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12시를 넘겨 새벽까지도 국감을 하는 건 좋지만, 정책 국감이 되지 않고 신상털기 등 다른 쟁점으로 가는 데서 (이번 국감은) 실패했다"

지난 19일, KBS를 대상으로 열린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가 밤 10시 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노웅래 과방위원장이 한 말이다. 국감이 중반을 지나면서 공영방송에 대한 과방위 감사가 일단락 됐다. 그러나 공영방송 국감은 색깔론과 증인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뒤덮여 제대로 된 감독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는 전반기 안건 통과율 17%의 '불량상임위', '식물상임위'라는 수식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불량상임위'의 단면을 볼 수 있었던 순간은 KBS·MBC·EBS 등 공영방송에 대한 국감현장에서였다. 17일 방송문화진흥회 국감은 드루킹 사건과 관련한 증인채택 논란으로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그 사이를 채운 건 '색깔론'이었다. "시무식에서 태극기를 왜 게양하지 않았느냐", "뉴스에서 '문재인'과 '김정은'이 왜 이렇게 많이 등장하느냐", "통일부가 조선일보 기자의 출입을 불허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대부분 MBC를 관리·감독하는 방문진과 관련이 적거나, 없는 질문들이다. 한국당 의원들은 방문진 감사 막바지에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국감 보이콧'을 선언해 한때 국감 파행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관련 증인채택 합의 불발을 이유로 국정감사 보이콧을 선언한 뒤 퇴장하는 모습. (미디어스)

19일 열린 KBS 국감도 다르지 않았다. 이날 열린 국감은 지난 3월 열렸던 KBS 사장 후보자 청문회의 반복이었다. 가장 많이 반복된 질의는 세월호 참사 당일 양승동 사장이 노래방에 갔는지 여부였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질의 시간 대부분을 '노래방'에 쏟는 한편, 정필모 부사장의 학위취득과 외부 겸직을 문제 삼거나 배석한 KBS 직원들에 대해 노조가입여부, 파업참여여부 등을 묻는 등 개인 신상에 관한 사항을 파헤치는 데 골몰했다. 충분한 해명이 이뤄졌으나 이 같은 질의는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다.

국감은 국회, 특히 야당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1년에 몇 안 되는 멍석자리다. 정파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현 정부의 1년 정책을 '팩트'로 지적하는 동시에 정치적 실리까지 챙길 수 있는 '야당의 판'이다. 그럼에도 제1야당인 한국당의 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드루킹, 태극기 게양, 개인 신상털기 등의 질의로 고함만 지르는 인상을 남겼다.

한국당의 이 같은 태도는 당장 피감기관으로부터 피로감을 유발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외려 야당의 공세를 방어해야 하는 정부와 여당은 물론, 공영방송 입장에서도 국감을 편하게 통과했다고 여기게 할 법한 처사였다.

KBS와 MBC, 한국을 대표하는 두 공영방송사는 급변하는 미디어환경 속에 여태껏 겪지 못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경영 수지, 제작 환경, 시청률, 신뢰도, 프로그램 평가 등 전반에 걸쳐 종편과 뉴미디어 등에 밀려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적 접근으로 고함만 내지른 한국당에 피감기관은 도리어 고마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히려 소수 야당과 여당에서 피감기관을 긴장하게 만드는 질의들이 쏟아졌다. 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과 박선숙 의원은 유사중간광고, 작가 표준계약서, 방송사 협찬, 계약직 아나운서 등 공영방송이 직면하고 있는 현안과 문제점에 대해 정책질의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역시 UHD 방송, 수신료, 프로그램 모방, 인사 형평성 등 현안 질의를 이어나가며 할 말은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이 정치적이지 않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리당략에 휩싸이는 국감 현장일수록 차분하고 날카로운 질의로 피감기관의 실책과 반성을 이끌어내는 의원이 돋보이기 마련이다. 공영방송에 대한 국감이 매년 이런식이라면 국회가 공영방송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방문진 국감을 중계하는 게 (MBC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을까 싶다. 공방이 오가면서 오늘 국감을 지켜본 분들이 MBC에 더 실망하고 신뢰를 잃게 만든 것 같다". 과방위 소속 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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