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여론과 상관없이 ‘대운하’를 추진하겠다는 이명박 당선인의 ‘불도저’식 국정운영이 인수위와 최측근 인사의 발언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당선인의 최측근 중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 또한 지난 12월 31일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내년(2009년) 2월에 영산강부터 하고 경부운하도 곧바로 삽을 뜬다”며, “(운하 건설을)‘한다’는 건 이미 결정된 사실이어서 운하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견은 수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1월 1일 장석효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한반도 대운하 태스크포스’ 팀장이 한겨레 인터뷰에서 운하 건설을 ‘기정사실화’함과 동시에, 대운하 프로젝트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시사했다. 장 팀장은 또한 “경부운하는 (완공에)4년, 호남운하는 3년 걸린다. 경부운하는 민자로, 호남과 충청운하는 국가재정으로 건설하겠다”고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했으며, 지난 12월 28일 국내 5대 건설사 CEO들과 이미 조찬모임을 갖고 대운하를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는 대선을 전후하여 이 당선인 측이 대운하 추진과 관련해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배치되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전에 국민에게 한 약속을 저버리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따라서 언론은 대운하 건설과 관련해 충분한 국민여론 수렴 절차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민에게 대운하에 대한 다양하고 심층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공론장 역할을 수행함이 마땅하다.

조·중·동, 선거 직후엔 대운하 무리한 추진에 대해 우려표명

대선 직후 조·중·동 역시 대운하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말고 재검토하라는 강한 목소리를 냈다.

조선일보는 12월 24일자 사설 <당선인 공약 타당성 재검토 기구 둘 만하다>에서 “공약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한반도 대운하는 “사업 타당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국민 동의를 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도 12월 21일자 사설 <국민의 머슴이 되라>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데 당선인 혼자서 옳다고 밀어붙이면 독선이 된다”고 경고했다. 중앙은 1월 1일 <‘김훈범 칼럼’/바보들의 목욕>에서도 “한반도 대운하라는 대역사는 특히 그렇다. 새만금의 전철을 다시 밟기에는 되돌아볼 걸음이 너무 멀지 않은가”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도 예외는 아니었다. 12월 24일자 사설 <대운하 국민 설득과 대합의 과정 없었다>는 “여론조사에서도 반대가 많았던 대형 국책사업을 국민 설득이나 합의 과정 없이 강행하려 든다면 값비싼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며, “핵심 문제는 사업 타당성이다…청계천 복원 성공신화에 사로잡히면 실패할 수 있다. 도시의 하천 복원과 국토를 종단하는 대역사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동아는 더 나아가 “자칫 건설경기는 이명박 정부 때 즐기고 비용은 다음 정부가 치르는 구조가 될까 걱정”이라고 우려하기까지 했다.

대선 기간 동안에는 침묵으로 일관한 조·중·동의 행태는 아쉽기 짝이 없지만, 뒤늦게나마 사설과 칼럼을 통해 대운하에 대한 충분한 국민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요구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1월 2일, 조·중·동의 대운하에 대한 반대 목소리 동시에 실종

하지만, ‘어쩐 일인가’ 싶던 이들의 지적이 인수위가 대운하 사업 시동을 공개적으로 밝힌 시점에서 정확하게 멈추어버렸다. 1월 2일 조선일보 1면 <이재오 “대운하, 李 당선인 취임 즉시 시작”>(홍석준·홍원상 기자)과 동아일보 2면 <빅5 건설사에 ‘대운하’ 설명>(동정민·이태훈 기자), 중앙일보 2면 <‘한반도 대운하 사업’ 시동>(정강현·함종선 기자)은 모두 인수위와 건설사 중 누가 먼저 자리를 마련했는가라는 엉뚱한 문제에 방점을 찍어서 건설사가 먼저 요청한 것임을 강조했다. 중앙과 동아는 부제목을 각각 <인수위 “건설사서 요청한 것”>, <대운하 TF팀장 “건설사 요청으로 만나”/참여 건설사측 “인수위서 만나자고 해”>라고 뽑기까지 했다.

특히 중앙일보 2면 <‘한반도 대운하 사업’ 시동>은 “인수위는 대운하 공약이 대선과정에서 찬반 논란에 휩싸인 만큼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먼저 거칠 계획이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재오 위원은 반대 의견은 수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고, 인수위 장석효 팀장 역시 “하지도 않을 일을 갖고 인수위에 TF까지 만들겠느냐”라며 추진을 ‘기정사실화’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운하에 대한 이 당선인의 뜻은 확고하다. 1년 정도 의견수렴과 타당성 검토를 한 뒤 착공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도 발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중앙이 이처럼 이명박 후보 측의 강경한 태도를 전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대한 비판을 피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반면 한겨레는 1면 <“경부·호남·충청운하 동시에 조기착공”>(권태호·황준범 기자)을 통해 장석효 TF팀장과 이재오 의원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대운하 추진 움직임을 전했고, 3면 <‘토목 경제’ 물길 터 취임초부터 국정주도권 ‘다잡기’>(황준범 기자)에서는 이 당선인 측이 한반도 대운하 추진을 서두르는 이유와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짚었다. 그리고 사설 <대운하, 밀어붙여선 안 된다>를 통해서는 대운하 밀어붙이기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겨레는 “논란이 큰 사안을 놓고 아직 그 어떤 신뢰할만한 타당성 검토조차 없는 가운데, 벌써부터 추진을 기정사실화하거나 일정까지 제시하는 발언은 최소한의 법적 절차까지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대규모 건설 사업을 벌일 때는 반드시 예비 타당성 조사 등 절차를 준수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며 “인수위는 이 사업과 관련해 섣부른 발언을 쏟아낼 게 아니라 타당성 검토 등 원점에서 다시 살펴보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경향도 3일, 1면 <잊었나, ‘대운하 여론수렴’ 약속>(김광호 기자)과 3면 <초반부터 확실하게… “대운하로 국정 주도”>(김광호 기자)를 비롯한 다양한 기사들을 통해 당선인 측의 ‘말바꾸기’와 추진 배경, 환경단체들의 반발과 시행과정들을 짚었다. 사설 <‘대운하 한번 더 검토’ 약속은 거짓이었나>를 통해서는 ‘실용’이란 이름으로 속도를 내는 것이 “효율성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대통령이 하는 일에 반대란 없다’는 식의 사고라면 선진화는 절대 이룰 수 없다”고 경고했다.

1월 3일, ‘이명박 정부’ 뜻에 소신도 버린 동아의 침묵

조선과 중앙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이 당선인의 무리한 추진에 대한 지적과 함께, ‘국민들의 동의가 우선이다’라는 설득이 함유돼 있다.

조선은 사설 <대운하 사업, 국민 섬기는 자세로 국민 뜻 물어야>를 통해 “이 당선인은 서울시장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공약을 실천하겠다며 수도이전을 밀어붙이자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었다. 공약이라고 해도 수도 이전 같은 중대한 문제는 다시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며 이 당선인의 과거 행적과 대조시켰다. 나아가 조선은 대운하의 경제적 타당성과 환경문제 등을 짚고 “대운하를 둘러싼 이런 논란을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은 드물다…대운하와 관련한 공식 토론회나 공청회도 없었다”고 꼬집으며 “국민이 당선인을 압도적으로 지지했지만 그렇다고 당선인의 모든 공약에 그대로 고개를 끄덕인 것은 아니다”고 일침을 가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대운하, 이렇게 서둘 일인가>를 통해 이 당선인의 조급한 추진에 대해 애정 어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청계천 복원 성공이 한반도 대운하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화려하게 성공시키고 싶은 유혹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하지만 “섣불리 밀어붙이면 자칫 국민 분열을 부를 수 있는 민감한 뇌관”이라고 경고했다. 중앙은 “공약에도 우선순위와 완급이 있기 마련이다. 왜 정권 초반에 논쟁의 소지가 다분한 대운하부터 손을 대, 스스로 정치적 동력을 상실하려는지 안타깝다”고 토로하기까지 하며 “정말 대운하를 성공시키고 싶으면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반면, 선거 직후 사설을 통해 대운하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피력했던 동아는 3일에도 이명박 정부 측의 성급한 대운하 추진 발표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무리한 대운하 추진이 빚게 될 부작용들을 지적하며, 국민설득과 합의를 요구하던 동아가 계속 침묵하는 것은 사실상 이 당선인의 행위를 묵인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선 과정에서부터 이명박 홍보지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던 동아의 문제점이 다시 한번 두드러진 사안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대운하 보도, 최소한의 언론기능이라도 살려주길

한반도 대운하는 아무리 대통령 후보가 내세운 공약이라 하더라도, 대선 과정에서 타당성과 위험부담 등에 대해서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사안이다. 게다가 당선인 본인도 선거 이후 국민 동의를 거쳐 추진을 결정하겠노라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은 앞으로 충분한 논의의 장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정보가 국민에게 정확하게 전달된 후, 국민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추진되어야 마땅하다. 만약 이명박 당선인 측이 당선 자체가 대운하 추진의 동의를 얻어낸 것인 양 정책을 밀어 붙이는 것이라면 그것은 반민주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실제 대운하에 대한 국민여론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12월 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00님께서는 이명박 당선인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 추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후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69.9%를 차지했다. 심지어 “공약이니만큼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12.3%로 “문제가 있으므로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13.5%)보다 적었다. 이런 국민여론과 우려 때문에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는 물론 한나라당 내부와 보수언론마저 대운하 건설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고 국민적 동의를 구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당선인 측은 신년 초부터 대운하 건설은 번복될 수 없는 것인 양 ‘기정사실화’하고 형식적인 토론회, 공청회를 통해 보안책에 대한 여론수렴만을 거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는 당선인이 국민과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어긴 것이며 국민들을 ‘꼭두각시’ 취급한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대운하에 대한 국민적 여론수렴과 재검토를 강조하던 조선·중앙이 사안을 재단하며 소극적인 보도를 보인 것은 아쉬운 점이다. 한편, 동아일보에 대해서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동아가 대운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대운하’에 대한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기능을 포기한 것이며, 정치권력의 홍보매체 역할을 하기 위해 자신들의 소신마저 굴복한 행위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부터라도 대운하 건설에 대한 일방적이고 무리한 추진을 지적하고 새 정부가 적절한 동의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견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촉구한다. 또한 국민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충분한 의견수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2008년 1월 3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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