일까, 홍현희의 신혼집마저 개그소재가 되었다. 홍현희 본인만 시스루 치마에 재킷까지 걸치며 풀착장으로 꾸몄을 뿐, 문고리도 없고 콘센트 마감재마저 없어서 지금 당장 감전 사고를 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집안은 <개그콘서트> 세트장으로 써도 충분히 웃긴 공간이었다.

침대 대신 은박 돗자리가, 티비는 거실장 대신 방바닥에, 화장대 대신 종이박스, 냉장고 대신 시원한 창가가 시청자들을 반겼다. 심지어 가스 점화도 되지 않아 부르스타에 커피물을 끓였다. 신혼집마저 개그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홍현희-제이쓴 부부가 보여줬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과한 분장이나 상대방 비하 개그 없이도, 세 개그우먼의 토크만으로도 충분히 웃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이 날 <나 혼자 산다>가 던져준 중요한 시사점이었다. 특히 김영희와 박나래가 집들이 초대 손님이 아니라 신혼집 인테리어 인부로 초대받은 상황은 신의 한 수였다. 홍현희와 토크할 때는 입으로, 제이쓴과 인테리어를 할 때는 몸으로 웃기는 두 여자의 살신성인 정신이 이날 <나 혼자 산다>의 배꼽을 책임졌다.

안방 벽 페인트칠부터 침대 조립, 커튼 설치까지 실제 일당을 받아도 무방할 정도의 실력을 보여준 김영희와 박나래는 마지막에 케이크와 플래카드를 준비해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뒤이어 박나래의 손편지는 홍현희와 김영희 모두를 울렸다. 개그로 시작해 눈물로 끝나는 이 인테리어 업체, 문의전화는 어디로 하면 되나요?

이 주의 Worst: 배부른 소리 하고 계십니다! <궁민남편> (10월 21일 방송)

‘놀 줄 모르는 남편들에게 진정한 노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기획 의도로 첫 방송한 MBC <궁민남편>의 창단식은 야외에서 진행됐다. 아내들의 화환과 제작진의 플래카드, 그리고 핫핑크 단체 티셔츠를 입고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은 다섯 남자들의 풀샷을 보고 있으니, “옛날 일밤 보는 느낌이다. 이경규 선배 오실 줄 알았다”는 차인표의 지적이 매우 정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경규의 일밤’ 시절까지 멀리 가지 않더라도 8년 전 <오늘을 즐겨라> 야외 촬영장을 떠올리게 할 만큼 올드한 세팅이었다.

MBC 예능프로그램 <궁민남편>

“너무 아날로그 아니야?”라는 김용만의 말에 “회의 많이 했어요”라고 변명하는 제작진. 출연자들의 단체 구호를 정하자는 제작진의 제안에, 김용만은 또 한 번 “2000년 이후에 잘 안 하는 것”이라고 구박했다. 제작진이 고심하고 고심해서 회의 끝에 결정한 구성이 이 정도라는 얘기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남편들의 휴일을 바라보는 제작진의 시각이었다. 제작진이 생각하는 ‘취미’ 혹은 ‘놀기’는 대체 얼마나 거창한 것일까, 라는 궁금증이 계속해서 들었다.

휴일 자선단체 행사를 끝낸 차인표는 자기만의 공간인 개인 사무실에 와서 언어 공부를 하고, 춤 영상과 힙합 동영상을 본 뒤,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 운동을 하며 광합성을 했다. 이 정도면 나름 알차게 보낸 휴식 아닐까. 그런데 제작진은 “처량하다”, “고독하다”, “놀 줄 모르는 형”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꼭 능숙하게 춤을 추고 무대를 휘젓는 것처럼 놀아야 제대로 노는 것일까. 혼자 의자에 앉아 동영상을 보는 것도 일종의 놀이일 수 있는데, ‘놀지 못하는 남편’이라는 공통분모에 강박관념을 가진 것 같다.

MBC 예능프로그램 <궁민남편>

김용만의 창고는 온갖 취미용품으로 가득했다. 스키, 등산, 축구, 탁구, 배드민턴, 볼링가방에 이어 비박용 텐트까지 웬만한 스포츠용품은 다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용만은 결국 개인 서재에 앉아 지석진과 함께 모바일 게임을 하며 휴일을 보냈다.

차인표와 김용만 모두 개인 공간이 있다. 그리고 휴식을 취할 시간도 있다. 심지어 김용만은 언제든지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장비마저 가지고 있다. 단지 함께 즐길 사람이 없다는 것뿐이다. 이 정도면 ‘놀 수 있는’ 우수한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도 있다. 일반 직장인 남편들은 취미를 즐길 시간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다섯 남편들을 처량하다, 쓸쓸하다, 허전하다고 표현하는 건 과장 아닐까 싶다.

혼자 동영상을 보는 것도, 온라인상에서 친구와 게임을 하는 것도, 하다못해 옥상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 것도 취미의 일종이라 봐도 무관하다. 취미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남편 출연자가 아니라 제작진이 갖고 있는 것 같다. 다섯 명이 모여야 하는 이유를 억지로 끼워 맞추기 위해, 나름의 방식대로 휴일을 보내는 남편들의 일상을 ‘친구가 없어 쓸쓸하고 처량하고 허전한 휴일’이라고 포장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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